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성 인간

수용하기 위한 비수용

by 유우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 깨달음을 스물다섯에 얻는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일 것이고, 서른이라 한들 속단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흔 언저리쯤 되면 반드시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 그때가 되면 마지막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한 일 말이다.(189p)

『보통의 존재』- 이석원



출산과 나이 듦은 서서히 무너지는 모래성을 지켜보게 만든다. 육아는 더한 것이 꽁꽁 묶어두고 나의 못남을 직시하게 한다. 자신을 미워하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을 다시 사랑해야만 한다. 아무리 단단하게 만든 모래성이라도 순식간에 쓸려나간다. 아이는 우리 부부가 가장 못났을 때 태어났다. 남편은 사업실패로 빚이 늘고 내용증명이 날아오던 시기, 기업의 조직문화를 견디지 못한 내가 퇴사 후 작은 가게에서 일하던 시기에 덜컥 출산을 했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인지 구원으로 끌어올려지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전도되고 도치되어 운명에 반기를 드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실패한 채로 아이를 맞이한 건 아닐까 자책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방조는 역겨운 나, 협업은 가능해도 일 못하는 상사는 참을 수 없는 남편 때문에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만 하니까. 깨달음을 얻는다고 영화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려온다. "당당하게 고집을 부려도 되는 시기는 나 하나만 책임지고 살 때까지"라고. 우리는 기억도 안 날만큼 오래전부터 쉬지 않고 일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따금씩 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잡지에 실린다고 나아지는 건 아니다. 결국 모래성일 뿐이다. 자신의 비대한 기대치로 만든 모래성.


스물여섯이 될 무렵에 생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가족 친구들도 모르게 갔으니 여행이 아니라 도망이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아르바이트를 했고 일거리가 없을 때는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았다. 친구들의 레슨 재료를 사 오는 대신 재료비에서 수수료를 붙여 받았다. 그 수수료로 내가 쓸 재료를 샀다. 대학을 졸업하던 2월에 바로 취직한 후 별 꼴을 다 보면서 일했지만 사건은 인턴으로 들어간 스튜디오에서 터져버렸다. 3개월 내내 과로를 하다 야외촬영 중에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깨어보니 모든 스텝이 철수하고 없었다. 아무도 내가 쓰러졌는지 없어졌는지 몰랐다. 스튜디오로 달려가 퇴사를 알렸다. 급여 정산을 요구하자 인턴이라 곤란하다며 식대 정도만 챙겨주겠다고 말했다. 천 원짜리 지폐와 동전으로 바꿔온 13만 원이 담긴 지퍼백을 내밀었다. 굴복하길 바라는 비릿한 눈빛과 저열한 미소를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스튜디오 2층으로 올라가 지퍼백을 열고 돈을 뿌렸다. 그들이 엎드려 동전을 주울 동안 급여만큼의 장비를 부수고 나왔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인류애의 상실감과 상응하는 복수심으로부터. 돌아가는 길에 스페인행 티켓을 알아보았다. 한인민박에 도착했을 때 돈이 아까워서 다닐 수가 없었다. 모든 돈에 많은 한이 서려있었기 때문에. 광장에 앉아서 생전 처음 보는 풍경들을 봤다. 학교 동기들은 이미 보았을 풍경 하지만 내게 더 간절했을 풍경을. 사장님의 제안으로 민박집에서 일을 했다. 사장님 차로 관광을 하고 밥도 먹고 무료 숙박도 할 수 있었다. 사장님 내외는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보고 계셨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려는 것도 결국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가역적 도피를 하는 것은 아닐까. 도망을 쳐보면 지키고 싶은 것이 선명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를 떠올린 서른 하나, 0이 아닌 마이너스가 되어 가진 것이라곤 겨우 서로 밖에 없을 때 지키고 싶은 선명한 존재가 있었다.


뿌리내릴만한 곳을 찾으려면 나를 알고 땅을 알아야 한다. 자신과 세상을 충분히 모르니까 내가 어디까지 튀어 오를 수 있는지 몰랐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자 일주일 만에 짐을 싸서 제주도로 떠났다. 아이는 정말 작은 소리에도 깼고 최선을 다해 울었는데 들끓었던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자 조금 살 만했다. 귤밭을 거닐며 노래를 부르면 잠투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 살까지 야경증은 계속되었다. 나는 점점 야위고 소멸되어 잠만 잘 수 있으면 되었다. 아이가 울면 죽을 듯이 괴롭다가도 평화로운 자연을 보면 감탄할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남편은 웨딩 사진 업체 대표였다가 목조주택 현장에 나가고 가구 공방에 나가다 농산물을 팔기 시작했다. 이전의 남편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곱던 손 발은 점점 투박한 망치가 되어갔다. 시댁식구들은 자식의 제정이나 손주의 성향은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가 손수 꾸민 작은 결혼식에도 시댁식구들은 불만이 많았다. 결혼식 내내 찬바람이 불었다. 이번엔 돌잔치를 거하게 해야 한다 손주 자랑 좀 해보자고 성화를 부렸고 온종일 낯가리고 울다 지쳐 잠들 아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남편은 장손으로 지고 있던 책임감을 놓아버렸다. 이전에 의미가 있던 것처럼 보였던 인간 관계도 육지에 놓아두었다. 분유를 사고 장을 보고 나면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고 빚은 더 늘어만 갔다. 친정언니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다 남편은 자존심을 버리고 끝내 회생절차를 밟았다. 더 무너질 것도 손에 잡힌 것도 없어지자 우리는 되려 홀가분해졌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바다 앞에 앉아서 울거나 고마워했다. 서로의 존재를. 매일 해변을 걷고 오름을 걷고 포구 정자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지금을 살아내려 애썼다. 그렇게 기도원 같은 통나무 집에서 신축빌라로 빌라에서 양옥 단독주택으로 조금씩 믿는 구석을 가다듬었다. 어떤 불행이 와도 꺼지지 않는 온기로 채워나갔다. 아이는 점차 두려움 없이 바다를 뛰어다니고 어린이 집에도 갈 수 있었다. 한 달 내내 체육 수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선생님은 옆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안 자고 울면 업어주셨고 부모 상담이 있던 날에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기다림으로 키우는 두 분이 대단해요. 많이 배웠어요"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자리의 모두가 울었다. 타자에게 우리는 젊었고 고집스럽게 드높이는 사랑이 있었기에 가난이 그럴듯한 모험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내가 왜 스페인에, 우리가 왜 제주도에 갔는지 몰랐다. 물이 되고 싶은 모난 돌이었다는 것을.


아이가 조금 자라자 완전한 팀의 일원이 되었다. 자전거로 해변을 달리며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고, 준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축축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버릇처럼 말하던 '비위생적'이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았고 '미개하다' '그지 같다' 같은 힐난도 줄어들었다. 당시 우리야 말로 섬을 전혀 모르는 미개한 외지인이고 우리가 제일 그지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멀쩡한 차를 에어컨이 고장 난 중고차로 바꿔왔다. 남편을 1100 고지에 버리고 싶어서 동네 할머니에게 남편은 정신 꺾어진 놈이라고 제주 방언으로 흉도 봤다. 벌을 받았는지 아침에 남편 베개 밑에 벌건 지네가 있었다. 주방에서 나타난 얼굴 없는 달팽이는 청정한 곳에서 사는 육상플라나리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매일매일 놀라자빠질 일이 있으니 시름을 잊어버렸다. 앞집 개 '상기(상가리 웰시코기)'가 (목줄이 풀려) 처음 만나는 자유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아이는 멍뭉이가 차에 치일까 봐 엉엉 울었다. 상기는 안아 들려고만 하면 용천수처럼 튀어올라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줄이 풀렸을 때 사건(!)이 있었던 것인지) 솜뭉치 같은 새끼를 낳았고 새끼들은 우리 집 앞마당에서 용천수처럼 튀어 오르며 놀았다. 그 여름에 상기 가족은 누군가에게로 팔려갔다. 끈적이는 비닐에 두유나 귤 같은 간식을 담아서 손에 쥐어 주시던 상기의 주인 할머니도 자식들과 합가를 했다. 빈 돌담집은 카페가 되었다. 상기와 할머니가 몹시 그리웠다. 우리 동네는 물론 제주 전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그즈음에 우리는 서울에서 온 제안을 받고 제주를 떠나기로 했다.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의 수용적인 마음이 우리를 회복하게 했다. 스페인에서도 제주에서도 도망자 주제에 채워갈 수 있음에 고마워서 오래도록 울었다.


문득 지금이 찬란하게 느껴질 때마다 아이는 다음 생에 관한 질문을 했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물 같은 돌, 돌 같은 물이라고 대답한다. 녀석은 농담인 줄 알고 콧등이 구겨지도록 웃었다. "이토록 해사한 웃음을 보려면 또다시 엄마가 되어야겠어. 어쩔 수가 없다" 말하자 아이의 동공은 빛나고 광대는 볼록하게 차오른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이마를 맞댄다. 우리는 오직 이곳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는 전달물질이 있는 것처럼 이마를 맞대고 눈을 감았다. 사랑한다고 우주만큼 끝도 없이, 알 수 없을 만큼, 어쩔 수 없을 만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연한 빛이 세어 들어오는 잔잔함이 되었다. 차지 않은 푸름이 되었다. 온 데를 가로질러 헤엄쳐도 만날 벽이 없는 물이 되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사진첩을 보면서 말했다."고약한 순간에도 우리는 참 우리답게 웃었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억지로 웃어서 슬픈 날에도 견디다 보면 진짜 웃게 되고, 마주하면 자꾸 웃기고 싶은 게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사랑이라는데. 삼체의 대사처럼 농담이 없다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신이나 외계의 존재가 아니라도 생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니까 유머의 체급을 키우는 게 옳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유머라는 리포좀 기법에 기대 제주의 거센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했던 , 마치 소스케를 만나기 위한 포뇨처럼 파도 위에 우뚝 선 우리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꼬질꼬질하고 사랑스럽다. 아이가 “다시 태어나면...” 질문을 하는 순간에 느꼈을 행복과 아쉬움, 영원 같은 것을 반추하면 더 이상 열망하지 않는 자신이 된다. 중요한 것 하나를 수용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덜어낸다. 달고 쓴 모든 말 중에서 거르고 거른 위로를 건넨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괜찮아져. 농담을 많이 하다 보면 다 지나가. 진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