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9
예전에는 사계절 내내 정수 물을 받아 보리차를 끓여 마셨다. 그런데 오랜만에 그림책 작업에 집중하면서 전기 포트 안에 남은 보리알을 버리고, 주전자 헹구고, 다시 물 받아 보리알 넣고 끓이는 게 힘든 날이 잦아졌다. 보리차 끓이는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지는 날 지켜보다가 결국엔 냉, 온정수기를 설치했다. 정수기는 내 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물건이 아니었다. 물은 그냥 끓여 마시면 그만이라 생각했으니까.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 먹으니 몸이 약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연약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전기포트로 물 끓이는 일에도 예민해지다니. 아침 마다 냄비에 물 올리고 삶던 계란 두 알도, 이제는 타이머가 있는 전기 계란 찜기로 바뀌었다. 예전처럼 계란 물 올리고, 물 끓기 시작하면 타이머 맞추고. 욕실에서 머리 감다가 시끄러운 알람을 끄러 ‘끄어어어-’ 좀비 처럼 걸어 나오지 않아도 된다. 가스 렌지에 냄비 올리고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사소하다면 사소할 일상의 움직임이 하나 둘 줄어들고 있다. 그 대신 이렇게 아낀 작고 소중한 체력을 모아 그림을 그린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들을 두고, 뭐 대단한 큰 변화를 맞은 것처럼 글을 쓰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작가인데 좀 예민해서 그렇다고 대답해야겠지.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내 몸과 마음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하며 편안함을 찾아가고 있다는 걸, 나는 또 예민하게 감지한다.
정수기를 설치하며 느낀 생각을 적다가 문득 ‘나’라는 사람이 조금 이해가 된다. 나는 마음에 살랑하고 떠오른 말에 ‘앉아 있을 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람이라는 거. 그래야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있다는 안정감이 든다는 것도. 그러고보면 무엇을 하든 마음 한 켠은 ‘나는 작가’라고 굳게 믿었지만 늘 불안이 함께했다. '그림책 작가'라고 말하며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나의 직업이 마음에 연착륙 중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