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한국 영화를 보면 부산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유독 많다. 대체 왜 그럴까? 부산은 일제강점기 이후 개항을 통해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한국전쟁 이후 바다를 낀 항만도시의 지리적 이점과 인근 지역 농촌의 인구 유입으로 풍부해진 노동력은 급격한 도시 성장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고 현재 부산은 인구 350만의 대도시가 되었다. 부산이 가진 도시의 풍경은 21세기 첨단산업 도시의 면모와 70-80년대 풍경이 공존한다. 해운대에 가면 상업적인 건물들이 내뿜는 화려한 마천루가 있고 자갈치 시장과 남포동 뒷골목에는 옛 추억이 가진 향수들이 아직 남아있다.
지역이 가진 지리적 특성과 향토적 문화, 무엇보다 바다를 낀 항만도시 부산이 그리는 독특한 풍경은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영화를 찍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일찍이 영화인들에게 주목받은 도시 부산은 자연스럽게 영화 및 예술 분야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지역민들 역시 극장가에 몰리며 영화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하면서 부산과 영화는 더 가까워졌다. 더 나아가 부산이 영화 도시로 부상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996년 제1회를 시작으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다. 장르 불분 다양하게 선정되는 초청영화들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징성이었고, 현재는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권위 있는 영화제의 주요 무대가 펼쳐지는 해운대 ‘영화의 전당’은 도시를 상징하는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영화제의 주요 무대는 해운대가 아닌 남포동이었다. 제1회 영화제 당시만 해도 해운대 일대는 아예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로 그저 부산 동쪽 변두리 일대에 불과했다. 영화의 전당이 자리한 이 자리는 당시 수영비행장이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영화제의 규모와 낡고 협소한 영화관 시설을 해결하고자 장소를 물색하던 중 지금 해운대 자리로 조금씩 옮겨오게 된다.
역동적이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웅장한 건물은 가까이 다가가면 그 분위기에 압도 당한다. 건물과 건물을 가로지르는 휘몰아치는 다리, 얇은 선들로 이어지는 요소와 유리 난간, 등 일반적인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수직으로 반듯한 벽, 그 위를 평평하게 덮는 지붕 등 건물이 가져야 할 기본 조건을 모두 부정하고 조각 작품과 같은 모습으로 지어졌다. 이는 바로 과거 모더니즘 건축의 순수한 형태를 비판하고 기존의 양식과 형태를 해체해 재결합하는 해체주의 건축의 특징이 나타난다.
보면 볼수록 BMW Welt(World)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건물의 재질과 지붕의 모양새, 나선형 지지대(더블콘), 특히 지붕의 형태와 곡선의 요소는 거의 동일했다. 사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설계회사 ‘쿱 힘멜브라우’는 BMW Welt(World)를 설계에 이어 곧바로 영화의 전당을 설계했고, 실제 두 작품의 설계 컨셉 역시 비슷했다. 그는 'BMW Welt(World)'작품을 작가적 코드를 적용해 이전의 작품에 잘됐던 부분과 잘못됐던 부분을 발전시켜 영화의 전당에 부합되는 건축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다.
소용돌이치는 물살 같은 형태의 '더블 콘(Double Cone0)'과 자연 채광과 자연 환기가 가능하고 유리와 금속으로 마감된 조각 같은 지붕의 '클라우드 루프(Cloud Roof)'라는 특징적인 디자인 요소는 영화의 전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정형의 곡선과 무채색의 외장재는 장중하면서 깊이 있는 형태와 색감으로 건물의 품격을 높인다. 특히 유기적 곡선이면서 그 디테일은 기하학적 형태를 띠는 외관은 부드러우면서도 딱딱한 이미지를 그린다.
내부는 각 프로그램의 성격을 고려해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해 남겨두어 가변성이 강하고 보행자 동선, 에스컬레이터, 브릿지 등 자연생성물 간의 인위적인 연결로는 메탈로 표현해 차가운 외관과 함께 강렬함을 표방한다.
이 건축물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지붕이다. 더블콘의 지붕을 빅루프, 야외극장의 지붕을 스몰루프라고 칭한다. 빅루프는 비대칭 구조로 163m 중 순수하게 밖으로 나온 캔틸레버(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는 상태로 되어 있는 보) 부분만 85m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긴 캔틸레버다. 코펜하겐 오페라하우스가 37m, 루체른 콘서트홀이 45m인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지붕은 하늘과 구름의 가벼움, 빛의 반사를 표현한 것으로 하부에는 구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펀칭메탈과 LED로 표현했다. 미디어 바다를 형상화한 유기적인 형태의 led는 화려한 불빛화 수려한 형상이 주는 심미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닌 또 다른 공간확장의 방향성으로 공간과 사용자 간의 소통을 제안한다. 스몰루프의 하부는 야외극장으로 전용상영관과 우천 시에도 걱정 없이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게 계획되었다.
공간은 프로그램을 대변해서 사용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소통해야 한다. 영화를 통해 즐기는 문화적 향유는 사람을 통해 전달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건 공간이다. 그리고 그 흐름이 가장 활발하게 이 루어지곳이 바로 광장이다.
광장은 대지 맞은편의 APEC나루공원과 수영강의 연결을 통해 오픈스페이스를 확장한다. 영상센터 주변으로 수영강과 주변 도심의 역동적인 흐름을 광장으로 끌어들이고 오픈스페이스로 확장시켜 도심과 자연을 연결한다. 그리고 광장 자체를 부분적으로 융기시켜 생성되는 산과 언덕의 내부공간을 활용해 거주공간으로 조성해 들어 올려진 지형과 인위적으로 형성된 하늘(빅루프) 사이의 공간은 공공공간이 형성된다.
광장과 외벽은 동일한 현무암 석재를 사용함으로써 지표면에서 융기된 형상이 자연적으로 굳어진 질감을 표현했다. 현무암은 태양광에 대한 흡수율이 좋고 보행 시 접착성이 우수해 쾌적한 보행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햇빛의 각도에 따라, 기상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색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광장과 외벽의 현무암 조각 크기는 제각각 통일되지 않은 모습이다. 4가지 크기의 현무암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새로운 문양을 만들어, 멀리서 또는 위에서 볼 때 등고선을 형상화했다.
현대라는 의미에서의 건축은 참여를 유도해 낸다. 과거 건축이 단일의 기능을 단일한 사용자에게 주어 건물을 종합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했다면, 현대의 건축은 단일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이어내 다양한 사용자에게 복합적으로 전달시키고 다양한 기능이 섞여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전당은 평소에 야외극장, 기념광장, 노천카페 등으로 사용하고, 영화제와 같은 특별 행사 기간에는 행사 및 전시공간으로 사용된다. 또한 사람들은 비어 있는 광장에서 보드를 타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는 등 공간을 온전히 누리며 그리는 자유로운 모습은 마치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닮아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고 다채로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의 전당의 상징이자 추구하는 기능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흡수・결합시키면서 멋진 볼거리와 대화가 이루어지는 대중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열린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서 영화의 전당은 부산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되었고, 이를 통해 선진문화를 이끄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이미지와 부산에 대한 문화도시 이미지 형성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단순히 권이적이고 상징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영화와 더 나아가 예술을 통해 도시의 미관과 관광산업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문화적 아이콘임은 확실하다.
글, 사진 | yoonzakka
내용참고 | 영화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