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손에 흙 좀 묻으면 어때

장년기

by YooTube

전기 자전거 공유 사업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맛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자전거라는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게다가 그것들을 우리가 직접 운영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자전거에 대해 여러 가지 것들을 알아야만 했다. 늘 그랬듯이 전혀 몰랐던 분야지만, 그런 분야에서 새로 배우고 우리의 계획에 맞춰 체계를 잡고 하는 일도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라는 분야는 일단 알아야 할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 자전거라는 교통수단의 구조에 대해 잘 이해해야 했다.
2. 전기 자전거이다 보니 모터와 배터리 용량, 그리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알아야 했다.
3. 기본적인 자전거 정비도 할 수 있어야 했다.
4. 우리만의 브랜드를 입히기 위해 어디까지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했다. 자전거 기기 디자인을 해본 사람은 물론 없었다.
5. 밖에 내놔야 하니까 방수 성능도 신경 써야 했다.
6. 아쉽게도 배터리가 계속 가지는 않기 때문에 충전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도 신경 써야 했다.
7. 서버와 통신을 해야 하기에 저전력 통신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통신사에서 어떤 상품을 써야 하는지고 고민해야 했다.
8. 회사별로 천차만별인 가격이 왜 그런 것인지 꼼꼼하게 비교하고, 제한된 예산 내에서 최적의 스펙을 정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드웨어를 직접 운영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신규 입사자의 기분으로 열심히 배워가며 준비했다. 게다가 자전거는 도로를 다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각 지자체에 여러 번 방문하면서 승인을 얻고 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회사 생활 시작한 이후 이렇게 바빴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서비스 오픈 직전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자전거들


하드웨어 준비를 마치고도 문제는 여전했다. 자전거가 들어와야 하는데 생산에 차질 및 예상치 못한(당연하게도)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예정된 날에 자전거가 들어오지 못하고 자꾸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입고된 이후에는 조명 원격 제어 테스트를 한다고 자전거들의 조명을 켜놨다가 퇴근하는 바람에 배터리들이 다 방전이 되어 버렸다. 오픈이 불과 며칠 남지 않은 상태, 모든 구성원들이 배터리를 가져가서 충전하고, 또 새로 가져가서 충전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배터리 하나를 충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4~5시간. 물리적으로 빠르게 당길 방법이 없었다.


출시 날에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나가서 자전거를 직접 트럭에 싣고, 배치 지역에 가서 트럭에서 직접 내리는 일까지 했다. 저 많은 자전거가 자동으로 필드에 배치되는 마법은 없었다. 다행히도 오픈 후 반응이 좋았다. 그럴 땐 참 고생한 보람이 생긴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더 큰 고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 배터리를 교체해줘야 했다.
원격으로 저 많은 자전거를 다 충전할 방법이 없으니 돌아다니면서 교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출근했더니 절반이 넘는 자전거가 배터리 부족이 뜬 날도 있었다. 와, 그때의 막막함이란...

2. 자전거를 재배치도 해야 했다.
외딴곳에 있는 자전거나 민원이 들어온 자전거는 회수해서 다시 사람이 많은 곳에 배치해야 또 이용이 될 테니.

3. 예상치 못한 기기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결함, 거치대 부러짐, 그 외 각종 문제들이 생겼다. 왜 슬픈 예감은 늘 틀리질 않는지.

4. 숨겨놓은 자전거를 계속해서 찾으러 다녀야 했다.
특히 대단지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깊숙이 있는 자전거는 직접 돌아다니며 찾을 수밖에 없었다. GPS 기술의 한계였다.


결혼기념일이 주말이었는데 오전에 나와서 배터리 갈고, 업무 시간에도 수시로 나가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배터리를 갈고 자전거를 찾아오고 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그러면서 운영 안정화를 위해 대행업체를 찾고, 교육시키고, 운영에 필요한 시스템을 정비하고 하는 일들을 함께 했다. 이후 서비스 확장을 위해 새로운 지자체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도 병행했다. 이 모든 게 자동으로 되는 마법은 없었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세상에 없던 자전거를 만들어내고, 거리에서 그걸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서비스 지표도 우상향으로 올라가고, 예전에는 관심 없던 지자체들에서 먼저 연락도 오고 하는 걸 경험하다 보면 고생은 어느새 잊힌다.


택시 때부터 함께 했던, 이제는 분사해서 회사의 대표까지 된 분이 늘 하던 말이 있다.


"손에 흙 묻히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자전거야말로 딱 그런 사업이었다. 손에 흙이 묻는 정도가 아니라 온 손과 발, 얼굴까지 모두 흙 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업이었다. 그런데 흙좀 묻으면 어떤가.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별의별 경험들을 다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흙도 묻고, 다른 것도 묻고 그렇게 된다. 어차피 나중에 씻으면 된다. 그리고 흙 묻고 하다 보면 의외의 즐거움도 발견하게 되고. 어렸을 때 다들 놀이터에 가서 왕창 흙을 묻히면서 놀지 않았던가. 그때의 즐거움은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실내에서 깔끔하게 놀 때와의 즐거움과는 완전히 다르다. 회사 일도 그런 것 같다. 뭐가 됐든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기왕이면 그 과정에서 즐거움도 있으면 좋고. 다행히 자전거 사업은 흙도 묻고 즐거움도 있고 보람도 있었던 좋은 사업이었다. (물론 결과가 괜찮았기에 하는 말이다.. 역시 회사에서는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


이제 더 새로운 일도 문제없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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