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기록
2021년의 9월은 나에게 있어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달이다. 열일곱 시절부터 꾸준히 좋아해 온 가수 아이유의 노래 '스물셋', 바로 이 나이를 맞는 생일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로지 음이 좋아서 즐겨 듣던 노래였는데, 올해는 노래를 반복 재생한 채 가사를 골똘히 곱씹어보는 취미까지 생겼다.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난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스물셋의 가사 중에서 가장 공감이 되는 네 마디다. 지금 이대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가도 사소한 일 하나 겪고 나면 고작 지금에 안주하고 있는 내 모습을 혐오하기 일쑤인 데다, 간질간질한 사랑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소박하게 연애하고 싶다가도 도로 위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외제차들을 보며 '열심히 살아서 돈 많이 벌면 꼭 포르쉐 뽑아야지!'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는 요즘이다.
심경의 변화를 하루에만 대여섯 번을 일으키니 이젠 생각하는 행위만으로도 번아웃이 올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모든 자극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은 신기하게도 스물셋이 된 올해부터 발현한 것 같은데, 아마 휴학계를 낸 게 가장 큰 요인이지 않았나 싶다. 수중에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토익 점수가 전부인 데다 진로에 대한 기본적인 틀조차 짜 놓지 않은 상태에서 고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 시장을 맞이하기가 무서워 선택한 길이었다.
헛되이 1년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작년 가을부터는 열심히 휴학 계획을 세웠었다. 1월에는 운전면허를 따고, 2월에는 한국사 자격증을 따고, 3월에는 봉사활동을 하고... 이제 막 8월이 끝난 지금까지 계획은 큰 차질을 빚지 않고 잘 지켜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살고 있음이 곧 행복한 삶을 사는 길은 아니었다. 1년 동안 자격증만 따는 게 어쩌면 시간 낭비는 아닐까? 재수를 했는데 휴학까지 하면 또래보다 2년 늦게 졸업을 하는데,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섣불리 휴학을 결정한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 졸업반이 되었을 때 올해를,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까 두려워 잠깐의 휴식에도 박해지고 성과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듯 자격증 도장 깨기를 시전하는 나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 물어보면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아니고, 원래 성격이 그런 편도 아니며, 그저 불안감 때문에 쫓기듯 달리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상반기에는 진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공무원, 공기업, 사기업, 전문직, 외국계 기업, 해외 취업 등. 수많은 길을 매일매일 들락거렸다. 어느 날은 폼나게 사는 회계사의 브이로그를 보고 나서 전문직을 준비하고 싶어지고, 또 어느 날은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의 스펙을 비관하고서 지금부터라도 공무원 준비를 해야 하나 싶어진다. 아주 가끔 자존감이 바닥을 치다 못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앉는 날에는 늦기 전에 다 때려치고 수도원에라도 들어가야 하나 싶고... 지금 생각해도 이건 너무 갔던 것 같긴 해.
다행히 '열심히 살다보면 나만의 길이 트이겠지' 하는 체념이 진로 고민을 일축시켜 준 덕에 봄보다는 무던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고, 남은 반년은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더위가 물러난 근래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나에게 얼태기가 찾아와 버렸다. 얼태기란 자신의 얼굴에 권태감을 느끼는 시기로서, 아무리 화장을 하고 관리를 해도 거울을 보며 이전만큼의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게 전형적인 증상이다. 호빵같이 퍼져 버린 얼굴형에 단추만 한 이목구비, 운동을 게을리 한 군살의 흔적까지... 거울만 보면 자괴감을 떨칠 수 없는 탓에 거울을 보지 않고 화장실을 쓰는 묘기까지 생겨 버렸다. 자꾸 이상한 짓만 늘어간다.
더군다나 가끔 SNS를 보면 여성의 나이에 대해 정의라도 내리듯 말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여자 피부는 스물다섯부터 노화하기 시작한다느니, 스물넷부터는 젊은 나이가 아니라느니, 20대 후반 넘어가면 대기업 취직은 힘들다느니... 정말 별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아도 되는 헛소리라는 걸 물론 알지만, 무의식 중에 불안 심리를 이용하는 광고에 홀려 효과도 없는 화장품을 사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외모를 가꾸는 것보다 머리를 채우는 게 미래를 든든히 하는 방법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하고 싶은 건 매일 바뀌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은 내 나이에 대해 참견하기 일쑤고, 이제는 외모까지 신경 쓰이고. 위를 보며 절망을 느끼고 아래를 보며 위안을 얻는 이 망측한 버릇까지. 마음 같아서는 정말 다 때려치고 싶을 지경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지 않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는 다르겠지만 어제의 나와 같아질 수도 있는 혼돈 속에서 나는 그저 이곳에서 자판을 두들길 뿐이다.
아이유가 지나온 길처럼, 나도 스물다섯이 되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이고 좋아하는 건 무엇이며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한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흐릿하게나마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길까.
'Soulmate'라는 노래 가사 중에 "형체를 알아보지 못해도 테두리를 함께 그릴 사람"이라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지금 내가 노력을 쏟는 매 순간이 테두리를 그리고 있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테두리를 그리고 있기에 무엇을 그리고 있는 건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후 테두리의 처음과 끝이 만날 미래에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그려온 건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에는 여전히 거센 파도가 일지만, 깊숙이 심지를 꽂은 채 휩쓸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던히 해 나가야겠다. 훗날 뒤돌아봤을 때 이리저리 방황하던 나의 스물셋이 마냥 시간 낭비에 헛고생은 아니었길 바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