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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l 08. 2020

일시정지가 없는 사람들

일곱 번째 기록

대학 가면 다 해결돼.
예뻐지고 잘생겨지고,
공부도 지금처럼 열심히 안 해도 되고.


 열아홉 언저리의 나는 그리 순진하지 않았기에 이 말을 철석같이 믿진 않았다. 그럼에도 대학에 가려고 발버둥을 친 이유는 단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뉴스를 만들고 신문을 찍어내는 언론 분야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회학이나 심리학도 배우고 싶었다.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일념 아래 열심히 달렸고 넘어지기도 했으며, 슬럼프에 빠져 몇 날 며칠을 제자리에 머물다가 울며불며 콧물도 흘리며 기어가기까지 했다. 비록 현실은 내 손에 경영학을 얹어 주었지만 말이다.


 사실 입시를 끝낸 직후에는 현실이 아무래도 좋았다. 난 대학 입시라는 마라톤에 너무나도 지쳐 있었고, 물보다 귀한 휴식을 그렇게 갖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첫 학기가 끝나자마자 휴학을 선언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몇 학기 정도는 다녀보고 휴학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아직까지 다니는 중이다. 어른들이 말했던 것처럼 수려한 외모의 대학생으로 짜잔- 변신하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나름 화려한 꿈이 있다. 뭐가 되겠다는 그런 식상한 형식의 꿈은 아니고, 제주도에서 오롯이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게 꿈이라면 꿈이다. 매일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나를 앞서가는 사람들에 불안을 느끼지 않고, 내 발걸음에 맞춰 살아보고 싶었다. 난 그게 너무나 평범한 소원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다니며 어른들의 사회를 직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3년의 휴학 가능 기간은 사실 대외활동이나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목적에 더 최적화된 기간이었다. 분명 휴학(休學)인데. 쉴 휴배울 학. 배우는 걸 쉬는 기간이라고 이름이 떡하니 붙어 있는데. 사람들은 공부를 하려고 휴학을 한다. 이 무슨 모순인가. 그 모습에 심한 이질감을 느낀 나조차도 어느샌가 그 무리에 합류해 있었다. 공부를 놓는 방학(放學) 동안에 난 토익을 공부했고, 이제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려는 참이다. 나도 모르게 현실에 길들여졌다. 우르르 움직이는 예비 사회인의 바다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스펙터클했던 사이버 학기가 막 끝난 지금, 내 심정은 네 글자로 요약 가능하다. '쉬고 싶다.' 여행 가서 바다도 보고, 숲도 쏘다니고, 영화 두세 편 연달아 보고, 찜해둔 책 한 권 꺼내 읽다가 스르르 잠도 들고. 비록 올해는 여행을 떠나진 못 하겠지만 집캉스라도 너무나 행복하게 즐길 의향이 있다. 시간도 충분하고 찜해둔 책과 영화와 드라마도 많다. 근데 진짜 문제는 말이다. 아직 마라톤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사람들은 열심히 뛴다.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외국어를 공부하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실무 경험을 쌓는다. 끊임없이 뛴다. 그 속에서 치고 나가지 않으면 뒤처진다. 그러니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움직인다. 1학년 때는 뭘 공부하고, 2학년 때는 뭘 준비하고, 3학년부터는 뭘 해봐야 한다는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암묵적인 룰에 따라 움직인다. 그 모습을 한가운데서 보고 있자니, 가만히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는 이 순간에도 숨이 턱 막혀올 지경이다.


 일시정지가 없는 사회다. 사람들이 일시정지 버튼을 쓰질 않으니 아예 그 버튼을 빼버린 채 대량 생산되는 카세트 플레이어 같다. 그냥 힘들어서 멈췄는데, 사회는 당신이 멈춘 순간 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이뤘는지 물어본다. 이제는 쉴 때도 이유가 있어야 하고 성취가 있어야 할 지경이다. 얼마 전 유튜브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은 외국어를 배우려고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사람들은 외국어 말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물어본다더라. 외국어를 배운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니 논외로 치고 그 외에 무엇을 배우고 이뤘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모든 사람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그땐 정말 광기 어린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무섭기까지 했다.


 나의 제주살이 꿈은 언제까지 꿈으로만 담아두어야 할지 의문이 생기는 요즘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취직을 한 다음? 열심히 일해서 만족스러운 자리까지 승진한 다음? 훌륭한 인력이 되어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고민할 때쯤? 그러다 꿈에 곰팡이 필 것 같은데.


 이번 편은 별로 달갑지 않은 성장통이다. 교훈도 없고 우중충한 마무리만 있을 뿐이다. 하소연 같은 이야기는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 했는데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리 달리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아서 글로나마 풀어봤다.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 현실이 꽃동산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도 잘 알지만, 언제 뒤처질까 하는 걱정이 가끔 눈 앞에 있는 행복을 방해할 때마다 괜히 우울해진다. 그래도 결국엔 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엎치락뒤치락해가며 꿈도 간간이 챙겨가면서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하고 오늘자 생각을 마친다. 짧은 감이 있지만 더 이상 우울해지기는 싫어서, 이 글도 여기서 마친다.


근데 합격하고 입사하고 나서 보니까 말이야,
성공이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어가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
_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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