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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문화촌, 골목 끝 집

by 딸딸아들딸

대우 자동차 프린스, 우리 가족의 첫 차이다. 사실 아빠의 첫 차이기도 하다. 아빠는 남들보다는 다소 늦은 나이에 첫 차를 구매했다. 웅장한 크기의 검은색 프린스가 멋진 자태를 뽐내며, 우리 골목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승용차이었기 때문에, 엄마, 아빠, 4남매가 한 번에 타기는 너무 비좁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다.


프린스가 우리 동네에 온 날, 우리 가족과 동네 골목은 축제였다. 동네 어르신들과 모여 돼지머리를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음식과 술을 나눠먹으며, 절을 하면서 무사고를 기원해 주는 고사를 지냈다. 그 시절엔 다들 그랬던 것 같다. 차량 수요가 늘어나던 시기인지라, 동네에 새 차가 나타나면, 다들 모여서 꼭 축하해 주었다.


아빠가 퇴근할 때 동네 골목에 도착하면, 집안에 있는 나랑 동생에게, 주차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곤 했다. 나랑 동생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동네 골목에 나가서, 아빠가 주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빠는 주차를 하고, 우리와 함께 회색 차 커버를 차에 꼭 씌우고 같이 집에 들어가고는 했다. 아빠는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사계절 내내 차량용 커버를 꼭 사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표현은 잘 안 했지만, 아빠의 첫 차를 무척 아꼈던 것 같다.


주말에는 집에서 골목까지 수도 호수를 연결해 골목에서 세차를 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같이 세차를 하기 싫다고 하면, 아빠는 오백 원, 천 원을 준다고 하면서, 세차를 같이 하자고 하였다.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막상 세차를 하러 동네 골목에 나가보면, 다른 집들도 가족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골목에서 세차를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좋은 약품에 다양한 기능들이 있는 그런 고급 세차용품들은 없었지만, 물과 걸레로 하는 동네 골목에서의 세차도 나름 그 시절만의 감성이 있었던 것 같다.


엄마도 차가 생기니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운전을 시작했다. 사실 엄마는 운전면허를 취득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큰니가 엄마의 운전면허 시험을 강제로 등록해서, 결국 시험을 보고, 취득을 하게 되었다. 그냥 시험을 안 보면 등록비 5천 원이 날아가는 건데, 그 5천 원이 아까워서 엄마는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봤다고 했다. 엄마는 가끔 첫 운전의 기억을 얘기해 주는데, 30분 정도 운전을 하고 오니, 입고 있었던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고생했다고 하셨다. 그런 경험도 잠시, 엄마는 4남매의 다양한 목적지를 동행하며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었다.


훗날 엄마가 짝니를 도로주행 연습을 시켜주었을 때가 있었다. '운전 연습 안전히 잘하고 오자'고 하고 파이팅 하면서, 분명 둘이서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나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짝니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는 운전 연습을 엄마랑 안 한다고 엉엉 울면서 돌아왔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엄마도 곧바로 들어오면서, 다시는 짝니를 운전 연습 안 시켜준다고, 화를 내면서 돌아왔던 모습 또한 기억이 난다. 나는 시차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와 짝니를 지켜보면서 도대체 누가 잘못한 건지, 아직도 정답을 모른다.


아침 7시에 대학교 영어 어학당을 다녔던 큰니를 위해, 엄마는 새벽에 운전을 했다. 그 이후 엄마가 돌아오면, 아빠는 회사로 출근을 하였다. 가끔 아빠는 저녁에 퇴근한 후, 나랑 동생을 태우고,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는 짝니를 만나러 갔었다. 기숙사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짝니를 위해, 간식을 주기도 하고 격려를 해주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빠는 다니던 회사에서 은퇴를 하였다. 그때부터 아빠는 나를 위해, 2년 동안 나를 고등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그 후, 내가 대학교를 들어가자, 동생을 위해 3년 동안 동생을 고등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그랬다. 엄마, 아빠는 프린스를 대부분 4남매를 위해 사용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단 둘이서만 차를 타고, 바람을 쐬러 간다든지, 근교에 분위기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온다던지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 아빠는 워낙 집에 있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곳에 기름 값을 쓰는 것도 아까워했었다. 하지만, 4남매의 편안함과 시간 절약을 위해서는, 엄마, 아빠의 시간 투자와 경제적인 지원은 아낌없이 할애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의 자동차가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프린스가 그렇다. 내가 운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가끔씩 몇몇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운전을 하는 엄마, 아빠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차 안에서 퉁명스럽게 대화하기도, 택시 타듯이 아무 말 없이 목적지까지 갔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 내가 차를 사고, 운전하며 깨달았다. 엄마, 아빠가 했던 일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그리고 나에게 삶의 작은 변화를 만들게 해 주었다. 그래서 더 한 번씩 생각난다. 그 시절 프린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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