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아홉 번째 날
날이 좋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영하기 좋은 날이다. 체감온도 50도에 육박하는 이탈리아의 여름 볕. 간간이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입수하지 않고 나를 견딜 수 있겠어?’라고 말 하는 태양의 입김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은 수영복을 집어 입고 가르다호숫가(Lago di Garda)로 나갔다.
가르다 호수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다. 호수의 규모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대호다. 예쁘고 반짝이는 윤슬을 가득 담고 있는 보석상자 같은 호수. 5년 전, 가르다 호수를 처음 봤을 때, 그 첫인상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게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고? 말도 안 돼!’ 호수를 마주하고 서서 처음으로 내뱉은 문장이었다. 면적 370㎢, 둘레 144㎞, 수심 300m. 수만 년 전 알프스 빙하가 녹으며 만들어진 빙하호. 사람들은 자연이 인간에게 남긴 근사한 선물이라며 감탄한다. 물의 색은 하루마다 달라지는 하늘의 기분을 반영한다. 날씨가 흐리면 호수의 색도 어두워지는 듯하고, 날씨가 맑고 투명한 날이면 보석같이 빛나는 물, 그 투명함 아래에 작은 돌멩이들이 여과 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호수에 둘러싸인 위치에 있는 시르미오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을이다. 그 아름다움을 문장으로 형용하기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르미오네의 아름다움은 선조들의 눈에도 특별하게 비친 모양이다. 빼어난 풍경 덕분에 시르미오네는 이미 기원전 1세기부터 로마와 베로나 귀족들의 휴양지로 큰 인기를 누렸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동시대를 살던 고대 로마의 서정시인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는 시르미오네를 ‘모든 섬과 반도의 진주’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세기의 소프라노이자, 최고의 오페라 디바로 기억되는 마리아 칼라스도 시르미오네의 매력에 매료되어 이곳에 별장을 지었다. 칼라스 외에도 괴테, 스탕달, 바이런, 릴케 등 수많은 대문호가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낭만적 사실이 전해지며 이곳의 아름다움에 탄탄한 서사까지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일상의 배경지가 되었다. 이 풍경을 바탕 삼아 바쁘게 일하며, 밤이 되면 하루를 마치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잠을 청한다. 다음날 눈을 뜨고 시간에 쫓겨 출근한다. 벌컥 문을 연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으면, 그제야 슬리퍼를 신고 근처 마트에 설렁설렁 들어가 장을 본다. 요리하고 밥을 챙겨 먹는다. 이런 평범한 일들이 하루를 빼곡하게 메운다. 사소한 것들을 성실히 이행하며 살았더니 일상에서 호수의 아름다움을 즐기기란 어려워졌다. 호수의 여유를 즐기지 못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유 모를 부채감이 느껴졌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가 문득 ‘이렇게 유명한 곳에서 살며, 정작 일에 지쳐 호수를 즐기지 않는다면, 그건 핑계 아닐까? 바쁜 건 이유가 되지 않아. 걸어서 10분이면 되잖아. 게으름의 문제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날카로운 종잇장처럼 마음을 가볍게 베어냈다. 꺼림칙한 마음으로 창문을 바라봤다. 날씨가 부채감에 무게를 더한다.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대충 긴 셔츠를 걸쳤다. 날이 덥다. 수영복 위에 하의를 걸치는 건 사치스럽다. 길거리에 수영복만 입고 돌아다니는 남성들에 비하면 나의 차림새는 꽤 신사적이다. 단추 몇 개를 채운 채 비치타월을 들고 집을 나섰다. “호수 가자.” S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지금 나갈게.”라는 답장이 왔다. S는 항상 그렇다. ‘언제, 어디’를 반문하는 것이 아닌 ‘오케이!’를 외친다. 우리는 귀찮은 메시지 대신 통화를 하며 만날 호숫가를 정했다.
‘나오길 잘했다.’ 찬란한 풍경을 보며 몇 번이고 같은 생각을 되뇌었다. 넋 놓고 호수를 바라보다 건너편에 보이는 알프스산맥에 시선이 멈추면, 그리고 무수히 반짝이는 윤슬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마을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색채의 통일감에 다채로움을 더할 때, 그제야 ‘맞다 여기는 호수지!’라고 생각한다. 시르미오네 외에도 가르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있고 예쁘다. 예전에 가르다 호수를 둘러싼 마을 전체를 탐방하는 자동차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마을을 옮겨 다닐 때마다 동화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듯 색다르고 예쁜 풍경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다른 여행자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호숫가에 비치타월을 깔아 두고, 그 위에 조심스럽게 몸을 눕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듯 비춰 들어오는 햇살, 고요하게 돌멩이들을 깨우는 호수의 물결 소리,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덕분에 백색소음처럼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그리고 가끔 불어오는 자연의 가벼운 숨결. 이 중에서도 특히 신선한 자유의 행복을 선물하는 건 이곳의 사람들이다. 이곳에서는 비키니만 입고 잔디 위에 누워있어도 아무런 눈길을 받을 일이 없다.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차림으로 각자의 여유를 즐긴다. 이곳 사람들은 적어도 이런 곳에서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몸’에 육체 그 이상, 이하의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마치 몸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껍데기처럼 인식되는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뱃살이 나왔던, 가슴이 크던, 처진 가슴을 가졌던, 등에 주근깨가 많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이런 자유로움을 느껴본 경험이 없는 것 같다. 육체를 그저 껍데기 정도로 삼을 수 있는 이런 자유가 좋다.
개인 보트가 있으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전에 친구와 보트를 타고 가르다 호수의 수심이 깊은 곳으로 놀러 나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마주 오는 보트 갑판에 꼿꼿하게 서 있던 나체를 보았다. 나체 커플은 알프스산맥의 정기를 받으며 가르다 호수의 시원한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옆에 있던 이탈리아인 친구는 호탕하게 웃을 뿐이었다.
호숫가에서 휴식을 취하면 누군가는 태닝 하며 책을 읽고, 누군가는 잔디에 드러누워 낮잠을 청한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수영한다. 햇살 아래 몸을 이리저리 굴려 가며 누워있다가, 물에 들어갔다. 처음 들어갈 때는 물이 조금 차가운 듯싶어서 입수를 망설였는데, 하늘 위에서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이 나를 물아래로 밀어 넣었다. 물이 무섭다. 물속에 얼굴을 담그지 못한다. 얼굴을 몸에 담그는 순간 어둡고 좁고 깊은 곳에 갇힌 느낌이 들어 숨쉬기도 힘 가쁘다. 그러므로 당연히 수영을 못 한다. 이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작년은 꾸준히 아침 수영을 다니며 수영을 배웠는데, 가르다 호수에서 그간의 노력을 발휘해 보려는 순간 호흡은 방울방울 물거품이 되어 수면 위로 올랐다. 그 물거품이 꼭 그간의 노력같아 보였다. 그래도 호수의 수심이 얕은 덕분에 얼굴을 내놓은 채 땅 짚고 헤엄치기가 가능했다. 푹신푹신한 모랫바닥을 짚고 물 위에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니 온 세상이 푸른빛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오래도록 보고 있으니 저 먼 곳, 천국의 형상이 선연하게 보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다이빙해야 할 바다처럼 느껴졌다. 저 높고 투명하게 파란 하늘 위로 몸을 던지면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오길 잘했다!’ 다시 한번 되뇐다. 호수 위로 하염없이 흘려보낸 시간은 시원한 물줄기가 되어 온몸을 어루만져 주었다. 수영을 하건, 안 하건, 물놀이는 항상 사람을 허기지게 만든다.
배가 고파져서 시르미오네 단골 피자집 <BOTTEGA DELLA PIZZA>에 갔다. 이 단골 피자집에도 단골 메뉴가 있다. 원래는 피자 메뉴가 아닌, 파누아쪼(Panuozzo) 메뉴이다. 파누아쪼는 피자를 반으로 접은 듯이 생긴 컴파냐 성의 대표 음식이다. 피자 반죽으로 만든 파니니라 생각하면 더 쉽게 떠올릴 수 있겠다. 이 메뉴의 토핑은 그대로 먹고 싶은데 파누아쪼가 아닌 피자를 먹고 싶은 까다로운 손님을 위해 주방장님이 기출 변형을 해주셨다. 덕분에 갈 때마다 원하는 맛의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됐다. 허겁지겁 시원한 레몬 소다와 함께 피자를 다 해치워갈 무렵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생각났다. 침을 꿀떡 삼키며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오늘 진짜 나오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