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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사세요

문화촌, 골목 끝 집

by 딸딸아들딸

"하나, 둘, 셋!"

"함 사세요~"

"다시, 더 크게 하나, 둘, 셋!"

"함 사세요~"


큰 매형 친구의 구령에 맞춰, 해가 지고 조용했던 문화촌 골목에 큰 구호가 울려 퍼졌다. 오징어 마스크를 쓴 함진아비를 담당한 매형 친구는 크고 소중한 함 박스를 어깨에 메고 문화촌 골목 초입에 앉아 계셨다. 그 주위로 매형의 친구들이 둘러쌓아, 연신 구령에 맞춰 "함 사세요"를 외쳤다. 거실에 있던 우리 가족들과 큰니 친구들은 작고 희미하게 들리는 구령소리를 듣고, 기다렸다는 듯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90년대만 해도 함 문화는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신랑 측에서 준비한 예물을 신랑 친구들이 신부 집에 가져다주는 이런 문화는 많은 볼거리가 있었다. 그중 백미는 신랑 친구들과 신부 측 가족, 친구들 간의 "밀당"이었다. 신부 측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부 집에 손님을 빨리 모셔오려고 노력했고, 신랑 친구 측에서는 최대한 늦게 집에 들어가 이 결혼식을 많은 동네 분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함진아비에게 노력하는 신부 친구들과 가족들, 때론 짓궂게, 때론 재밌게 이 문화를 즐기는 신랑 친구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예비 신랑, 이들 사이의 실랑이가 재밌고 즐거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이런 문화가 익숙한 듯, 큰니 친구들은 비장한 얼굴로 간이 탁자와 술, 음식들을 들고 문화촌 골목으로 나가서 매형 친구들을 만났다. 이미 골목에는 많은 동네 어르신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얼른 술 따라주요~"

"이번 함은 만만치 않겠어"

"오늘 저녁 재밌겠네~"


첫 번째 타자로 큰니 친구들이 나섰다. 매형 친구들이 단 1m라도 더 우리 집 쪽으로 올 수 있도록 많은 노력들을 했었다. 매형 친구들에게 각자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으며, 술과 안주를 권하기도 했다. 1m라도 우리 집 쪽으로 전진을 하면, 골목 어르신들은 박수를 쳐주기도 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매형 친구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동네 어르신들과 우리 가족은 한마음 한뜻으로 아쉬워하기도 했었다.


중간쯤 지났을까, 그때 우리 가족들도 투입되었다. 큰니는 함 문화에 대해서 나와 동생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다. 사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매형 친구들을 어떻게 해서든 빨리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말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었던 나와 동생은 사명감을 가지고, 큰니가 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골목에서 매형 친구들을 맞이했다.


매형 친구들은 제수씨의 어린 동생들이 나오자, 귀여워해 주셨지만, 그들도 할 일이 있는 법, 큰 소리로 우리에게 장기자랑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심지어 함진아비 친구분의 오징어 마스크가 귀신처럼 보였다.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방안퉁수였던 나는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노래를 부르자니 아는 노래가 기억에 없었고, 춤을 추자니 춤을 춰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답답했다. 그 순간 동생이 나섰다.


"제가 SES 춤출게요, 대신 얼른 집으로 오세요"


제수씨 동생의 귀여운 춤사위와 노력으로 매형 친구들의 마음은 움직였다.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 골목에 모여있었던 우리 가족들과 동네 어르신들, 그리고 매형 친구들은 무반주로 SES 노래를 같이 불러 주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을 조명으로 열심히 SES 춤을 추던 동생의 모습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동생은 그때 당시에 한국 무용을 배웠었다. 춤을 당연히 좋아했었고, 무대경험도 어느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어서 그런지, 새삼 동생이 대단해 보였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매형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미리 준비했던 돈봉투와 술을 매형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주었다. 부엌에는 엄마와 동네 친구들이 모여 부지런히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많은 친구들과 구경온 골목 어르신들에게 좋은 음식, 안주와 술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었다. 나도 우리 가족도 진심으로 그분들을 반겼고, 문화촌 골목 모든 분들이 큰니와 매형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그 시절엔 그랬다. 골목에서 주말 저녁에,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큰 소리로 외쳐도, 어느 누구 하나 불평불만하거나, 민원을 내는 주민분들은 안 계셨다. 골목 어르신 분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함을 잘 받아서, 우리 누나와 매형이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랬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 마음이 잘 통해서인지, 큰니와 매형이 지금까지 큰 탈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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