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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콘

문화촌, 골목 끝 집

by 딸딸아들딸

4명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안방에 모여, 우리 가족 6명은 작은 TV를 같이 보았다. '집 나가면 돈이다'라는 투철한 절약정신을 가진 엄마 덕분에, 우리 가족은 남들 다 가는 흔한 나들이도 가 본 기억이 잘 없다.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도 아예 없던 시절이었고, 컴퓨터도 이제 막 보급되는 시절이라, 다른 가족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도 텔레비전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아빠는 TV리모컨을 방미콘이라고 불렀다. 방에 있는 리모컨이라는 뜻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앞뒤가 전혀 맞지를 않는다. 줄임말을 쓸 거라면 방리콘, 방모콘이 맞지 않나? 그때도 우린 이게 말이 안 된다고 얘기했지만, 아빠는 늘 방미콘이라고 불렀고, 하나둘씩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


"방미콘 어디 갔어?"

"방미콘 좀 줘~"

"방미콘으로 재미있는 것 좀 틀어봐"


방미콘의 주인은 항상 아빠였다. 아빠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뉴스와 바둑,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 딱 이 정도였다. 다행히 아빠가 독재자는 아니라, 바둑을 틀고, 5분만 보면 안 되냐고 물으면, 남은 5명은 '아, 아빠~' 하고 야유를 보내곤 했다. 아빠는 바둑을 좋아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 아니면 볼 수가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실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 제일 바쁜 사람이었고, 집에서 혼자 TV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아예 애초부터 존재할 수가 없었다. 바둑을 좋아하지만, TV로 본적도 잘 없고, 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빠 은퇴 후에 4남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고, 이제야 바둑 TV를 마음 것 눈치 보지 않고 보는 아빠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예전 생각이 나면서, 나는 조금은 미안하고, 안쓰런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케이블 TV를 달 때, 조금 더 비싼 플랜을 쓰더라도, 돈을 좀 더 내더라도, 바둑과 스포츠는 다 나오는 채널로 해달라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바둑 채널을 제외하면, 우리는 각자의 취향을 나름 존중하고, 서로 배려해 주었던 것 같다. 전영록 영화가 나오면 큰니를 불렀고, 신승훈이 나오면 짝니를 불러서 같이 TV를 보았다. '개그콘서트'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같은 프로그램이 할 시간엔 다 같이 모여, 재밌게 TV를 보았다.


그중에서, 우리 가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순간은,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였다. 아빠, 짝니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 경기 자체를 좋아했고,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월드컵과 같은 국가 대표 경기는 더욱 열광했다. 하지만 반대로 엄마, 큰니와 동생은 운동 경기 자체도 큰 흥미가 없었고, 왜 새벽에 일어나서, 쇼트트랙 경기를 봐야 하는지, 왜 응원해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작은 방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자는데, 그 방 안에서 TV를 틀고, 작은 응원을 하더라도, 결국은 다 잠이 깰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어느새, 경기 시작 전에는 6명 전원 기상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을 응원하였다. 그리고 경기 결과에 따라 눈물을 흘리기도,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기교육(?) 덕분인지, 우리 가족은 지금 모두 스포츠를 좋아한다. 짝니네 가족은 SSG랜더스 야구단의 팬이고, 동생은 전북현대 축구단의 팬이다. 엄마도 최근에 진행된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의 거의 모든 경기를 챙겨볼 정도로 좋아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유명한 랜드마크를 검색하기보다는, 그 나라에 뛰고 있는 우리나라 선수의 경기 일정을 먼저 찾아보고, 직접 보려고 노력한다. 김연아, 이강인, 추신수와 같은 대단한 선수들을 현지에서 보면 뭔가 모르게 벅찬 감정이 올라온다.


지금은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많은 양질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한 가족이라도 각자 TV와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으로 취향에 맞게 다양한 콘텐츠를 접한다. 당연히 지금이 좋은 시대인 것 맞다. 그런데, 작은 TV 하나로, 제한된 채널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하나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콘텐츠로 소통을 하고, 그게 좋은 추억이 되며, 이렇게 기억을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방미콘이, 우리 집 작은 텔레비전이, 6명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이따금씩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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