급식의 추억

그 시절, 그 때

by 유녕

밀려오는 피로에 쓰러져 자고 싶은, 퇴근 후, 침대에서 뒹굴다 스르륵 잠들고 싶은데, 내일의 도시락을 위해 몸뚱이를 일으켜 세운다. 참, 우습게도 나는 도시락을 까먹는 재미로 출근을 했다. 딱히 같이 먹을 수 있는 동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근무 구조상 한 명이 점심(저녁)을 하면, 다음 사람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30분의 점심시간이 내겐, 사직을 하는 오늘까지,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 때부터 나는 도시락을 싸야 했다. 반찬이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남숙이의 도시락엔 같은 반찬이 있어도 더 맛있었다. 3년 동안 도시락은 내게 귀찮은 일거리였지만, 남숙이의 도시락은 온기로 훈훈한 일품이었다. 어무니가 듬뿍듬뿍 담아 싸주신 도시락이 난 참 좋았다. 정작 본인은 내가 이런 생각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걸 모르겠지만, 그 땐 밥을 먹어도 배가 고팠는데, 그 허기를 남숙이 어무니께서 채워주셨다.


고등학교 때 점심에는 급식 도시락을 먹었다. 귀찮은 일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자율학습을 하기에 석식도 학교에서 해결해야 했다. 나는 착하고, 철든 딸은 아니었다. 딸 셋을 키우시는 아부지께 내 용돈은 한 달치 차비와 문제집 값이었다. 탈선(?)을 해봤다. 아부지께서 의심 없이 주시는 석식 급식비를 내가 횡령했다. 대신 저녁 도시락을 싸야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학교 앞 분식점에서-지금도 가끔 해 먹는- 천 원짜리 양배추 샌드위치나, 분식으로 친구들과 배 아프게 웃으며 한 끼를 든든히 해결했다. 내 최고의 일탈을 우리 아부지는 아직도 모르신다.


휴직이나, 도시락은 계속된다. 당분간 본업인 학생으로서 도서관으로 즐거운 출근을 할 것이다. 두 개의 굵직한 시험이 남았다. 시험은 거둘 뿐, 애쓰는 나를 위해, 애정을 담아 도시락을 싸는 법을 살면서 배웠으니 내 삶은 앞으로도 배가 고플 일이 더 이상 없다. 오늘의 식단: 계란 파말이와 잘 익은 섞박지, 그리고 강황 현미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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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아직 모르지만, 오늘 점심은 맛있게 했으면 한다. 그렇게 응원해주고 싶다, 남숙이의 어무니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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