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은퇴를 꿈꾸다

장년기

by YooTube

세 번째 회사를 그만두었다. 약 7년을 다녔으니 지금까지 중에 가장 오래 다녔다. 이렇게 오래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내가 과연 5년을 넘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덧 전체 회사 생활의 2/3 가량을 이곳에서 보냈다. 퇴사 역시 전혀 계획은 없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을 소개받았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 회사로 가게 됐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


이번에는 고민을 이전보다 월등히 더 많이 했다. 사람은 가진 게 많을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는 건 진리인 것 같다. 아무것도 없어서 과감하게 질렀던 첫 번째 퇴사, 여전히 가진 게 많이 없었던 두 번째 이직, 하지만 이제는 가족도 있고 아이도 있고 하다 보니 나 혼자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10년이 조금 넘는 동안 연봉도 오르고(당연하지..), 가족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살도 생기고(응?), 아무튼 모든 게 다 많아졌다. 하긴 강산도 변하는데 나라고 안 변할 쏘냐. 그래도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계획하기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점이다. 살다 보니 점점 더 계획보다는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나 스스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나중에 보니 오해로 밝혀진 것이 2가지가 있다.


1. 나는 워커홀릭이다.
-> 그럴 리가. 어떻게든 놀고 싶은데...

2. 나는 돈을 많이 벌거다.
-> 많이의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알고 보니 그렇게 부자가 되고 싶지는 않더라. 건물 사고, 차를 몇 대씩 사고, 집이 으리으리하고 그런 건 전혀 바라지 않는다. 그냥 아껴 쓰면 되지.



그래서 꿈이 생겼다. 바로 조기 은퇴. 생계를 위해 매일 회사에 출퇴근을 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다는 그런 꿈이다. 적당히 아껴 쓰면서 평생 작은 소일거리나 가끔 찾아서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려면 약 20억쯤 있으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억이라니! 한 달에 400만 원씩 쓰고 살면 약 35년 정도 살 수 있는 돈이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말이지. 그리고 그 후에는 연금으로 사는 거다. 벌기엔 엄청 큰돈이지만 사실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한다. 나에겐 그 정도면 충분하다.


결국 은퇴 때문에 이직을 하게 됐다. 월급만 꾸준히 받아서는 조기 은퇴(만 40세쯤에는...)라는 꿈을 절대 달성할 수 없다. 그러려면 스톡 같은 미래의 가능성에 배팅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회사에 다니나 더 작은 초기 단계 회사에 가서 가능성에 배팅하나 둘 다 조기 은퇴라는 꿈을 달성할 확률이 낮다면, 기왕이면 가능성이 조금 더 있는 곳에 가야지. 안 되면 그때 또 다른 대안을 찾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보련다.




지난 회사 생활을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적어봤다. 유년기 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회사가 대체 어떤 곳인지 탐색하는 데 집중했고, 청년기 때는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고민하는 데 집중했고, 장년기 때야 비로소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듯이 회사에서도 사람 구실을 하려면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어렸을 땐 이 점을 몰랐지. 얼마나 경솔한 풋내기였는지.


어느 날 갑자기 회사원이 되기로 결심했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경험들을 했다. 뒤돌아보니 "재미있었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기에 흥미진진하고, 회사원은 처음 생각보다 좋았다. 그래도 나는 은퇴를 하고 싶다. 그래서 내 다음 시간은 "노년기"가 됐으면 한다. 부디 꼭 그럴 수 있기를.


언젠가 은퇴를 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은퇴 후 유유자적 선비 생활을 꼭 글로 적어봐야겠다. (육아가 메인이 될 걸 예상해보면 그리 유유자적할 것 같지는 않은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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