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촌, 골목 끝 집
나는 어렸을 때부터, 편식이 심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선호하는 음식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편이다. 유치원, 국민학교, 초등학교 때부터 늘 반찬 투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오늘 밥 뭐 먹어?’
‘엄마, 오늘은 먹을 반찬이 없어 ‘
‘엄마, 물 말아서 먹을래’
이런 나의 편식에 불을 붙인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4남매는 나이차이가 있다. 큰니의 대학교 졸업식 날, 늦둥이인 나는 겨우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다. 오랜만에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날인데, 메뉴가 불낙 전골이었다. 식당은 나름 지역에서 꽤 유명했고, 졸업식이라는 이벤트가 겹쳐 사람들이 가득했었다.
주문했던 불고기가 테이블에 차려지고, 어느 정도 끓이고 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식당 아주머니가 살아 있는 낙지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그걸 그 뜨거운 불고기 국물 속에 넣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축하로 가득할 졸업식 날에, 나는 엉엉 울었다.
‘아빠, 저 낙지가 너무 뜨겁지 않을까’
‘엄마, 저 낙지도 나처럼 엄마, 아빠가 있을 텐데’
‘큰니, 낙지가 아파서 몸부리 치는 걸 봐봐 ‘
입맛을 다시고 있는 우리 가족들 앞에서, 이 말을 하면서 내 눈물을 정당화하고 싶었지만, 터져 나오는 눈물로 인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가족들은 전부 나를 놀리면서 웃었지만, 나한테는 못 먹는 음식이 하나 더 늘어났다.
엄마는 때로는 강하게 질타하면서, 때로는 약하게 회유하면서 나의 편식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 소시지나 계란 후라이, 고기반찬을 매 끼니때마다 해주려고 노력도 했고, 때로는 밥을 안 먹으면, 뭐를 안 해주겠다고 협박도 했었다.
아빠는 조금 달랐다. 아빠는 동생과 나를 밥상에 앉혀놓고 재밌는 장면을 연출했다. 밥 한 숟가락을 뜨고, 밥상 위에 있는 모든 반찬을 조금씩 밥 숟가락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정말 큰 밥 한 숟가락과 반찬을 한입에 넣어서 먹었다.
어린 나는 아빠의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내가 먹기 싫어하는 나물, 김치, 해산물과 같은 반찬들을, 그것도 따로따로가 아닌, 한입에, 한 번에 먹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비빔밥의 존재에 대해 깨달았다. 이상하게 하나하나씩 먹으면, 먹기 어려웠던 반찬들이 밥에 다 넣고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으면 먹을만했고, 심지어 맛도 있었다. 그 이후로도 반찬 투정은 물론 여전했지만, ‘물 말아서 먹을래’ 대신에 ‘고추장에 비벼서 먹을래’라는 말로 대신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빠는 아빠의 형 얘기를 해주었다. 아빠는 막내임에도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아빠의 형들이 막내를 위해서 시골에서 지게를 짊어지고 일을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형들의 노력으로 도시에 나와 밥을 먹는데, 쌀 한 톨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지 어린 나와 동생에게 지속적으로 설명하였다.
아빠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돈의 가치를 쌀로 환산해서 얘기했다. 내가 월급을 받기 시작할 때, 쌀 한 가마니 10개를 받으니 굶어 죽지 않겠구나라고 표현을 했고, 주식으로 소액을 벌더라도, 이 정도면 쌀이 몇 가마니인데 좋다고 늘 얘기하셨다.
아빠는 늘 그랬다.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엄마는 잔소리와 회유, 협박을 골고루 섞어서 했다면, 아빠는 몸소 실천을 보여주고, 그에 따른 아빠의 옛날 얘기를 해주시면서 공감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다. 어렸을 때는 아빠의 ‘라떼’ 얘기가 귀에 잘 안 들어왔는데, 지금은 이따금씩 그리워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 끼니 6명의 가족과 임종 전까지 모셨던 할머니의 식사까지, 대가족의 식사를 매번 책임졌던 엄마에게 겪지 않아도 될 만한 스트레스를 내가 줬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항상 엄마를 만나면, 무조건 외식을 하려고 노력한다. 집에서 먹으면 또 엄마가 평생 해왔을, 그렇게 지겨운 밥을 또 해야 하는데, 그 모습이 미안하고, 그동안 잘 먹지 못했던, 좋은 음식과 비싼 음식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남자라서, 아들이라서 이런 마음을 잘 표현하지도 못한다. 돈 아끼라고 집에서 먹자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늘 퉁명스럽게, 엄마 밥은 맛없어, 나 입맛 고급이야,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 라는 말만 하는 나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참 못났다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게 내가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식인걸 언젠가는 엄마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