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짓말을 하지 말자

문화촌, 골목 끝 집

by 딸딸아들딸

국민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가 있었다. 바로 집안의 가훈을 스케치북에 적어와서 그 내용과 의미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 가훈이 뭐야?"라는 내 물음에 엄마와 아빠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고 했다. 나는 그 순간 당황했다. 우리 집 가훈이 너무 멋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대기만성, 온고지신" 등과 같은 사자성어나 한문으로 가훈을 정하고, 액자로 집에 걸어놓고는 했었다. 또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등 위인들이 남긴 어록들을 참고해 가훈으로 삼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멋진 가훈이 얼마나 많은데,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니 너무 없어 보이고 창피했다. 국민학교 1학년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아주 당연한 말인지라, 그런 걸 가훈으로 정한 아빠와 엄마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음날 발표 시간이 시작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친구들은 화려한 사자성어, 유명인의 어록 등 멋진 가훈을 돌아가면서 발표했다. 드디어 내 차례, 우리 집 가훈은 거짓말을 하지 말자입니다. 이 한마디만 하고 내 발표는 끝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발표를 더 이상 이어 나가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우리 집 가훈은 거짓말을 하지 말자이고, 이유를 말하고, 가훈이 너무 자랑스러우며, 잘 지켜나갈 것이다,라는 스토리 라인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는 가훈을 좋아하고 자랑스럽다고 발표하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 거짓말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감이 없었다. 한 줄만 말하고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자 선생님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우리 집 가훈을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도 아닌 선생님이 발표해 준 우리 집 가훈 발표는 끝이 났다.


그로부터 한두 달이 지난 후, 중간고사 같은 시험을 봤었다. 시험이 끝나고 난 후, 선생님은 내가 올 백점을 맞아 우리 반 1등을 했다고, 친구들 앞에서 축하해 주었다. 첫 시험에 공부도 안 했는데, 1등을 하다니 공부를 곧잘 했던 큰니, 짝니를 생각하면서 기뻤다. 선생님은 시험지를 다시 나눠주면서 오답풀이도 하면서, 채점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5과목 중 마지막 과목인 즐거운 생활에서, 20문제 중 마지막 문제에서, 정답이 3번이었는데, 나는 2번을 정답으로 체크했고, 분명 틀린 답안이었는데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채점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실수로 틀린 문제를 맞았다고 표시한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너무 혼란스러웠다.


"불과 한 시간 전에 친구들 앞에서 축하를 받았는데, 올백이 아니었구나.."

"그냥 모른 체 넘어가야 하나.."

"선생님이 일부러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테스트를 하는 건가?"

"누가 나의 양심을 시험하고 있는 건가?"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마지막 문제를 틀린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점수를 정정해 주셨다. 나는 올백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올백은 아니었지만, 우리 집 가훈은 지켰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뿌듯했다. 빨리 가족들한테 이 자랑스러운 사건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빠와 엄마, 큰니, 짝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가족들이 하는 말이,

"가훈보다는 올백이 더 중요하지~"

"가훈을 올백점을 맞자라고 바꿔야겠네"

"선의의 거짓말은 해도 된다"

한참 이렇게 웃고 떠들다가 아빠가 잘했다고 칭찬해 줬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가훈 얘기를 이따금씩 한다. 물론 우리 가족들도 거짓말을 한다. 전 재산을 다 아들에게만 주겠다고 분명 나한테 말했는데, 알고 보니 4남매에게 똑같은 말을 한 아빠, 자식들 얼굴만 봐도 좋다고 하는데, 용돈을 주면 제일 크게 웃는 엄마, 그리고 4남매의 다양한 웃음의 거짓말들, 각자의 방식대로 가훈을 잘 지켜나가는 듯하다. 좋은 사자성어와 위인들이 남긴 멋진 말들도 좋지만,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편한 우리 가훈이 이제는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한 지붕 세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