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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zakka Feb 06. 2024

아픈 역사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문화공감수정




오초량을 방문한 후 근처 기사식당거리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다. 그전에 동네를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 싶어 골목 사이를 배회하다 언덕배기에 우뚝 서 있는 일본식 가옥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란각’이었다.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밤편지>의 촬영 배경지, <범죄와의 전쟁> 영화 촬영지 등으로 익히 잘 알려진 이곳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장소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방문해야지 하고 잊고 있었던 찰나, 우연히 발견한 기대 속 발걸음을 재촉했다. 담을 넘어 남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두 개의 건물은 웅장한 자태와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를 선사하며 주변의 현대적 건물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입구에 들어서면 세 칸의 맞배지붕 대문과 나무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의 풍경은 예스럽기까지 했다. 



여실히 드러나는 요소들


이 장소는 막대한 토지를 매입하여 농장을 경영한 일본인 하자마 후사타로의 소유지였다. 1925년, 오하라 타메는 이 토지를 매입하여 당시 부산에서 토목건축업자로 명성이었던 다나카 히데요시에게 주택 건축을 부탁한다. 그 결과 1층 규모의 일본식 주택이 완성된다. 



정란각은 일본식 가옥으로 원래는 두 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유권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한 채만 보존되었고 그 흔적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건 바로 입구 왼편에 있는 반쪽짜리 작은 연못이다. 조경석을 사용한 일본식 정원 조성방식과 조경수를 심은 모습 등은 일본의 전통 건축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기둥과 초석, 서까래, 정밀하게 가공한 이층 난간과 창호 등은 당시의 일반적인 일본식 주택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오초량에서 봤던 정교한 디테일과 장식 특징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오초량의 최초 건물주인 다나카 히데요시의 손길이 이곳 정란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일까. 국내에 현존하는 일본식 건축물 중에서 규모와 외장, 공간 구성이 탁월해 수작(秀作)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정을 감싸 안으면 내부를 진입하는 한옥과 달리 높은 층고의 복도를 따라 진입하는 일본식 돗자리를 깐 다다미방에 들어서면 외부의 정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흰 창호지를 바른 장지문 사이로 펼쳐진 풍경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일품이다.




연회의 장소에서 기숙사로 기숙사에서 요정으로


현재와 같은 형태의 건축물은 다마다 미노루에 의해 건축되었다. 1939년, 상업 무역과 섬유공업 등의 대주주로 참여했던 다마다는 오하라로부터 토지를 매입하였고, 1943년 2층 규모의 주택을 건축한다. 현관 기준 서쪽으로 쌓아 올린 석축은 돌 가장자리를 따라 한번 더 다듬은 뒤 모접기 방식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했고 1층과 2층 사이에 반 2층의 공간을 두어 문간방 역할을 하도록 했고 복도 끝에 부엌으로 내려갈 수 있는 작은 계단이 하나 더 있다는 점으로 비췄을 때 주거 용도보다는 연회나 회합을 위한 장소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컸다고 추측하고 있다.



해방 이후, 미군정청 장교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개인에게 불하된 주택은 한동안 요정으로 활용된다. 1990년도 이전에는 일본인만 출입이 가능했고 상당한 액수의 술값이 청구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90년대에 들어서며 한국경제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한국인에게도 출입을 허가했는데 자연스레 주변에는 음식점과 미장원이 가득 들어섰다고 한다. 이후 2007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후 2011년부터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관리를 하게 된다.



아픈 역사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건축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원형이 거의 보존되어 있는 주택은 1층은 일부 온돌방식으로 개조되었지만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소음 위로 햇빛만이 비추는 난간을 따라 2층을 올라가면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의 거실과 응접실이 자리한다. 1층의 작은 방들이 겹겹이 뭉쳐있다면 2층은 확 트인 거실로 대비감을 이룬다. 2층 거실 한편은 부산의 역사와 관광, 예술 등 콘텐츠를 갖춘 방과 전시시설로 활용되고 있으며 카페로도 이용되고 있다.  



'정란각'이라는 이름은 '개항기 수탈사 전시관'으로 활용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2012년 '문화공감수정'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전시관이라기보다 카페로서의 성격이 짙어졌다. 건축배경과 공간의 용도를 살펴볼 때 적산가옥은 한국사의 아픔과 씁쓸함이 깊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오로지 독특한 분위기와 이국적인 경치 아래 즐기는 치유의 공간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건물이 가진 역사의 의미와 건축물로서의 가치의 상징성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순간이다.


글 | yoonzakka

사진 | yoonzakka

내용자료 | 문화유산국민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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