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백제병원
길이 1.5km 남짓한 골목 ‘초량 이바구길’은 남선창고 옛터, 초량교회 등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부산 원도심 골목 중 하나다. 부산역 앞 접근성과 부산의 근대부터 한국전쟁 이후의 삶까지 근현대사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건물이 있다. 바로 ‘구) 백제병원’이다. 골목 초입을 지나 쉽게 보이는 적벽돌 외관의 건물은 한눈에 봐도 오래된 흔적이 엿보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형태와 칙칙하게 검붉게 변해버린 재료는 주변 건물과는 대조를 이루며 곳곳에 발견되는 훼손된 흔적들에서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이 거쳐갔음을 증명한다.
1920년대 부산은 기껏해야 2-3층 건물이 전부였던 시기, 최용해라는 의사가 1927년 4층짜리 벽돌건물을 시작으로 백제병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같은 해 바로 옆에 지하 1층 지상 6층짜리를 붙여 건축하며 부산에서 관공서를 제외한 개인이 6층 높이의 병원건물을 세운건 최초였다. 건물의 크기만큼 병원이 규모 역시 거대했는데 치과 이비인후과 등 진료과목의 추가와 30명 가까이 되는 직원과 40여 규모의 병상을 갖춘 백제병원은 부산부립병원, 철도병원과 함께 3대 병원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러나, 1932년 돌연 최용해가 병원을 폐업하고 일본으로 돌아갔고 건축 당시 자금을 빌려줬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어갔고 다시 중국인 양모민(楊牟民)에게 건물을 넘기게 되며 건물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현재 기준으로 건물은 4층 벽돌 건물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부는 목조로 구성됐다. 내부의 모습은 양모민(楊牟民)이 건물을 넘겨받은 후 개수한 형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양모민(楊牟民)은 건물 내부를 수리하여 봉래각이라는 중국 요리점을 개업을 하게 된다. 부산역 앞에는 부산 차이나타운이 형성돼 있다. 부산 차이나타운은 조선후기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출병한 이래 중국인들이 부산으로 몰려오면서 형성됐는데 마침 이 건물이 부산 차이나타운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수많은 화교인들의 방문과 입소문을 통해 번성한 봉래각은 부산에서 갖아 유명한 중국집으로 꼽혔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탄압에 의해 봉래각은 폐업을 하게 되고 양모민(楊牟民)은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후 건물은 부산에 주둔한 아까즈끼[曉] 부대가 접수하여 장교 숙소로 이용된다.
내부의 모습은 중간에 복도를 두고 좌우에 방을 둔 형식으로 외부에 설치된 창문은 입면에서 평면이 드러나지 않게 계획된 입면 디자인으로 처리했고 위아래 내리닫이창을 달았다. 목재 계단과 바닥 그리고 천장 등에 원형의 모습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한 발자국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들리는 목재의 울음소리와 목재의 거친 장식은 과거의 한 부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외부를 살펴보면 남면의 건물 출입구 상부를 벽돌을 세워 엮은 아치형 문으로 멋을 낸 요소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건물 외부의 꼭대기에 회색 화강암을 역사다리꼴 형태로 디자인해 벽돌 속에 박아 넣어 외관을 수려하게 보이도록 하였고, 3층과 4층의 창 사이에는 검붉은 벽돌로 이중 다이아몬드 모양을 연출하였다.
해방 이후 건물은 부산치안사령부와 중화민국 임시 대사관으로 사용되다 개인에게 불하되어 1953년 신세계 예식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더 좋은 시설을 갖춘 예식장들이 부산에 생기기 시작하고 변화하면서 수많은 신혼부부들을 향한 하객들의 박수소리로 가득했던 예식장도 결국 막을 내린다.
건물이 세워지고 40여 년 가까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간판을 바꿔가며 자리를 지키던 곳은 한때 부산 최초이자 최고의 영광을 누렸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며 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1971년 보수를 통해 다양한 업종의 점포로 간판을 걸었지만 1972년 옆 건물에서 난 불이 옮겨 붙었다. 지붕은 날아가고 건물의 대부분이 타 버린 채, 건물의 외부 골조만 남게 되었다. 이로 인해 부산시는 화재 이후 건물의 5층을 철거하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점포, 사무실, 식당 등이 건물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한 건물은 2014년 등록문화제 제647호로 지정된다.(현재 문화재 지정번호는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1년여에 걸친 복원 위주의 리모델링이 이루어지면서 옛 모습을 완벽히 되살리는 게 아닌 사각형, 마름모꼴 등 부정형의 평면 위에 지어진 방 형태를 그대로 둔 채, 목조계단과 장식 등 병원으로 운영되던 시절의 남은 흔적들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근대건축물 중 끊임없는 용도 변경을 거치며 남아있는 건물은 카페와 책방으로 사용되며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대화를 시도하고 기억되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결국 건물을 오래 보존하고 기억하는 방법은 '상황에 맞춰 잘 쓰고 쓰여야 하는 것'이다. 공간은 사람이 채워져야 비로소 쓰임이 있는 곳이며 기억과 지속성이 유지된다. 수많은 용도변경과 화재로 인한 소실 등 우역곡절을 겪은 건물에 남겨진 장소의 시간과 흔적은 100년이 가까운 지금도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간직하고 있다.
글 | yoonzakka
사진 | yoonzakka
내용자료 | 부산역사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