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려다 마는 사람

기록이 숙명

by 유우




"못돼서 사는 게 힘들 텐데"


할매는 내 얘기만 나오면 못됐다고 말했다. 세상 살기 힘든 성품이라는 뜻이다. 참다 참다 툭 던지는 한 마디가 날카로워서 '쟤가 다 보고 있구나. 말은 이쁘게 하는데 들으면 아프다니까. 속에 하려다 마는 말이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고. 기분 상할 일은 아니다. "할매 닮아서 그렇지" 하고 웃으면 그뿐이었다. 할매는 기장군의 매릴스트립으로 불렸다. 이마 옆으로 흘러내리는 컬은 희고 윤기가 났다. 총명한 눈빛과 휜 코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미란다를 떠올리게 했다. 할매의 이름은 미란다가 아닌 미쯔코다. 일본에서 태어나 학교를 들어가기도 전에 무당이 되었다. 전쟁으로 한국에 넘어와 아이가 없는 고모 집의 양녀가 되었다. 마을에서 받들어지듯 살아온 존재가 대구의 반 깡패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끔찍한 여생을 살아야 했다. 안 해본 장사가 없고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무당이라는 업보는 자식들에게 대물림되었다. 살만 하면 할퀴어 댔다. 귀신도 안 무서운 할매가 가장 어려워했던 사람, 감정적으로 공감했던 사람은 나였다. 팔짱을 끼고 산책을 나서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을 해주셨다. 언젠가 할매의 둘째 딸인 큰 이모는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는데, 할매가 다가와 두 손을 감싸면서 말했다. "나중에 커서 복수해라. 원망해도 괜찮다. 그래도 돼." 영원히 묶여 살 것만 같았던 상처는 할매가 고르고 고른 한 마디에 바스러지고 바람을 따라 흩어졌다. 할매는 자기 자식에게 복수하라는 사람이다. 게다가 아침드라마 같은 건 보지 않았다. 트로트도 듣지 않았다. 주로 미국 범죄 수사물을 좋아했고, 게임 <프리스톤 테일>의 최고령 실력자였다. 할매는 희귀한 할머니였다.

"할매 바이카모라고 아나? 1 급수 물에서만 살 수 있는 수중식물이라는데 억수로 희귀하단다. 할매 닮았디"

"바이는 매화 아이가? 요새 1 급수가 오데있노?"

"그러니까 할매가 살기 힘든 거지 희귀하고“


면회가 되는 날 병원을 향해 달렸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할매는 눈을 감고 미동이 없었다. 언니는 언니답게 "할매는 여기서도 이쁘네" 나는 나답게 " 할매 사랑해" 그때 할매의 숨이 가빠졌다. 우리가 온 것을 알고 뭐라도 말하고 싶은 숨소리였다. '찰나의 만남이 이대로 끝이면 어쩌지.' 무서웠다. 엄마는 언니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었다. 잠깐 회복하는 듯 보였던 할매는 두 번째 면회 다음 날 돌아가셨다. 할매가 좋아하는 예쁜 꽃들이 가득한 관속으로 들어갔다. 추모공원에서 사진을 요구했다. 언니는 수년 전 (할매가 복수 얘길 꺼내던 그 시점에) 내가 찍어 둔 흑백사진을 보냈다. 화장대 거울에 비친 모습이었다. 그 사진만큼 할매를 있는 그대로 대변할 사진이 없었다. 화장대에 앉아 눈썹을 그리고 매무새를 다듬는 모습은 잘 보이기 위한 치장이 아니라 하루를 여는 의식처럼 보였으니까. 할매 사진을 어루만지면서 그날을 떠올렸다. 마주 앉아 콩나물 머리를 톡톡 떼어내던 평화로운 오후, 갑자기 콩나물 머리와 함께 이런 말을 던졌다.

"세상 온갖 게 다 보이고 들릴 텐데 얼마나 입을 대고 싶겠노 니가"

"적어도 귀신은 안 본다 아이가 나는"

"맞네"

"그려도 되고 찍어도 되고 써도 되고"

"그래, 말보다는 기록이 낫지"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예술중학교 미술과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당시 40만 원이었던 학비며 추가되는 레슨비, 차량비는 매달 밀리고 쌓여만 갔다. 내 이름은 '미납자 정유우'다.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스스로 절벽에 뛰어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을 깨닫는 일은 매일 문자로 미납 안내를 받는 것처럼 쉽고 차갑다. 아이들이 해외로 수학여행을 갈 때 나는 갈 수 없고, 아이들의 무념무상이 용인되는 환경도 폭력적이었다. 예술고가 아닌 '예술계' 고등학교로 '미술과'는 '사진영상과'로 바뀌면서 나의 마지노선은 보편적인 선이 되었다. 암실의 호박등 앞에 서면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버튼을 눌러 빛을 비추고 인화지의 할로겐화은을 녹인다. 세 단계의 약품에서 목욕을 시키고 나면 살았던 시간을 간직할 수 있었다. 연필과 붓만큼이나 빛으로 그리는 그림 역시 말보다는 나았다. 할매가 콩나물 머리와 함께 던진 말 덕분에 찍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교보문고를 둘러보던 중 작은 매대를 발견했다. 손바닥 만한 태그에 짧은 말을 써서 걸어 둘 수 있었다. HOPE 카드를 집어 들었다.


HOPE 2025.2.25

할매.

똘이 삼촌 만났어?

삼촌이랑 오붓하게 행복하기만 해야 해.

사랑해.


지금 나의 아들은 삼촌이 죽은 나이와 같다. 할매는 아들을 닳고 닳도록 쳐다보셨다. 때마다 할매와 나는 하려다 마는 말이 많았다. 작은 이모는 할매의 하려다 마는 말을 대신해 주곤 했는데 "똘이랑 똑같네. 눈빛이며 엄마 머리카락 손가락으로 돌리는 것도 똑같네...." 이모는 삼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이 없었다면 나는 삼촌의 얼굴을 몰랐겠지. 삼촌은 바다에 삼켜졌는데 겨우 남은 사진이 바다에서 찍은 사진이라니' 할 수 없는 말이 많았다. 할매가 겨우 내뱉은 말은 "내 첫 증손주. 첫사랑" 그뿐이었다. 언젠가 이 날 우리가 하려다 말았던 말들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바다가 아닌 곳에서 삼촌을 찍어준다는 마음으로 아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고. 기록은 말보다 낫다고. 할매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피어있는 바이카모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