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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문화촌, 골목 끝 집

by 딸딸아들딸

아빠는 38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하셨다. 그리고 한결같이 넥타이를 꼭 차고 출근하였다. 아빠는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덩치가 있었던 편이라, 정장이 나름대로 잘 어울렸다. 흰 와이셔츠에 다양한 색깔과 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차고, 회사를 출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저렇게 되어야지라고, 어렸을 때 생각한 적이 있다.


아빠는 평생 옷 자체에 관심이 많이 없었다. 우리 아빠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대의 어른들은 먹고살기에 바빠, 외모를 가꾸고 외형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밖에 나가면, 또는 회사 사람들에게 깔끔하게 옷 잘 입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아빠의 주름하나 없는 와이셔츠와 세련된 넥타이 뒤에는 엄마의 노력과 고생이 숨어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다하고 난 다음, 엄마는 아빠가 내일 출근할 때 입을 와이셔츠를 다림질하였다. 엄마는 다리미가 뜨겁다고 주변에 오지 말라고 하였지만, 나는 구김이 있는 와이셔츠가 다리미로 인해 금세 펴지는 게 신기했고, 그 특유의 세탁소 냄새가 좋아서 옆에 있었다. 분무기에 물을 채우기도 하고, 안방 문 뒤에 있는 다리미판을 펴 놓기도 했었다. 다림질이 끝나면, 엄마는 아빠가 내일 입을 정장과 어울릴만한 넥타이를 찾아놓고 하루일과를 마무리하였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운이 좋게 회사 면접을 처음으로 볼 기회가 생겼다. 부랴부랴 정장과 와이셔츠를 급하게 사고, 집에 오니 오랜만에 익숙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엄마는 아빠한테 그랬던 것처럼 내 와이셔츠를 다려주었고, 아빠가 쓰던 넥타이를 몇 개 골라와서, 아빠한테 넥타이를 매달라고 하였다. 면접 하루 전날 넥타이 매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는 면접 준비를 하는 게 더 급했기에, 아빠가 나를 앉혀 두고 넥타이를 매주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 후 7년 동안 내 넥타이를 계속 매주었다.


엄마는 아빠가 은퇴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혹시 아들이 쓸지도 모른다면서, 아빠 넥타이를 버리지 않았다. 38년간 모은 넥타이라 그 수와 종류가 많았고, 너무 올드하거나 이상한 무늬가 아니면 나도 크게 개의치 않고 아빠 넥타이를 잘 매고 다녔다. 일요일 저녁에, 엄마는 내가 주중에 입을 와이셔츠 5개를 다림질해 주고, 아빠는 넥타이 5개를 매주었다. 길이가 안 맞으면 몇 번이고 다시 매 주고, 예쁘게 매듭이 지어진 넥타이를 조금 헐렁하게 풀어 옷걸이에 가지런히 골라놓았다.


아빠는 나한테 넥타이 매는걸 배우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나도 넥타이 매는걸 한번 배워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되면서 부자지간에 있어 자연스럽게 대화가 줄어들었는데, 넥타이를 매주는 시간은 물론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빠, 넥타이 좀 매 줘"

"어, 가져와"

"어, 여기"

"회사는 별일 없고?"


투박한 대화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남자들만의 대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결혼할 때, 아빠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맞춤 정장을 제작했다. 아빠가 기존에 입었던 정장들은 너무 오래되었고, 무엇보다 그때 보다 아빠의 살이 많이 빠져서 좋은 기회에 좋은 옷을 사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넥타이 중에서 가장 비싼 명품 넥타이를 주었다.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정장을 입고, 좋은 넥타이를 찬 아빠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났었다.


요새는 노타이 문화라던지, 회사에서도 비즈니스 캐주얼을 더 장려하다 보니, 넥타이 찰 일이 드물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넥타이를 잘 못 맨다. 가끔씩 중요한 자리나 넥타이를 꼭 해야 되는 자리에 가게 되면, 전날 저녁부터 유튜브를 보고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열심히 잘 매더라도, 아빠가 만든 매듭같이 예쁘게는 만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넥타이를 잘 매 주던 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 넥타이가 아빠랑 나 사이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물건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빠 장례식장에서 검은색 상주용 넥타이를 받았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슬펐고, 소리 없이 울었었다. 사람들마다 평범한 물건이 주는 특별한 의미들이 있다. 나한테는 넥타이가 주는 의미가 특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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