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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May 27. 2020

아빠가 해준 평일의 점심은 어색한 맛이 난다

여섯 번째 기록

 여느 때와 같이, 정오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기어 나와서는 책상 앞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었다. 하필 원어 강의인지라 집중하려고 안간힘을 써도 언어의 장벽은  영어 실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하늘을 찌를 만큼 높았고, 더 이상은 힘이 달려 막 주저앉았을 그때였다.


삑. 삑. 삑. 삑. 띠로리. 열렸습니다.


 누구지. 가족들은 각자 할 일 하러 간 지 오래인데. 도둑인가. 어떤 도둑이 저리 여유롭게 4분의 4박자 맞춰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나. 집들어온 정체불명의 누군가는 순식간에 내 방 근처까지 발을 들였다. 그리고 정적이 내려앉은 집 안에 울려 퍼지는 기침 소리. 그 소리를 듣자마자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아빠였다. 아빠가 집에 오셨다. '이렇게 일찍 집에 오시다니. 무슨 일 있으신가?' 하는 마음에 스페이스바를 눌러 교수님에게 멋대로 휴식 시간을 드리고는 거실로 나왔다.


"아빠.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냥. 점심 먹었어?"

"아니, 아직."

"뭐 먹을래? 김치볶음밥 해 줄까?"


 아빠의 물음에 멋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평소보다 일찍 집에 왔다는 사실에 나는 아쉬움만을 느낄 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에게 가족의 이른 귀가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왕 강의 멈춰 놓은 거, 점심 먹기까지 시간 어정쩡하니까 하는 핑계로 쉬고 있던 와중에 아빠가 "밥!" 하며 나를 불렀다.


 20년을 넘게 아빠표 김치볶음밥을 먹은 나로서, 이 날의 김치볶음밥 또한 익숙한 맛이 났어야 했다. 그런데 이 날은 그렇지 않았다. 집 분위기가 김치 볶을 때 같이 볶아지기라도 한 건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평소와는 다른 맛이었다. 이 날의 점심, 그러니까 아빠가 해준 평일의 점심에서는 어색한 맛이 났다.


 어느덧 예순을 바라보게 된 아빠는 이직을 하셨다. 새로운 직장은 이전의 그곳과는 조금 달랐다. 매 학기 초 교재를 구입할 때마다 요긴하게 썼던 복지 카드가 없었고, 자녀의 학교 등록금을 지원하지 않았다. 고작 두 가지가 없어진 것뿐인데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마무시하게 큰 파도가 다가오는 듯했다. '아르바이트 한번 해볼까?' 했던 나는 이때를 기점으로 '종강 전에 아르바이트  구해야 되는데.' 하는 고민을 안고 살기 시작했다.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아르바이트를 극구 반대하던 부모님도 요즘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를 뭐라 하지 않으신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아빠가 집에 시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직하신 뒤로 아빠는 나와 평일 오후를 같이 보낼 때가 잦아졌고, 그때마다 난 뭔지 모를 아주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어색하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뺏긴 것 같고, 근데 아빠가 점심 챙겨주니 좋고.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의 실타래를 단칼에 자르듯 풀어놔 보자면, 아빠가 작아 보였다. 160cm 언저리인 나보다 말이다. 때때로 아빠가 능력이 없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당신 나이대로 잘 맞춰 살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전자를 상쇄시다. 사람 인생 다 겪어본 건 아니지만, 요즈음 아빠를 볼 때마다 삶이 등산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는 내리막길 들어서셨다.


 중학교에 올라가던 해에 아빠가 승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이 기뻐하던 때를 아직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우리 아빠가 세상 최고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학기 초 자기소개서를 적어 낼 때마다 자랑스럽게 아빠의 직장과 직급을 적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이때 아빠는 삶의 정상에 도착하셨던 것 같다. 열심히 올라 도착한 정상에서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 멋진 경치를 나누어 주신 것이다.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건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소소한 풍경들을 볼 수 있는 기회라 그러더라. 그래서 그런지 이직하신 뒤 아빠는 소소한 행복을 찾고 계시다. 휴일에는 친구를 만나 등산을 시고, 연휴 때는 엄마와 함께 부부 동반 여행을 다녀오신다. 이 시절아빠에게는 소소한 행복의 순간임을 알기에, 술에 취하기만 하면 슈퍼에서 군것질거리를 사 와 온 집안을 들썩이는 아빠를 봐도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그냥,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할까. 근데 건강은 챙겨가면서 즐기셨으면 싶다. 우리 가족 공통 고민거리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밤이면 버스에서 내려 퇴근하시는 직장인 분들을 마주친다. 어쩌다 한번은 11시가 넘은 시각에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직장인 분을 본 적이 있다. 가는 길이 같았던 지라 꽤 오랫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계속 보다 보니 그 뒷모습이 마치 우리 아빠를 닮은 듯했다. 저분은 오르막길을 오르고 계신가. 정상에 도착하셨나. 아님 우리 아빠처럼 내리막길에 막 들어서셨나. 갈림길에서 그분의 뒷모습이 옆모습으로 바뀌던 찰나, 나는 소리 없는 응원을 건네드렸다.


세상 아빠들 다 파이팅,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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