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타오르면 곤란해

[무념무상] 그림일기

by yoong

열정적인 사람은 매력적이다.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매사에 온 마음과 정성을 쏟는 사람을 보면 달리 보인다. 그 열정이 낳은 아주 자그마한 디테일이 완성도에 얼마나 큰 차이를 낳는지 알기 때문에 - 가 아마 모범 답안일 테지.


나는, 그냥 그 모습에 폭 빠진다. 유달리 귀가 얇아서인지 마냥 감정 전염이 잘 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완성도를 떠나서, 그 순간에 온 마음을 싣는 모습 자체가 어쩐지 찡하달까. 온 마음과 열정을 다 쏟아부으면 그래도 뭔가 털끝만큼은 다를 것 같고,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만 같은, 별 근거는 없는 막연한 믿음.


그 덕분에 '별 효과 없을 텐데' 싶은 관리자들의 전략이 내겐 참으로 잘 먹혀든다. 윗사람이 "적당히 슬렁슬렁하고 집에 가서 하고 싶은 거 해" 할 때보다, "누가 봐도 안 부끄럽게 제대로 된 걸 만들어야 할 거 아냐!" 하는 쪽에 더 기울고 만다. 아무래도 이미 간파당한 것 같다. 나, 속고 있는 건가.


아무리 열정으로 포장해도 내 것이 아닌 열정은 티가 나기 마련. 그럴 듯한 말에 속아서(?) 쏟는 열정엔 지구력이 없다. 일이 수월할 때엔 구별이 잘 안 된다. 마냥 신나니까.


하지만 장애물을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게다가 아주 비합리적인 장애물.


진짜 열정이라면 더 뜨겁게 타오를 거다. 이것마저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 확신하니까.


그러나 휩쓸린, 열정인 척 했던-혹은 착각했던- 감정이라면 단번에 기세가 꺾인다. 긴가민가했는데

역시나 아니구나, 해버리고 만다. 확신의 깊이가, 그 단단함이 다르니까.

영혼없이 일할 때도 있어야지. 손이 알아서 한다.

문제는, 열정이 아닌 줄도 모르고 신나게 기를 소진해버렸을 때 더 커진다. 어, 이게 아닌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이미 재가되어있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태.


그러므로 어느 정도 열정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먼저 나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하겠지. 이건 나의 열정인가, 옆사람의 열정에 내가 넘어간 건가.


아닌 줄 알면 힘을 빼는 연습도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영혼 없이 임하기. 그러지 않으면 정작 움직여야 할 때, 재가되어 있을 지도 모르니까.


.... 오늘은 재가 될 뻔했다.

방전 상태일 땐 털북숭이 품에 안고 충전. 급속 충전된다. 우쭈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