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um
저번 주 눈을 끝으로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었다. 안녕, 봄? 이번 주는 왠지 비만 내릴 것 같지만, 밖에 심은 내 모종이 쑥쑥 클 생각에 여름마저 기대가 된다. 지난 석 달간은 상담과 치료에 전념했다. 앞으로 석 달은 두서없이 좀 놀아보려고 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두 발로 지옥문을 걸어 들어갈테니까. 하하하하하.
목요일은 병원에서 일하면서 친해진 Jodie조디라는 친구가 놀러 와서 채식주의자용 김치를 배우기로 했다. 말이 채식주의자이지 액젓만 빼면 충분히 비건도 가능하다. 정성을 쏟아 무채며 파며, 생강이며, 마늘이며 다듬고 빻아 넣었던 예전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김치 하는데 15분 안으로 족하다. 알다시피, 일단 절이면 김치의 대부분 공정이 끝난다. 마늘과 생강은 이제 가루로 대체되었고, 한국산 고춧가루도 이젠 인도 캐시미어 고춧가루를 쓰면서 타국에서의 김치 만들기가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되었다. 더러 조디처럼 김치를 가르쳐 달라는 친구가 있으면 두 손 벌려 맞아준다. 한국 음식에 쏙 빠져버린 그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비도 오는데 서두도 길다... 오늘은 우즈베키스탄을 부엌으로 모셨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지만 hanum 하눔을 만들어 봤다. 우즈베키스탄의 라자냐라고 불리는데, 요리를 하면서, 맛을 보면서 어느 포인트가 라자냐일까 고민을 좀 해봤다. 정답은 소스였다. 소스 일 것 같다. 보통 요리를 찾으면 네다섯 개의 레시피 영상을 보면서 조금 더 쉽게 하는 요리를 재고 잰다.(전 게으르니까요ㅋ) 하눔의 경우는 소스는 일단 만들기가 쉽다. 피자나 파스타에 들어가는 토마토소스인 셈인데, 양파를 잘게 다져 볶다가 토마토 페이스트와 토마토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솔직히 소스가 맛있다 보니 음식 자체가 맛없기가 불가능하다.
위 사진은 소스가 범벅이 되어 형태를 가능하기 어렵다. 짧게 설명하면, 반죽을 만들어 넓고 얇게 밀대로 편다. 그리고 채판에 간 감자를 그 위에 고루고루 펼쳐낸다. 여기까지만 상상하면 피자 모양인데, 반전은 그다음 과정이다. 요리를 하면서 사진을 찍기에는 역부족인데 다행히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사진을 찾았다. 다만, 옆의 사진은 다음에 소개할 독일 음식이라는 게 함정.
설명을 이어, 두루 감자를 반죽 위에 놓고, 왼쪽 사진처럼 반죽을 만다. 나는 작업대가 좁아서 반죽을 4등분 해서 저 과정을 네 번 거쳤다. 이렇게 네 개의 뱀(?)이 생기면 그다음은 찜기에 말린 순대처럼 혹은 돌돌 말린 고사리 순 모양으로 하나씩 이어 포갠다. (아... 사진 찍어둘걸) 이 부분은 여러분의 상상력에 맡기기로 하고, 찜기로 20분을 쪄 소스를 위에 뿌려 상에 내놓는다. 벌써 올려놓은 글들이 70개가 얼추 되는 거 같은데, 개수와 더불어 응용력도 늘었다. 꾀는 보너스. 나는 찜과 소스를 한꺼번에 할 양으로 오븐에 45 분을 데웠건만, 속 안의 얇은 감자는 덜 익었더랬다. 해외 살면 재밌는 걸 배우게 되는데, 감자와 사과조차도 조리 용도가 나눠져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산 감자는 쉽게 익는 감자 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45 분에 30분을 더해 상에 올렸다. 허기와 약간의 신경질남도ㅋㅋㅋ
역시나 동유럽 국가는 감자 요리가 맛있다. 하눔은 앞으로도 종종 해 먹고 싶다. 예쁘고, 맛있는데 어쩌랴. 손발이 고생하면 입이 맛.있.다.
Cover Photo by Shokhjakhon Kamolov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