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폭되는 소리와 감정
넝쿨 사이로 비친 햇살이 거실로 늘어질 때쯤 택배가 도착했다. 수도 없이 따져보고 산 아치 모양의 자석칠판이었다. 마침 부산에서 올라온 엄마는 자식 손주들 먹일 김치를 담고 있었다. 곧 방문할 언니와 남동생 몫까지 만들려면 손이 바빴다. 열여덟 평 작은 집 곳곳에 알싸한 향이 퍼져나갔다. 엄마는 다진 마늘을 듬뿍 떠서 톡톡 던져 넣으며 무슨 택배가 그렇게 크냐고 물었다.
"응 ~ 집에서 공부하니까. 가르칠 때 이런 게 필요하겠더라고"
큰 수술 이후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엄마는 분위기로 의중을 파악하는 일이 잦았다. 매번 크게 말하자고 다짐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곧바로 후회했지만 내색하지 못했다. 유난히 목소리가 작은 편이라 노래하는 친구의 소개로 발성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과민한 청각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조차 시끄러워서 결국 성대 근육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코치에게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어디까지가 소음인가 소릴 높여 보기도 하고 도레미파솔파미레도 높낮이로 발성을 가다듬어 보았지만 죄다 소음이었다. 누가 들으면 무슨 이세돌이냐. 대단한 이유로 묵언이라도 했냐 생각할 수 있다. 내게 청각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와 같은 예시는 물론이고, 이웃집 사람이 월드컵 응원 리듬으로 칫솔을 터는 소리, 새벽 두 시의 쓰레기차 후진하는 소리, 앞집 할머니가 이미 버려진 쓰레기 봉지를 열고 할머니의 쓰레기를 더해 꾹꾹 누르는 소리. 아이를 키우면서 귀가 아파 두 번이나 기능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한 번은 카페에서 울리는 밴드의 드럼 소리가 너무도 투박하고 공격적이라 헤드셋을 썼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만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멍하게 한 곳을 응시한 채 아들이 1년 동안 다니던 드럼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힘들어. 드럼이 나는 너무 힘들어"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를 키우다 보면 힘들다는 말이 마음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시점이 생긴다.'또야.... 안 힘든 일이 어디에 있어' 모진 생각이 들곤 한다. 아들은 개원이래 처음으로 귀가 아프다고 말한 원생이고, 나는 처음으로 차음폰을 챙겨 보낸 엄마였다. 다행이지. 나의 예민함은 예민한 누군가를 그 어떤 강제성 없이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 홀로 연습하는 시간에 사방이 막힌 컴컴한 부스가 무서웠을 것이다. 높고 낮게 고막을 때려대는 소리가 배우는 즐거움 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힘들다는 말이 어른들에게는 다 가진 녀석의 나약함으로 해석되곤 하지만 실제로 다른 사람보다 더 힘이 들어간다고 실제로 통증이 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당신의 둘째 딸을 그렇게 키웠다. 낮밤이 바뀌어서 밤새 울어대던 나를, 젖은 안 나오는데 분유는 입도 안 대서 별 수를 다 써본 나를, 다 커서도 매일 우는 나를 너라면 응당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키웠다. 이번에도 크게 대답해주지 않는 나에게 그러려니 넘기면서 김치 얘기를 이어나갔다. 배추는 칼날을 바깥으로 해서 밀듯이 썰어놓고 일단 큰 대야가 있으면 좋은데 없으니까 나눠서 해야 한다고, 우선 이쪽 먼저 꾹꾹 눌러 놓으라고 손짓을 더해 설명했다. 설탕의 위치를 파악하느라 온 수납장을 열어보다가 집안 살림이 소꿉장난 같다고 피식 웃었다. 함께 웃던 나의 맞장구가 무색할 만큼 금세 안쓰러움의 그늘이 퍼져나갔다. 눈가에서 심장으로 빠르게. 큰 대야가 있어도 어디 보관하겠냐고 생각한 것 같았다. 찰나의 순간 상대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고통스럽지만 믿지 않기로 하면 될 일이다. 언젠가부터 훈련된 삶의 방식이었다.
'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흘려보내라. 알지만 모른다.'
칠판 조립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도 거대했고 딱히 둘 곳이 없었다. 진정 필요했던 것이 맞는데, 분명 여러 번 치수를 확인했는데 도무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느낌은 감각이니까 구름처럼 지나간다고 자신을 달래 보아도 푸르게 보일 정도로 백색인 데다 빠짐없이 광이 나는 칠판은 득실득실 끓어오른 욕망 덩어리처럼 보였다. '칠판은 책상 옆에 있어야 하고, 그럼 책상이 여기 있어야 하는데, 책상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데, 이 집에서 유일한 나의 물건이 저 책상과 아이맥인데, 이제 저기서 마음껏 사진 작업을 하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이 칠판에 맞는 구조를 가지려면 이 책상은 아들에게 주고, 그럼 내 아이맥은.... 어디에 두지?' 아이맥이 아일랜드 위에 놓여 갈 곳을 잃자 엄마는 김치를 담아야 할 공간에 올라온 아이맥과 차가워진 내 얼굴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엄마가, 딸 바쁜데 괜히 일을 만드네. 김치 다음에 담아서 보내 줄 걸 그랬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조금 슬퍼서 그래. 내 자리가 없어져야만 해서...."
엄마는 인간군상의 다양성을 인정해 본 경험치 같은 것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덧대지 않은 솔직함 앞에서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너무 솔직하면 그것보다 솔직한 대답을 찾을 수 없으니까. 부모의 마음은 단답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엄마의 반응에 나의 반응을 더하고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빠져 증폭되는 예민함 사이에서 정적을 맞이했다. '반대로 엄마는 자기만의 자리를 가져본 적이 있었을까?'평생 나보다 못한 환경에서 살았을 엄마에게 거대한 빚이 있는 것처럼 이런 생각조차 선민의식이 아닐지 생각회로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불행배틀을 하면 백전백패할 게 뻔한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불행했을 사람에게 실례되는 한탄을 하고 말았다. 자식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내 자리'라는 의미조차 먼 미래로 밀어두었을 사람에게. 당신의 인생을 불행이란 단어로 표현하지 말아 달라 그건 네 시선일 뿐이다 선을 그을 사람에게.
"그냥 살아~. 있는 대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지만 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 본 말이었다. 10여 년 전 제주도에서 윗집 이웃에게 방충망이 죄다 뜯겨있어서 손바닥 만한 벌레들이 들어오더라 말했을 때에도 이사할 때마다 페인트 칠을 할 때에도. 집 구조를 자주 바꿀 때에도 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무서울 때에도 들었던 말. 이런 말을 듣기 싫어서 그토록 조용조용 튀지 않으려고 애썼던 학창 시절에도 들었던 말. 매번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타인을 지적하거나 까탈을 부리며 괴롭히지도 않지만 누가 보아도 결코 '그냥' 사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너무도 조용하고 안광이 뚜렷했다.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경청하고 궁금해했다. 이따금씩 한 마디를 던졌는데 대체로 질문이었다. 이를테면 누군가 그냥이라던지 그거, 그런 거라는 희미한 목적어를 쓸 때마다 이렇게 되물었다.
"그냥 어떻게요?"
"그거가 뭔데요?"
느낌이나 맥락으로 알 수 있는 모든 것에 입을 데는 사람이었으나 그의 태도는 불손하지 않았고 대체로 느슨해진 타이밍에 다진 마늘처럼 톡톡 던져주니 알싸한 유머로 받아들이기 충분했다. 그는 무례한 질문을 무례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신을 좋아했다. 대체로 선을 넘지 않도록 긴 문장으로는 말하지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MBTI 같은 것으로 그의 성격 유형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럴 방도가 없었다. 모임에서 자동으로 외향적인 척하던 나는 속으로 그의 질문들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오묘하게 발현된 블루 티셔츠와 불명한 뿔테안경, 체구에는 작은듯한 옷 사이즈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의문인 것은 그의 민감성이었다. 내가 아는 모서리와는 달랐다. 나처럼 민감한 것을 아니 그 무엇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이토록 다치게 될 줄은 모른 채 우리는 가까워졌다. 엄마는 예민한 내가 또 예민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그것도 삼 남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한다니 인생 어디까지 재미있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각자의 자취방 짐을 가지고 애를 낳아 이만큼 살아낸 것에 대해서 기특한 것도 의아한 것도 같았다. 그냥 살라는 엄마의 말에는 내가 좀 평안했으면 하는 걱정과 사랑이 가득했다. 그냥이 뭔지는 몰라도 나도 그러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럴 때 능글맞게 그냥 사는 게 어느 정도의 범위인지 물어볼 남편이 있었다면 엄마가 웃었을까 상상했다. 거대한 칠판을 여기 두었다 저기 두었다 나사를 조였다 풀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동안 밖에서 까마귀가 징그럽게도 울어댔다. 있는 인상 없는 인상을 다 찌푸리자 엄마는 아까와 같은 말을 한 번 더 했다.
"엄마가, 괜히 일을 만드네... 그런데 고춧가루가.. 이것밖에 없어?"
주섬주섬 지갑을 챙기고 마트에 가보니 시판 고춧가루가 한 종류 밖에 없었다. 탁하고 누레진 고춧가루를 보고 망둥어 입이 되어서는 마트를 나왔다. 장갑을 끼고 기다릴 엄마를 생각하며 방앗간으로 뛰어들었다.
'그래, 이게 바로 PANTON 199C 레드야. 남편이라면 이걸 ASTA 색도 120 이상이라고 생각했겠지. 합격'
고춧가루의 선명한 컬러와 신선함에 몰두하여 칠판의 예민함이 희석되었다. 역시 엄마는 나를 다룰 줄 안다고 확신하면서 등줄기에 옅은 땀이 나도록 뛰어올랐다. 집으로 들어서자 곧 손님들이 올 것을 예상한 아들이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절대 만져서는 안 되는 장난감 1~3번'을 고르고 있었다.
"엄마, 이거랑 이거 저기 제일 높은 곳에 좀 올려줄 수 있을까?"
"우린 죄다 그냥은 없는 거야. 그렇지?
"그래, 이런 게 그냥이지 뭐. 생긴 대로 울고 웃으면서"
셋이 이어 달리듯 웃다가 창밖에서 괴성을 지르는 까마귀를 동시에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