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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Jan 08. 2022

그리스

시금치 스튜, Σπανακόρυζο

학기 초에는 시간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토요일을 쉬는 날로 원칙으로 두고 억지로(?) 휴식 시간을 갖게 되니 의외로 부엌에서 지구 한 바퀴를 격주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스멀스멀 기어들어 왔습니다. 다만 이번 시즌에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찾는데 힘을 빼지 않고, 꽂히는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찾아 요리를 해 먹으려고 합니다. 작년 여름에는 독일 음식에 푹 빠져 있었다면 이번엔 그리스 음식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넌 뭐지???


제 얼마 없는 댓글 중에는 조리법에 관해 물으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제 기획의 의도는 레시피 소개가 아닌 저처럼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밥상에 듣도 보도 못한 다국적 요리를 제시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님들께서 원하신다면 이번에는 조리법에도 최대한 성의를 들여볼 참입니다. 혹시나 제 레시피를 참고로 요리를 하실 분들께 미리 말씀드려요. 제가 참고한 링크와 제 레시피의 비중을 반반씩 두시라는 것을. 원래 시를 쓰는 사람이라... 글을 자르거나 생략하는 묘기는 잘 부리는데요, 글을 늘리는 건 정말 쥐약입니다. 이쯤이면 다들 아실듯한데 말이지요. 


자아, 그리하여 다시 돌아온 <부엌에서 지구 한 바퀴> 오늘의 음식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서두에 미리 말씀드렸듯이 요샌 그리스 음식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그리스 음식이되, 채식주의자를 위한 레시피이면서, 만들기도 쉬운 음식을 찾는데 몰두 중이지요. 일단 첫 단추는 Σπανακόρυζο Κλασικό Λεμονάτο της Αργυρώς 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해석은 구글 여사님께서 친히 해줬는데요, 말인지 반찬인지... 결국은 레몬이 들어간 시금치 밥 스튜 정도가 됩니다. 그나저나, 님들, 그리스 알파벳 보면 생각나는 것 없으시나요? 전 그냥 보고 있으면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도 시각화되는 것 같고, 고1 수학 시간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보이시나요? 


음식 평을 하기 전에 약속한 대로 조리법을 써볼게요. 영상은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준비물

양파, 리잌(대파로 대체 가능), 쪽파, 시금치, 소금, 쌀, 그리스산 올리브유(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 올리브유를 애용합니다, 이탈리아산도 스페인산도 물론 OK), 레몬(시판되는 레몬즙도 OK), 딜, 물


1. 먼저 중불에 그리스산 올리브를 적당히 두, 세 번 냄비에 두릅니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오메가 369의 원천이니까... 이런 기회를 틈타 옴팡 부으세요. 


2. 기름이 달궈지는 사이 양파를 잘게 써셔서 냄비로 투하시키세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과정이지요. 양파껍질 벗기기와 양파 다지기요. 아오, 귀찮ㅇ... 어차피 시금치를 넣기에 전 양파를 다지지 않고 그냥 반으로 잘라 길게 썰어서 넣었어요. 


3. 바로 이어서 리잌을 검지 손가락 정도 크기만큼만 잘라 썰어 같이 냄비에 넣습니다. 리잌 Leek*은 대파의 흰 부분으로 대신하셔도 돼요. 전 둘 다 없기에 안 넣었습니다. 모든 제 요리의 특징이지요. 없으면 안 넣어요. 

*네, 릭이나 리크라고 표기할 수 있으나, 직업병이지요뭐. e가 두 번 들어간 장음이라 일부러 /리잌/이라고 썼습니다. ㅋ는 아주 작게 들려서 그냥 받침 정도로만 넣어놨어요. 단/장모음을 구분해야 영어가 수월해져요ㅜㅜ


4. 이렇게 3-4분 정도 양파와 리잌을 저어가며 볶아주세요. 


5. 다음 씻어놓으신 1킬로의 시금치를 먹기 편한 크기로 잘라 냄비에 또 넣어주세요. 계량을 하지 않은 저로서는, 제가 산 시금치는 1킬로가 안 되는 건 확실히 알겠습니다. 뭐시가 중헌디요, 이 정도면 될 거야 하는 마음으로 있는 걸 넣어주세요.


6. 이 과정에서 소금을 한 꼬집 정도 넣으시면 시금치가 숨이 더 빨리 죽는다고 하네요. 이렇게 2-3분을 시금치가 숨이 죽을 때까지 또 저어주세요. 


7. 다음은 씻어놓으신 쌀 3/4컵을 넣어주세요. 자주 보는 일이지만, 다양한 국적의 유튜버 쿡방러들도, 캐나다인들도 쌀을 잘 씻어서 조리하지 않습니다. 더러는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고요, 더러는 귀찮아서... 뭐, 어때요, 제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즐. 참고로 저는 3/4컵을 다 넣지 않았어요. 전 1/4컵, 대략 소주잔 하나 분량을 씻어서 넣었어요. 왜냐고요? 이거 맛없으면 제 위장에다가 버려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 하는 요리는 항상 분량을 줄여서 합니다. 잔반 처리의 위험부담이 너무 커져요, 안 그러면... ㅎㄷㄷ


8. 쌀을 넣고 나선 물을 한 컵 부으세요, 이어서 바로 쪽파 서너 개를 썰어서 넣습니다. 저와 달리 리잌이나 대파, 파를 넣으신다면 이 친구들이 익으면서 물기가 생기니 쌀과 같은 동량의 3/4컵 물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제 뚜껑을 닫고 20분 정도의 중약불로 쌀이 거의 익을 정도로 끓여주세요. 20분 후에 쌀알을 드셔 보시고 덜 익었다면 저처럼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추가하세요. 네, 요리는 인내예요.   


9. 밥알이 거의 익었을 때 즈음, 뚜껑을 열어, 그리스산 올리브유를 한 번 둘러 주시고요. 마른 혹은 생 딜이 있으시면 이때 1/2 TSP(티스푼) 아님 원하시는 만큼 넣으세요. 향을 맡아보시고 별로시라면 생략하세요. 큰 일 안 납니다. 다음 레몬 하나의 즙을 짜주시거나 저처럼 레몬즙을 2 TBSP(테이블스푼, 대략 밥숟가락)을 넣으세요. 다시 뚜껑을 닫고 5-10분 정도 약불에서 물기가 좀 날아가게 끓이시면 됩니다. 


10. 눈치채셨나요? 소금간이 안 됐지요? 일단 원하시는 만큼 그릇에 푸시고, 식탁에서 소금 간을 입맛에 맞춰 톡톡, 톡톡톡 톡, 툭 툭 툭 툭 툭 하시면 돼요. 


제 배우자는 먹어보고 미역 스튜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도 그럴것이 시금치를 끓이게 되면 미역 모양으로 흐물흐물 미끈한 액이 나와요. 희한하게도 맛도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참고로 제가 진행하려다가 포기한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는 시금치 사촌뻘인 그 풀떼기를 이용해 일부러 흐물미끈걸쭉한 식감의 국을 만들어 먹습니다. 그나저나, 시금치를 먹으면서 비리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인가요? 


저의 총평은 맛이 없진 않으나 큰 매력은 없었다입니다. 그래도 한 번은 해볼 만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전 시금치를 가뭄에 콩 나듯 해 먹는 김밥이나 나물이 아니면 손을 대지 않아서 일부러 시금치를 먹을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해 봤던 요리인데요, 결론은, 시금치 요리는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월요일이면 개학이네요. 격주마다 돌아올게요. 혹시 '넌 뭐 하는 애니?'라고 생각되시면 연재 중인 

<캐나다에서 간호대생으로 살아남기>를 참고해주세요. 뭐, 별 거 없습니다. 그냥 애입니다.      



Cover Photo by Daria Nepriakhi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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