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락더마켓
예전에 학교 과제를 진행하며 도시재생 관련 사례를 다룬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례의 내용은 이러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뉴욕의 첼시 지역은 항구였다.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과자 공장도 이곳에 있었다. 항구라는 지리적 특성에 의해 도축장과 육가공 도매상, 운송 업체 등 선원들과 상인들로 늘 북적였던 이곳은 가공 산업의 발달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과자 공장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늘 사람이 북적이던 이곳은 사람의 발 길이 떠나고 어두침침한 건물과 거리, 수많은 범죄에 잠식당했다. 그리고 1990년을 기점으로 다른 지역에 있던 갤러리들이 임대료가 낮은 첼시로 이전을 해오기 시작하고, 과거 공장에서 사용했던 여러 시설물을 거의 그대로 둔 채 빨간 벽돌과 어울리는 조명을 설치하여 텅 비어버린 건물에 다시 빛이 들어왔다. 그렇게 ‘첼시마켓’ 이 탄생하게 됐다.
유명 브랜드 상점들과 식당, 식료품점, 기념품 가게 등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하고 세계 음식들과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첼시마켓은 뉴욕의 또 다른 명소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첼시 마켓 주변으로 옷 가게나 다양한 패션 용품 가게들, 갤러리 등 관광객을 끄는 예술 거리가 탄생했다. 도시재생으로 새롭게 태어난 첼시 마켓이 지역 상권을 되살려 지역 경제를 활발하게 하게 된 사례였고 세계적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오랜만에 부산을 찾아 떠난 광안리해수욕장은 불과 몇 년 사이, 이 장소는 주변의 수직적인 형태의 건물에 잠식당했다. 수평선을 따라 펼쳐지는 바다를 사람들은 비대한 몸집으로 올라선 수직적 형태의 건물에서 바다를 독점하고 광안대교를 가장 가까이서 내려다보는걸 더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고층개발·분양'이란 양적인 개발논리에 의한 당연시되는 결과였다. 수익성만 챙기는 수직적 형태는 오피스텔, 아파트 등의 사적인 공간 위주를 낳아 특색 없는 도심으로 키웠고,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북적이던 이곳은 점차 특색 없는 이 장소에 발 길을 돌리고 바다를 독점하게 된 수직적인 형태의 건물만이 남아 도심 속 공동의 모습을 초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간은 이 장소에 더 필요하다.
수직적인 형태의 건물 사이, 수평적인 형태로 붉은 벽돌창고의 모습으로 들어선 이 공간은 ‘마켓’의 테마로 특색 있는 콘텐츠로 채워진 문화 공간으로 마치 뉴욕의 ‘첼시마켓’을 떠오르게 한다. 창고가 가지는 단순한 형태에 부합하고 물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적벽돌은 남측의 바다를 연결하는 커튼월과 달리 서측으로 긴 파사드는 촘촘한 열주로 계획되어 또 다른 도시의 풍경을 연출한다
창고의 원형은 부산항의 수변이 가지는 도시적 맥락을 형성함과 더불어 빈 공간을 구현하기에 적절한 모티브다. ‘ㅅㅅㅅ’ 세 개의 분절된 형태로 매스는 바다 조망이 가려지지 않는 높이로 주변 인접한 고층 건물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도시풍경을 그린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1층에는 주차장과 여행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버스킹 무대 등이 마련돼 있고, 2층에 들어서면 다양한 식음료 업체, 리테일 편집숍, 팝업 스토어 등의 공간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곳의 상징적인 공간은 남측에 1층부터 2층까지 대계단(grand stair)을 놓고, 커튼 월로 통창을 세워 선착장과 바다를 연접해 광안대교를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게 디자인하여 사람들과 나아가 바다와 관계를 풀어낸다.
광안대교를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부산 바다 앞에 유명 브랜드와 개성 강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모인 풍경은 낯설고 신선하다. 분명 이전에 없던 라이프스타일 공간이다. 그리고 마켓이라는 특성을 살려 열린 광장형 체험 공간을 지향하며 주변 풍경과 물리적인 조건을 오프라인 경험으로 끌어들여 관계를 맺는다. ‘시민들이 모여 즐겁게 사는 동네’, 공간이 자리 잡은 민락동의 지명 유래 중 하나라고 한다. 시민들과 관광객 모두 이 공간에 모여 특별한 경험 그리고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광안리의 새로운 커뮤니티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하는 이곳은 ‘밀락더마켓’이다.
글 | yoonzakka
사진 | yoonzakka
매일 10:00 - 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