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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l 22. 2020

언제나 좋은 사람일 순 없으니까

여덟 번째 기록

 며칠 전에,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둘을 만날 일이 있었다. 일 년에 몇 번씩은 꼭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방학만 되면 자연스레 연락이 닿아 얼굴 볼 시간을 맞춘다. 언제나 그랬지만 약속 시간을 잡는 건 수능 수학 30번에 맞먹는 난이도다. 둘이 되면 하나가 안 되고, 셋이 되다가도 꼭 하나가 일이 생겨 약속 시간을 다시 잡는다. 올해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우여곡절 끝에 약속이 성사되었다.


 한 친구는 3학년(이라 쓰고 '사망'년이라 읽는다더라)답게 취업을 준비하느라 바빠 보였고, 다른 친구는 유학을 나가 있다가 잠시 한국으로 들어와 있던 참이었다. 다 같이 수능을 준비하던 고3 때와는 달리 각자 다른 공부를 하고 다른 고민을 갖게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같이 있을 때면 그때처럼 세상 유치하게 놀게 되는 건 본능인가 보다. 한참을 1차원적인 이야기로 웃고 떠들던 와중에 친구의 질문이 훅 치고 들어왔다.


있잖아,
너희가 좋아하던 사람이 사실
다른 누구한테는 나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말 그대로 정말 갑자기 들어온 질문이었기에 다른 한 친구와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다고?" "당황스럽네..." 우린 웃음으로 당황스러운 감정을 무마시키고는 곧 고민 상담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는 인간관계에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 듯했다. 사실 생각해 보지도 못한 특이한 고민은 아니었다. 당장 나에게도 그런 관계가 있었고, 고민 끝에 그 관계를 정리했으니까.


 친했던 친구가 예전에 누군가를 따돌리고 비웃음거리로 만들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나는 주저 않고 그 친구와의 연락을 끊어 버렸다. 그 아이가 따돌렸던 누군가 중에는 내 친구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그렇게 관계를 끊어내고 나니까 질문은 결국 를 향하게 되더라. 나는 모두에게 티끌 하나 없이 좋은 사람이었나? 어쩌면 나도 다른 누구에게 잊고 싶은 악연이지 않을까? 그런데 누가 누굴 손절해? 날카로운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나는 내가 만들어 왔던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문자를 보내도 한참 뒤에야 이제 봤다는 답장만 보낼 뿐 나에게 다시 연락하진 않았다. 결국 나와 그 친구와의 관계는 끊겼다. 말 그대로 일방적인 단절이었다. 내가 에서처럼 관계를 정리했던 행동과 비슷하게 말이다. 너무나 뜬금없는 일이라 사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때마침 내가 그런 고민에 빠져 있었는지 몰라도, 이리 허무하게 관계를 끊김 당하고 나니 나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후 한번씩 도마에 오르는 연예인의 과거 논란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들을 옹호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의 댓글도 그리 통쾌하않았다. 저 사람들은 과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어서 저런 댓글을 달 수 있는 건가 싶은 의문만 가득 들었다. 만약 죄 없는 사람들만 돌을 던질 수 있는 마법에 걸린다면 세상 사람들 어느 누구도 돌을 던지지 못할 것 같았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나에게는 관대한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에게 더 엄격한 사람이 되어갔다.


 죄책감이 드는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를 때면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웠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나. 그렇게밖에 상대를 대하지 못했나. 관대함을 갖고 본다면 철없을 적 치기 어린 행동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과거의 못된 행동들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같았다. 내가 남들보다 더 나쁜 짓을 해서 이렇게 심한 죄책감을 느끼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나 잘 살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나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좋은 징조라는 걸 말이다.


희망은 반성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정성스레 밑줄을 그어놓은 구절이다. 세상 살다 보면 실수 한번 않는 사람 없고, 누군가에게 상처 한번 안 준 사람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내가 저지른 무례한 행동 하나하나 죄책감을 느끼며 심한 고통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물론 과거의 일은 잊고 살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죄책감은 사람을 곧 반성으로 이끌 테니, 나는 이를 통해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그 행동의 대가를 호되게 치르게 되더라도 모두 감수할 준비가 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내게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언제든 진실된 사과를 건넬 수 있을 만큼 많이 그리고 꾸준히 반성하면 된다. 비록 용서받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글을 쓰는 내내 이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이 자기 합리화로 보이면 어떡하지.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수많은 내 자아 중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나보다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내가 읽었을 때 괜찮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글이 다소 두리뭉실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희미함 속에서 내가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만은 또렷하게 보였으면 한다.


 인간관계는 풀어도 풀리지 않는 평생의 숙제가 아닐까. 나름 긴 글을 쓰며 나만의 인간관계 철학을 세운 듯 보이지만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길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고민에 잠긴 채 시간을 보낼 것이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를 것이다. 때에 따라 진리로만 보였던 나만의 철학을 수면 아래서 스스로 깨부숴야 할 때도 올 것이고. 어쩌면 인생은 이 과정의 연속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오답을 선택한 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정답을 찾아나가는 나에게 집중해야 될 것 같다. 누구나 오답을 택하지만 누구나 정답을 찾지는 못하니까. 아니, 않으니까.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는 오답을 토대로 끊임없이 정답을 찾으려 하는 노력에 있다는 걸 언제나 잊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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