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
어렸을 때는 주요 활동 무대가 학교였고, 학교는 철저하게 개인이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은 점점 팀 활동(또는 조별 과제)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사실 보면 일부 소수의 개인 역량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그것만 끝나면 곧 헤어질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더라도 곧 사라지게 마련이다. 결국 내가 중요했고 내가 얼마나 하는지가 중요했다.
회사원이 된 후에도 생각은 비슷했다. 회사에는 소위 '스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건 가끔 기사에 나오는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람들이 회사를 이끌어가는 것이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계 축구계는 메시와 호날두가 이끌어가고, NBA는 르브론 제임스가 'The King'으로 불리는 것처럼.
그런데 말입니다. 살다 보니 그게 아니더라.
회사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정말 어떤지는 내가 안 봐서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회사는 나 혼자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하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팀플과 다르게 회사의 업무는 끝이 없다. 망하지 않는 이상 계속된다.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면 그 프로젝트는 다음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고, 서비스를 출시하면 꾸준히 유지보수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이루어진다. 1인 기업이 아닌 이상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한다.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사람과 덜 중요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스타 혼자의 능력만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서비스 업체에서 기술자는 직접 코딩을 하는 개발자나 화면을 구성하는 디자이너다. 전략이 어쩌고 기획이 어쩌고 간에 결국 제품을 만드는 건 기술자들이다. 나는 기획이라는 업무로 시작을 했고, 여전히 그 역할을 했다. 전통적인 워터폴 방식의 서비스 개발 프로세스에서는,
기획 -> 디자인 -> 개발 -> 테스트
이런 전형적인 일방향 프로세스를 따른다. 하지만 서비스가 점점 복잡해지고 관련 산업의 변화가 더 빨라지고 하면서 저런 일방향적인 프로세스는 한계가 많이 드러났고 이제 완전히 전형적인 프로세스를 따르는 기업은 많이 없다. 가능한 일찍부터 모두가 함께 논의를 하고 만들기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이전보다 더 많이 함께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술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전보다 기술자의 역할이 더 커졌달까. 나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 한계 안에서 내 역할을 찾아야 했다.
성공에는 운도 정말 많이 필요하다. 아니, 솔직히 운이 70%인 것 같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은 여전히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쩌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다고 하는 커리어를 쌓게 된 것도, 택시 서비스가 대성공을 거둔 것도 운이 굉장히 많이 작용한 결과다. 좋은 때를 만나야 하고, 마침 좋은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건 기본. 거기서 내가 무언가 좌지우지할 것은 많이 없다. 준비를 열심히 하고 좋은 기회가 생겼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늘 살펴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잘한 점이 있다면 그것? 그걸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기회가 없는 사람도 수도 없이 많다. 나는 운이 좋았다.
세상은 나와 무관하게 계속 변한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높은 사람이 된다 한들 내가 없다고 회사에 절대적인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없어도 애플은 잘 된다. 결국 한 개인은 변화를 만들어가기보다는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그 결과로 변화가 만들어 질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의도한 건 아닐 거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서 본 모든 책/만화/영화 등등 모든 걸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고 인상 깊었던 <슬램덩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30점, 40점을 넣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점수를 따낼 수 있는 녀석이 있다. 난 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다!!"
이거야 말로 진짜 명언이다. 어차피 나는 기술자가 아니기 때문에 30점, 40점 넣을 수도 없다. 그저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가자미'가 되는 것, 진흙탕을 구르는 것,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빛나도록 하는 것. 그게 진짜 좋은 매니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는 좋은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