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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삶][서평] 철학자에게 배우는 나로 살아가는 법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읽고

by 유주

책은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로 많이 알려진 에리히 프롬의 미발표작이다. 직접 쓴 책은 아니고 생전 마지막 조교가 그의 논문, 강의록 등을 엮어서 낸 책이다.


언젠가 한 번은 에리히 프롬의 저서를 읽고 싶었고, 책 제목이 곧 내 질문이었기에 읽기 시작했는데, 결론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인간의 자유의지, 자율성, 나다움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인간이 사물화되어있기 때문에 무기력하다고 말한다. 무기력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 상태이기에,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내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쉬운 예시를 들자면 감정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진짜 감정을 억누르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무기력을 느낄 수 있다.


자아는 자신의 상태나 감정을 인식하는 대신 인성과 성격을 연출하며 외부의 자아 정체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특정한 약력, 성공한 사람, 자의식이 강한 사람,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 공감할 줄 아는 사람, 합리적인 사람,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 등의 역할을 껴입고 그것을 최대한 완벽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역할 연기를 넘어 남의 것에 영향받으면서 내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권위자의 명성에 기대어 어떤 일이 옳다고 느끼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부모님의 정치적 견해를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조차 누군가 아름답다고 하니 아름답다고 느낀다. 감각적인 느낌은 우리 것이라 느끼지만 실제로는 그조차 근본적으로 남의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가짜 행위를 계속하면 가짜 자아가 원래의 자아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가짜 자아는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자아의 이름으로 연기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인간은 본인이 그런 존재임을 순응하면서 자발성과 개성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글쎄, 나는 자립적인데.' 하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런 상황을 만든 조건을 제거하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의 무기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사랑과 노동에 바탕을 둔 자발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열정적인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으며, 감정과 지성이 활발히 표현되면 자아실현도 가능하고 말한다. 적극적 자유는 통합된 전인격의 자발적인 활동에 있으며, 자발적으로 활동하면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아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강해진다고 한다. 진짜 자기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는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예를 들면 예술가, 철학자, 학자, 아이들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진짜 삶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감탄하는 능력이다. 어떤 것이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감탄하는 능력은 예술과 학문의 모든 창조적 결과를 낳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조건은 집중력이다. 진정한 인식과 응답은 여기 지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조건은 자아 경험으로 나 자신에 기원을 두는 독창성을 의미한다. 네 번째는 갈등과 긴장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갈등은 감탄의 원천이며 힘과 성격을 개발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고 본다.


이 행동 지침을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구조적으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지만 그럼에도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사랑하는 취미 활동에 매진할 수도, 취향을 굽히지 않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내 안에서 찾아낸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도 자율성에 기반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 지금은 글쓰기를 통해 무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해야 하는 것을 위주로 하지만, 그 밖의 시간에는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물론 이 글 역시 사회적 바람직성이나 자기 검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 내게 글쓰기는 가장 진짜에 가까운 행위이다.


책을 통해 정말 놀라웠던 점은 읽는 내내 구구절절 공감이 갔다는 점이다. 100년 전에 지은 책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 현실을 꿰뚫는 것 같다. 사회적 인간과 본성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으면서 이처럼 트렌디할 수 있다니, 여러 번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 글도 나름 고민하며 쓴 글이지만, 책의 반의 반의 반도 다루지 못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가장 깊이 들어왔던 문장을 소개하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인간은 자기 삶의 중심이자 목적이며 개성의 실현은 더 값지다고 주장하는 그 어떤 목적에도 결코 종속될 수 없는 목적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회복하길.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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