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이 되자

[무념무상] 그림일기

by yoong

보라색, 안 좋아한다. 특히나 가지 색은 더더욱 별로. 어쩐지 어둠침침하니 속을 알 수 없어서. 차라리 내 취향은 그냥 천진하게 속 다 내보이는 노오란, 병아리색이다.


얼마 전이다. 그 보라색에 관한 이야길 들었다.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귀하게 여겼던 귀족의 색. 그 이유가 재미있다. 오색(적, 청, 백, 황, 흑)을 중심으로 색을 바라보던 동양에선 보라색이 그 어떤 색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봤단다. 서양은 그 반대. 이렇게 보면 붉게도, 푸르게도, 검게도 보이는 보라색이야말로 모든 색을 품었기에 귀하다 했다고 한다.


모든 색을 품으면서 그 어떤 색도 아닌 색

그 이야기에 처음으로, 보라색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을 완전히 내보이지 않지만, 모든 색을 품는. 그러면서 온전히 그 어떤 색도 아닌. 포용할 줄 아는, 그런 색. 그런 사람.


바보 이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무리 악마가 제아무리 꾀를 내서 괴롭히고 꼬드겨도 도무지 알아듣질 못했던, 그래서 결국은 악마를 다 이겨버린 사상 최강의 바보.


꾀를 내어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상대가 바보처럼 느껴지고, 화가 나고, 무시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수가 얕아서 내가 읽어버렸다고 느낄 때. 알면서도 속아줘야만 하나,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그러다 문득 보라색을, 그리고 바보 이반을 떠올렸다. 바보 이반은 보라색 같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악마들의, 형들의 얕은 수를 꾸역꾸역 받아주고, 결국은 다 소화해 내는 이반. 싫은 내색 없이 다 받아들인 모든 색이면서, 그 어떤 색과도 같지 않은 '바보다움'을 끝까지 간직한 바보. 바보면서 바보가 아닌 바보.


바보 이반은 보라색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라색이 되고 싶다. 현자는 바보에게서도 배울 줄 아는 사람이라 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물론 비슷한 사람, 정반대인 사람에게서 제각각 배울 점을 쏙쏙 흡수해 쑥쑥 자라는. 그래서 내 색은 쉽게 읽히면서도 읽을 수 없는, 귀한 색이길.


여전히 노오란 병아리색 사랑은 버릴 수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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