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통닭

문화촌, 골목 끝 집

by 딸딸아들딸

늘 부족했다. 그래서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항상 통닭을 1마리만 배달시켰다. 아빠와 엄마, 4남매인데, 6명이서 먹는 건데, 1마리라니,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부족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 가족은 그랬다. 아니,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늘 절약하고, 뭐든지 아껴서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외식을 한다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일은 사치였고, 특별한 이벤트가 있지 않으면 통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엄마한테 저녁에 통닭을 시켜달라고 졸라대면, 엄마는 늘 그랬다. 집에 반찬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통닭을 시키냐고.


누나들은 영리하게 나를 이용할 때가 많았다. 큰니와 짝니가 통닭을 먹고 싶으면, 엄마한테 항상 내핑계를 대곤 했다.

"엄마, 오늘 아들이 학교에서 칭찬받았대~"

"엄마,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이 오늘 꼭 통닭을 먹고 싶다고 하는데?"

"엄마, 오늘 동생이 집에서 공부 좀 하는 거 같은데, 통닭 한 번 먹는 게 어때?"

그러면 가끔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동네 통닭집 아저씨한테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 빼먹지 않고 늘 부탁했다.

"사장님 통닭 1마리 시킬 건데, 우리 집 6명 있으니깐 양 좀 많이 줘, 꼭~"

그래서인지, 그 시절 인심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우리 집은 종이봉투를 꽉 채운 통닭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배달 온 소중한 통닭은 우리 집에서 그냥 저녁 반찬 중에 하나였다. 엄마는 찌개나 국, 김치, 밑반찬, 그리고 각각 밥 1 공기 씩을 차려 통닭과 함께 저녁을 차려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6명이서 통닭 1마리를 시켜서 먹는데, 그것만 먹어서는 절대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닭을 두고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닭다리를 과연 누가 먹을 것인가. 아빠가 늘 닭다리 1개를 드셨었고, 엄마는 느끼하다며 통닭을 드시질 않았다. 대학교 영문과에 재학 중이었던 큰니는 평소에 쓰지도 않는 사자성어인 "장유유서"를 내세우며, 남은 닭다리를 먹었다. 나도 전략이 필요했다. 6명이 먹다 보니, 내가 먹을 수 있는 통닭은 많아야 3~4조각이다. 닭다리는 처음부터 포기했고, 가끔 젓가락질을 잘못해서 목이나 윙봉같이 살이 적은 부위를 내 밥그릇으로 가져오면, 그날은 어렵게 통닭을 시켜놓고도 양념만 먹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나는 남들이 먹지 않은 퍽살을 먹었다. 밥에 퍽살과 튀김옷, 양념과 콜라를 같이 먹으면 배도 부르고,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남은 양념이 있으면, 흰밥 위에 올려먹었다. 지금은 치밥이라는 게 하나의 트렌드지만, 치밥의 원조는 우리 가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다른 가족들도 우리처럼 그렇게 통닭을 먹는 줄 알았다. 나중에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치킨을 먹을 때 치킨만 먹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치킨집에서 하길래 나는 자연스럽게 공깃밥을 주문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많은 선배, 동기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0명이 참석한 신입생환영회에서, 그것도 치킨 집에서 공깃밥을 주문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제는 가끔씩 엄마, 아빠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배달 좀 집으로 시켜달라고 나에게 전화가 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꼭 집에 반찬도 많은데 무슨 치킨이냐고 한마디 농담을 던지고 치킨을 주문해 준다. 그리고 맛있었냐고 나중에 물어보면, 맛있게 잘 먹었지만, 옛날 통닭 맛이 안 나온다고 하신다.


나도 마찬가지다. 취업을 한 후, 첫 월급을 받고, 뭘 하고 싶냐라고 물어보면 치킨 1마리를 나 혼자 먹고 싶다고 얘기해 본 적도 있다. 실제로 혼자 1인 1 닭을 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막상 혼자 먹어보니 밥 생각도 나고, 많이도 못 먹었다. 그리고 심지어 맛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었다. 입맛이 변해서,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는데, 그것보다는 통닭이라는 음식이 우리 가족한테 주는 특별한 추억의 맛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얘기를 본 적이 있다. 여행을 갈 때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나에게는 통닭이 그렇다. 어디 브랜드 치킨이 맛있냐가 아니라 누구랑 먹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거짓말을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