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립미술관
미술관은 수장, 보관, 전시가 목적이므로 그것 자체가 전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배경이 되어야 한다. 그림을 붙일 수 있는 풍경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수장, 보관, 전시가 효율적으로, 기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럴 경우 같은 모양이 차이 없이 반복되는 미술관이 만들어질 수 있다.
단순, 명쾌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기능이 우선 단순, 명쾌하여야 한다. 솔직한 외관표현은 기능의 단순, 명쾌함으로부터 나오는데,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조형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뭔가를 만들어 보려는 건축가의 욕망 때문이다. 자기 작품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미술관을 진정으로 작품을 위해 건축할 때 비로소 빛나게 된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루이스 칸(Louis Kahn)의 대표작인 킴벨 아트 뮤지엄(Kimbell Art Museum)을 예를 들 수 있다.
초기 격납고 또는 롤케이크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창고와 같은 형태에서 혹평을 받은 이 건축은 재료자체를 간결하고 단순화하여 작품을 감상하는데 관람객의 시선 집중성을 갖도록 하며 작품에 맞는 공간구성이 특징이다. 노출콘크리트 벽면의 시간화에 따른 차이와 반복, 6개의 칸 사이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절묘한 차이를 통해 반복을 교묘히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 건축의 영감을 받아 세워진 건축은 25년 동안 부산 지역의 예술·문화를 선도했고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센텀시티역과 벡스코역 지하철역에서 올라와 몇 발자국 걸으면 반복된 형태의 건물이 웅장한 위압감을 뽐낸다. 하이테크(High Tech) 한 건축물을 표현하는데 좋은 재료인 복합알루미늄 패널로 덮인 외관 조형요소는 역삼각형 네 개의(바다 위의 범선상징) 지붕을 형성하여 반복되어 가도록 건축물 이미지를 부여한다. 건축물에 강인한 이미지와 상징성을 지니며 앞서 언급하였듯이 킴벨 아트 뮤지엄(Kimbell Art Museum)에서 그 모티브를 찾으려고 하였고, 간결하고 단순성을 부각할 수 있는 요소다.
미술관은 공공 문화시설로써 그 입지조건과 부지의 맥락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차지한다. 시민들이 손쉬운 접근과 시설의 효율적 이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해운대구 수영비행장 옆 올림픽 공원의 한편에 자리 잡은 부산시립미술관은 유리함과 불리함을 함께 지닌 사이트였다. 건축당시 계획부지의 주변은 크게 관광위락중심지인 해운대구역과 수비삼거리 및 정보단지 조성사업이 진행 중이고, 남측에는 서울올림픽 요트경기장이 위치하며 지역민의 휴식 및 위락공간인 올림픽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역민 및 타 지역 관람객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지만 미술관을 외곽지역으로 벗어나 조용하고 정적인 공간을 갖춘 곳으로 미술관을 신축을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해당 부지와 같이 쉽게 접근하고 광장과의 연계성을 갖고 있는 사이트는 찾아보기 드물다.
공원에 진입하면 정적인 분위기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적인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접근성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정적인 공간이 강한 공원의 위치에 미술관이 자리 잡아 미술품을 감상하는데 적지의 부지이긴 하나, 원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어렵다. 반면, 부산 시립미술관은 올림픽 공원을 전면에 두고 선형(Linear)의 일자 배치를 취하고 있는데 공원의 축과 미술관의 배치축이 일치하여 정면성과 공원과의 연계성이 계획된 배치형태다. 이는 올림픽공원과의 연계성을 강하게 갖게 하여 올림픽공원 전체를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정적인 공간과 동적인 공간의 연계성을 이뤘다. 그리고 미술관은 미술품을 관람하는데 접근성이 좋고, 동적인 공간과 정적인 공간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점, 동선의 변화성이 강하다는 성격을 갖게 된다.
주출입구는 선큰가든 위로 난 브리지를 거쳐 현관 홀에 이르고 로비를 통해 각 층의 홀로 이어지는 동선은 단순 명쾌하다. 선큰가든을 설치하여 지하층에 자연채광을 최대한 유입하고 관람객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건축물 주변 휴식공간인 선큰가든과 스텝가든 등 완충공간의 곡선은 리듬감이 느껴지며 연결브리지를 통해 선큰가든을 바라보는 풍경은 색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전체 대지를 3 분할, 북동쪽에 서비스 및 주차공간이 있으며 남서쪽에 오픈 스페이스를 두고 그 사이에 전시 공간을 배치하여 건축 자체의 확장성을 고려한 건축은 전시장 내부 공간에서도 반복된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구성을 취하는 평면 구성은 전시공간과 동선공간, 주공간과 부속공간의 관계가 단순 명쾌하게 표현된다. 내부 공간은 네 개의 축을 가지는 형태로 네 개의 전시실이 동서축을 형성하고, 다시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하나의 축에 의해 통합된 형태이다. 중심공간 양측의 전시공간으로 분할되고, 각각 분할된 공간은 전시성격에 따라 전체 또는 분할하여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가변성과 융통성을 그린다.
다만, 외관에 비해 내부공간은 완성도가 떨어져 보일지 모른다. 설치 미술 등 전시의 형태의 이유기도 하지만 다소 단조롭게 비어 있는 공간의 느낌이 들게끔 하는데, 공간에 어떤 작품을 전시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공간과 작품의 조화가 있어야 비로소 건축물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진다고 생각할 때, 완성된 건축물을 사용자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공간의 의미와 활용도는 달라진다. 아무래도 비어있는 느낌을 받은 건 이런 맥락 때문 아닐까.
건축물은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고, 내부 기능의 솔직한 표현과 매스와 면의 반복에 의한 상징성, 재료의 음영의 효과를 고려한 볼륨감과 변화감의 표현은 일종의 반복과 연속 속에서 새로움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설계자는 설명했다. 애초에 건물 자체가 조형적 특이성을 가지는 미술관의 모습이 아닌 킴벨 아트 뮤지엄(Kimbell Art Museum)처럼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반복유형 안에서 건물이 아닌 작품이 돋보이도록 담아내는 그릇이 되길 의도했으며 현상설계 당시 ‘공장 같은 미술관’이라는 비판이 나왔으나 그것이 바로 추구했던 설계의 의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디테일한 시공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건축 당시 경제적인 여건과 미술관의 분위기에 맞는 재료를 고려해 건식방식을 채택했지만 시간이 흘러 노후화와 미흡함으로 인해 ‘물새는 비술관’이라는 오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 마지막 기획전시를 끝으로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리모델링은 건물 안과 밖, 그리고 층과 층의 경계를 허무는 데 중점으로 미술관 내 정원이 건물과 이어지도록 출입구를 조정하고, 도시의 확장과 주변의 변화로 주 출입구를 대로변 방향으로 변경해 접근성을 높인다고 한다. 미술관은 2025년까지 공사를 마쳐, 2026년 재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때의 시립미술관은 또 어떤 새로움이 부여될까.
글 | @yoonzakka
사진 | @yoonzakka
내용참고 | (주)일신설계종합건축사사무소, 대담부산시립미술관 <단순성과 간결성의 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