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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Aug 19. 2020

나는 참, 재미 없는 사람

열 번째 기록

 나의 기억이 시작되는 가장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몇 가지 있다. "참 조용하네." 혹은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최근에는 "텐션이 높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이 정도면 누구나 내 성격을 얼핏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친구들 여럿보다는 두세 명과 같이 있는 걸 좋아하고, 두세 명과 같이 있기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성적인 내 성격에 말이라도 재밌게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경상도 출신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는 재치 있는 언변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태어난 나는 내성적이고 진지한 사람으로서 스무 해 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너랑 단둘이 있으면 부담스러워.


 작년에 만난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악의 담긴 말은 아니니 오해 마시라. 친구 왈, 자기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성격인 데 반해 너는 너무 잠자코 듣고만 있는다더라. 쉽게 말하자면 대화 상에서의 기브 앤 테이크가 동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배드민턴 시합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날아오는 셔틀콕을 그냥 받아치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끔은 스매시라든가 드롭샷 같이 예상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셔틀콕을 받아 쳐줘야 재밌는 시합이 된다. 하지만 나는 화려한 기술에 익숙지 않은 사람인지라, 상대방이 어떻게 공을 치든 간에 그저 정직하게 공을 다시 쳐낼 뿐이다. 그러니 상대방으로서는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기 마련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을 들은 뒤에도 나는 담담했다. 내가 재미없는 성격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앞서서 그 친구에게 미안해지더라. 그동안 부담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나와 대화해 준 친구의 노력에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어떤 친구를 만나든 대화 사이에 적막이 생겨 버리면 몹시 조급해졌다. 적막이 대화를 덮쳐 버리기 전에 무슨 이야기라도 꺼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게 마음먹는다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니더라.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더 길고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고, 조급한 마음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뱉은 이야기들 중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이야기도 꽤나 있었다. 적막을 가까스로 걷어낸 그 순간에는 안도했을지 몰라도 잠자리에 누우면 '그 이야기는 하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어 후회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대화에 대한 고민은 꽤나 긴 시간 동안 나를 맴돌았다. 적막을 걷어내지 못해 난감한 순간을 맞이해야 했던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올 때면 좋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못할 거라는 자책감에 시달려 만남을 피하기도 했다. 이걸 다행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유롭게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요즘 상황에서 내 반응은 친구들로 하여금 내가 자신을 피한다기보다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와중에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 동기였다.


 학교를 못 가서 서로 만난 지 너무 오래됐다는 게 전화의 이유였다. 순간 머리가 띵- 했다. 나 같이 재미없는 사람을 단지 '얼굴 본 지 오래됐다'라는 이유로 찾아 주다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곧 나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고민을 다 듣고 난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근데 나는 한 번도 너를 재미없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라고 말이다. 그 대답은 달팽이처럼 껍질 속에 쏙 들어가 움츠려 있는 나를 다시 밖으로 나오게 했다.


너랑은 이런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아.


 "이런 얘기?" "응. 고민 상담이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같은 거. 너랑은 그런 얘기해도 다른 애들보다 편해." 조금의 각색이 있지만, 친구는 대략 이런 말을 건네주었다. 재미있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재미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애초에 그걸 나누는 재밌음의 기준도 모호할 뿐이니 그런 데 연연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도 말해 주었다. 고민 상담은 짧았지만 여운은 통화를 마치고 나서도 오래 지속되었다. 왜 나는 억지로 다른 사람이 되려 했을까. 지금 이 성격으로도 충분히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는데 말이다. 여태껏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준 이유에는 내 성격도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적막의 무서움을 떨쳐 내지는 못한다. 누군가가 나를 말이 없다는 이유로 꺼려하는 게 두려워서일까. 그런 말이 있더라. 정말로 친한 사이에는 아무 말 안 해도 편안함을 느낀다고. 내가 대화의 공백을 무서워했던 이유도 어쩌면 상대와 진심으로 친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아서였지 않나 싶다. 대화의 공백을 무작정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공백 속에서도 서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성격 쉽게 안 변한다더라. 그러니 내 성격 그만 괴롭히고, 이제는 대화 사이의 공백을 조금 더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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