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버섯 부르기뇽

by 유녕

한 바탕 굉음의 소나기가 내려 밖이 무척 선선하다. 기분은 산뜻한데 육체와 정신은 저만치에 있어 만만치 않은 하루, 아니, 한 주를 보냈다. 이제 2주 후면 가을 학기가 시작된다. 초중고 학생들은 이번에 등교를 하지만, 대학생들은 집에서 화상으로 강의를 듣게 된다. 적어도 내가 가는 UNB는 그렇다. 캐나다에는 이미 학사 경험이 있는 지원자에 한해 4년 다녀야 하는 간호대학교를 2년에, 심지어 토론토에 있는 대학 중에는 19개월 안에 마칠 수 있다. 하지만 입학 안내문을 받아도 신나지 않는다:조건 입학 안내서. 하긴, 인생 너무 쉬우면 재미없지... 선수과목(보건 미생물학, 인체 해부학, 병태생리학 I, 통계학)을 들어 일정 점수를 받아야 최종 합격이었다. 나는 상기한 네 과목을 이수해야 했지만, 다른 대학에선 병태생리학까진 요구하진 않는데... 세상 빡센 지난해를 보냈고, 무사히 입학 허가를 받았다. 우연히 본 거울에서(거울? 그게 뭐지? 먹는 건가?) 다수의 흰머리가 생긴 것을 보았고, 재차 나는 것을 보니 새치라고 하기엔 늦었다. Hello, my old friends...


최종 입학을 해도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준비하라는 접종만 10개였고, 14일 뒤, 28일 뒤, 6개월 뒤 등, 텀을 두고 맞아야 하기에 날짜도 잘 챙겨야 하고... 물론, 중간에 한 번 TB skin test의 날짜를 잊어 처음부터 다시 하기도 했다ㅋㅋㅋ 8월 15일 모든 접종 확인서를 학교에 보냈고, 실습 나가는 대학 병원 교육도 일주일간 받았다. 이제 30일 CPR 수업을 이수하면 그럼 모든 학교 요구사항을 맞춘 거다. 하악하악.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지쳤다. 4개월간 끝낸다는 전공책 8권을 보니 이젠 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 정도면 멕이는 거다ㅋㅋㅋ 물론, 지금보다 더 많이 알고, 잘 이해할 수 있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부담감 보다 크다. 다만 지난 한 해도 친구 없이 일과 공부만 했는데, 또다시 12명이 채 되지 않을 동급생들과 전우애를 나누지 못해 한참 아쉽다. '나 거기 있고, 너 여기 있니?'


서두와는 전혀 연결이 안 될 것 같지만, 미국인들에게 chicken noodle soup이 원기 보충 음식이라면, 난 버섯 부르기뇽을 나의 chicken noodle soup이라 하겠다. '필'을 받아야 마시는 와인이라, 코크를 잘 열지 않는다. 버섯 부르기뇽은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의외로 '필'이 오는 레시피를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제이미 올리버의 레시피를 따라 해 봤다. 이렇게 간단하면, 반칙 아닌가? 와인을 굳이 안 넣어도 되지만, 따놓은 merlot이 있어서 정석대로(보통 재료를 생략하고 할 때가 더 많다) 해보았다. 맛. 있. 다. 향이 부담되지 않고, 걸쭉하니 딱 좋다. 빵을 생략하려고 일부러 감자를 넣었는데, 이 요리는 생색용이기보다, 상대방이 몸이 따듯해지기 바라면서 만드는 안식의 요리가 아닐까 싶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여기 앉아, 한 그릇 원기 보충하고 가세요."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IMG_4037.JPG 버섯 부르기뇽

요새 백만 년 만에 다시 불어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하루 5분. 불어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영어를 기필코 원어민처럼 구사하고자(why half-assed?) 신경을 못 쓰고 살았다. 독일을 여행하면서, 평소 어디를 가도 들리고 보이는 불어가 없자, 역으로 불어가 배우고 싶어졌다. 하하. 문제는 그 결심이 요 근래 생각이 났다는... 하루 5분 십 년 하면 언젠가는 통하지 않을까... 난 다시 정신 간호학 책을 편다. 모두들 평안한 하루이기를.


Cover Photo by Ryoji Iwa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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