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306 보충대에 출근하는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아팠던 내 귀 이야기
엄마는 95년부터 다니기 시작했던 혈액원을 3년하고도 5개월 다녔었다. 풀타임이 아녔기 때문에 한 두어주 전 즈음 미리 담당 과장님이 근무 일자와 장소를 전화로 알려주셨었는데 종종 과장님 전화를 내가 받아서 달력에 엄마 스케쥴을 적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공릉, 미아, 수유, 노원..익숙한 이름들. 그 중 수요일 스케쥴은 좀 특별했는데 일반 헌혈의 집이 아니라 의정부에 있는 306 보충대로 가는 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근시간이 매우 일렀다. 엄마가 아침 6시면 나가야했어서 비몽사몽간에 자는 나를 벽에 기대어 놓고 머리를 묶어줬던 기억이 난다. 대신 그만큼 퇴근이 빨라서 3시쯤이면 집에 엄마가 와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봄 처음 중이염을 앓았는데 그 이후로 꼭 가을 겨울이면 매 년 중이염을 적어도 한 번은 앓았다. 중이염 앓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귀가 너무너무 아파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냥 감기면 학교 끝나고 병원에 다녀오면 되는데, 중이염이 걸렸을 땐 보통 열이 나면서 귀가 아파서 조퇴를 해야만 했다.
근데 하필 이 중이염을 앓는 날엔 꼭 엄마가 출근을 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조퇴하고 집에 가도 엄마가 없다니 얼마나 서러웠겠는가. 병원에 데려다 줄 사람도 없으니 집에 가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엄마가 올 때까지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서 끙끙 앓는 것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말 신기하게도 꼭 엄마가 306 보충대로 출근하는 날에만 아팠다는 거다. 그래서 적어도 엄마가 집에 평소보다는 일찍 와서 같이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어떻게 수요일만 골라서 발병을 하지...내 몸도 자기 나름의 생존전략이 있었던건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중이염에 엮인 에피소드 하나.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수요일에 중이염 때문에 처음인가 두 번째로 조퇴를 했었을 때였다. 집에 바로 가지 않고 5학년 언니 교실에 들렸었는데 수업 중인 언니 교실 뒷문을 열고 대뜸 '홍화정 언니요...'하고 말한 뒤 그 다음엔 나도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그냥 엉엉 울어버렸다. 깜짝 놀라 뒤 돌아보던 언니 반 친구들과 언니 담임선생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무튼 담임 선생님 허락 받고 일단 교실 밖으로 나온 언니가 해줄 수 있는게 뭐가 있었으랴. 우는 날 달래 집에 가 있으라고 말해주고 돌아와 앉아 리코더를 부는데 (음악시간 이었다.) 목이 메여 리코더가 잘 불어지지 않더란다. 아직도 그 날 왜 내가 집에 바로 가지 않고 언니에게 들렸는지 이유를 모르겠는데, (아마도 '나 아파'라는 서러움 토로가 주 목적?) 본의 아니게 이렇게 엄마 직장 생활 중 신파를 하나 추가했다.
그나저나 그 날 나를 목격한 언니 담임 선생님은 그 해 면담시간에 엄마 앞에서 한숨을 푹 쉬시며 '어머니..언제까지 나가실거에요?' 라고 물으셨다고... 그러나 울 엄마는 굴하지 않고 내가 4학년이 되던 해까지 다녔다. 엄마 짱.
몇 해 전엔가 의정부에 있는 306 보충대가 없어진다고 했을 때 문득 엄마가 혈액원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며 옛날 생각이 났다.
유빈아
학교 잘 다녀 왔느냐.
학교에서 아프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는구나.
거친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낸
나무는 항상 푸르름을 간직하듯이
유빈이도 아픔을 참고 학교에
잘 다녀 왔겠지.
유빈이도 푸르른 소나무처럼
튼튼해졌을거야
그렇지만 마음속은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부드러움과
여유를 항상 간직하기 바란다
몸이 아프거든 침대에서 이불덮고
누워 있거라 엄마가 전화할께
무슨일으면 934-5340 (노원 헌혈의집)
으로 전화해서 김경희 엄마를
찾아라 이따가 만나자
95. 12. 18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