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으로 충분한

증오는 날개를 가질 수 없으니

by 유우


코앞에 횡단보도를 두고도 몇 미터 떨어진 육교를 건너곤 한다. 발아래에서 차들이 교차하면 몸이 진동하고 바람이 몰아친다. 찰나의 시간, 세상이 가라앉고 홀로 떠있는 듯한 고요함을 만끽한다. 생각이 작은 육성으로 바뀌어도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에 풀려난 새처럼 중얼거린다.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하다. 연민으로 충분하다. 연민으로 충분한 일만 일어나면 좋겠다."

긍휼히 여기거나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더 이상 불편하다는 이유로 날카로워지고, 심신을 다해 미워하는 짓을 그만두고 싶었다. 돌처럼 살 거면 단단하게 버틸 것이지 머금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처럼 모른 척할 수도 없으면서. 너무 많이 보이니까 잘 안 보이게 되고, 따가운 자극이 많아서 쉽게 미워했다. 감각과잉이 미움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던 계기는 그 무엇도 아닌 결혼과 육아였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나의 영역을 완전히 침범당하고 어질러지는 동시에 이토록 즐겁고 유쾌할 수 있다는 게 생경했다. 내 가시 좀 봐 이런 나 어떤데? 하고 돌아보면 나보다 화려한 가시를 가진 남편과 아이가 서있으니 웃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


세상의 정보를 과도하게 흡수하는 건 어디다 생색낼 능력도 아니고 이해를 바랄만한 핸디캡이 아니다. 그러나 먼지만큼의 허용치를 갖기 위해 갑옷을 입고 나서는 사람들이다. 무슨 깔때기 목구멍이 이렇게나 좁은지 좀처럼 콸콸 넘어가지도 차라리 넘쳐서 뱉어내지도 못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림에만 몰두하면서 주변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학교에 가면 유독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조용한 ADHD처럼 멍하게 지냈다. 갑작스러운 시험이나 발표는 긴장감으로 망치기 일쑤고 집에 돌아오면 긴 시간 휴식이 필요했다. 구름이 달을 지나치는 움직임, 새의 목이 얼마나 유연한지 관찰하면서 저항이 없는 존재를 부러워했다. 말투에 예민하니까 오만가지 반감이 생기고 깡만 늘어서는 누가 시선을 오래 두기라도 하면 절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왜? 말해봐. 그 뻔한 말을 해보라고' 배고픈 레서판다 같은 얼굴로 어울리지도 않게 싸움닭이 되어가고 있었다. 점점 자신이 무서워졌다. 주로 관조자의 입장이 되어 살다 보니 상대의 치부나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싸우자고 달려드는 것보다 생각 없이 하는 말을 더 증오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 너무 생각이 많은 내게는 불공정하게 느껴졌으니까. 누군가 말실수를 할 때마다 가장 연한 부분을 제일 아파하는 말로 공격했다. 말은 실수를 할 수 없는 메커니즘이고 이면에 자신이 우월하다거나 배려하고자 하는 긴장감이 무에 가까운 것이라고, 몰랐다는 변명 앞에서는 무지는 죄라고 대답하는 되바라진 아이였다. 그즈음 <앵무새 죽이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호밀밭의 파수꾼>, <자기 앞의 생> 같은 책에 푹 빠져 살았으니 독설은 문학적으로 진화했지만 마음의 추는 무거워질 뿐이었다.


부사를 '진짜 싫어한다'는 소설가 말런 제임스처럼 차라리 '진짜 싫어한다'라고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불편하면 이내 싫어지고 지속되면 증오하게 된 상대에게 '진짜' 싫다고 말했으면 멈춰주었을까? 친인척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의 새것 같은 폐가 타들어갈 것 같고 이비인후가 모조리 매워 죽겠어. 아이들 코 앞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당신들이 어른이 맞아? 난 당신들이 진짜 싫어" 번호를 붙여 제출했다면 어땠을까? 애가 예민하다. 키우기 힘들겠다 쯧쯧 혀를 차는 것보다 애가 좀 독특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마찬가진가.


<이 집 둘째 딸 금지사항>

1. 우리 집을 제집 드나들 듯 하기

2. 왔으면 조용히 놀다 갈 것이지 우르르 몰려 계곡 가기

3. 꼭 여자들을 시켜 온갖 살림을 챙기게 하고 고기를 굽게 하기

4. 그것도 모자라 밤늦도록 노래방 같은 곳에 데려가기

5. 신나게 놀라고 데려와줬더니 노래는 안 하냐고 심술을 부리기

6. 애가 애답지 못하게 떠들지도 않고 숨죽여 울기만 하냐고 지적하기


어찌나 지독한 혐오인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노래방의 냄새가, 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맞았던 볼의 쓰라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차 싶은 아빠의 눈빛을 그러나 제 때 풀어지지 못한 입술을 기억한다. 아이들에게 어른이란 존재만큼 제멋대로인 동물이 있을까? 어린 시절 나의 경계대상 중에는 인상이 포악해서 인사는커녕 노려보기만 한 이웃이 있었다. 수년간 말이다. 언젠가 양손으로 젓가락을 움켜쥐고 콘센트에 찔러 넣었는지 머리카락이 다 탄 것 같은 아줌마는 사랑받고 싶어서 모질게 행동하는 류의 사람이었다. 수시로 생색을 내고 자신을 신경 써달라고 재촉했는데, 나는 목마른 사람이 주변에서 물을 떠다 맥여주길 바라는 행태를 유독 싫어했다. 그녀의 모진 행동보다 사랑받고 싶으면서 사랑받을 짓을 하지 않는 모순에 넌더리가 났다. 차라리 그냥 못돼 쳐 먹은 게 낫지 사연 있는 게 더 싫다고.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다는 장금이처럼 그저 느껴지는 직감인데, 그런 것을 느꼈고 생각했고 곱씹었고 그래서 미안했고 간절하게 틀리기를 바랐다. 엄마는 모두를 환대하면서도 내게 모났다고 말하는 손님들의 말에 동조하거나 애가 예민해서 그렇다는 둥의 변명을 하지 않았다. 뭐 이유가 있겠지 (당신도 우리 딸도) 같은 여유가 있었다. 모두가 떠난 후 내게 '동네에서 소문난 못된 아줌마'를 귀신같이 알아본다며 웃었다. 엄마가 나의 모남을 알아줄 때 그제야 마음 놓고 웃었다. 그렇다고 내가 인간관계가 어려웠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잘 지냈다. 홍시 레이더 덕분에 눈치 빠르고 일 잘하는 사람이 되어 듣기 싫은 말만큼이나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귀신같이 알고 남발했다. 절대 선을 넘거나 들이지 않으면서 모두와 잘 지냈지만 이면을 알아채는 일은 지독한 저주였다. 상대의 손짓 몸짓 생각을 읽고 혼자 아파한다는 것이, 직감이 진실이 되는 결과가 매번 고통스러웠다. 과도한 공감으로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기에 더 아팠다. 겉모습은 다를 바가 없지만 내 눈에는 안 먹어봐도 상했는데 먹어야 하는 삶 속에서 한 문장을 발견했다.


"원칙은 큰 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엔 연민이면 충분하다"

(Principles should be applied to large issues, compassion is enough for the small ones.)


카뮈의 격언을 잘 접어서 마음속에 집어넣었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사건건 '큰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놈에 불필요한 고성능 레이더 때문에 비대한 원칙을 적용했다. 불의를 참지 못했고 당당하게 참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통제된 삶을 살았다. 쉽게 말해서 마음껏 싫어하기 위해 올곧게 살았다는 뜻이다. 너도 흠이 있지 않냐는 지적을 들으면 진심으로 증오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나의 영역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몰랐다는 얼굴을 한 다수를 미워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서로에게 침범하는 것이 보통의 삶이고 인간의 본성인데 연민을 잘 몰랐던 나는 계속해서 불같이 타고 남은 증오의 재를 쓸어 담으면서 살았다. HSP의 예민한 기질은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당시 인성, 언행, 도덕성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내편일 때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지만 적이 되면 지구 핵까지 내려갈 각오를 해야 하는 그런 사람, 마더 테레사와 히틀러가 공존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은 정말이지 고단했다. 엄마가 늘 똑 부러지다가 진짜 부러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말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20대 중반에는 나의 가시가 그저 와일드한 장식처럼 보이게 해달라고 오늘도 연민으로 충분한 날이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독감주사처럼 '가장 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이라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주입했다. 퇴사나 여행, 외국어 배우기 등등 남들은 늘 하는 일로 시작해 문화원에서 하는 대형 행사에도 참여해 간단한 통역안내를 맡았다. 긴장감과 불편함 속에서 절여져 버리자 저항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부러진 덕분에 더 부러진 누군가를 만나서 부부가 되고 아이도 낳았다. 아니 아이를 낳고. 아니 아이를 갖고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았다. 그러니까 이전에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과 방식으로 가정을 갖게 된 것이다.


내가 아는 남편의 모습은 달의 앞면과도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이 남편의 뒷면을 몰랐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자 남편은 나도 잘 숨기는 훈련이 되지 않았겠냐고 껄껄 웃어 보였다. 결혼 후 마주한 달의 뒷면에는 엄청난 통제와 강박이 숨어있었는데, 누군가에게 생긴 대로 인정받았던 경험이 없는 날 것의 예민함이었다. 어린 시절에 양말의 높이가 다르면 밖에 나가지 못했다는 경험담은 실로 놀라웠다. 사람이 주는 신호에 민감한 나와 다르게 남편은 수직 수평, 일의 순서, 물건을 다루는 태도 같은 것에 무척이나 민감했다. 신발 구겨신은 애랑은 말도 안 했다거나 손톱이 지저분한 애랑은 인사도 안 했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정말이지 웃긴 점은 저런 주제에 사람을 좋아하고 특히나 어른을 공경했다. 언젠가 나의 외가에 인사를 갔던 날 거실로 나가 보니 이모의 핑크 꽃 잠옷을 입은 채 할머니 팔에 통증 완화 테이프를 부쳐주고 있었다. 물론 오차 없이 붙이려는 그의 눈에서 벌건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이고 신서방~ 대충 하게~~(언제 끝나는가...)"


결혼 생활 대부분은 남편이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대고 나는 말 왜 그따위로 하냐고 싸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젓가락 내려놓는 소리에도 울어버리는 나 같은 아이를 낳아버렸다. 전자레인지, 청소기처럼 소리가 큰 가전은 집에서 모조리 치워지고 심지어 편의점 하나 없는 제주도의 중산간에 숨어 살기에 이르렀다. 산으로 숨어들었더니 무당들이 굿을 해대서 울고, 벌레 때문에 울고 다섯 살 다 되어서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예민한 만큼 유쾌한 아이로 키우기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었지만, 아이에게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었다. 아이의 진실한 미소와 목소리 앞에만 서면 나는 세상 큰 죄인이 되기도 처음 들어보는 왈츠처럼 일렁이는 볕뉘가 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히듯 부지런히 계절을 맞이하면 다음 날 마법처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모두가 해야 한다는 말보다 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아이와 자연의 언어는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거대한 태풍이 몰아친 뒤에는 괴물에게 할퀴어진 땅처럼 보였다. 날이 개면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모두가 말없이 돌담을 정비했다. 세상이 꺼질 듯 슬픈 날에도 마당에 귤은 맛있게 익어갔다. 추운 겨울에도 빨간 꽃이 피고 산책길은 주홍빛 오너먼트가 달린 나무들로 빛났다. 파도처럼 굴곡은 계속되는 것이고 미움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수없이 저버릴 수 있지만 끝까지 믿으라는 뜻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미워하고 절망해도 다시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이전에는 몰랐다. 혼자라도 믿음과 사랑을 굳건히 외치면 누구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줄 알았다. 빈틈없이 지키면 상대도 선을 넘지 않고 지켜줄 줄 알았다. 홀로 교차로에 서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하며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누군가 내게 기대려는 꼴도 볼 수 없었다. 실망과 상처와 연민이 없는 삶은 고요하지만 숨 막히는 열수구와 같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에 우리는 제주도를 떠났다. 그렇다고 사랑으로 모든 게 해결되거나 둥글게 모서리가 갈아 없어진 것은 아니다. 불편함이 미움으로 가지 않도록 다른 길을 찾았을 뿐이다. 원칙을 적용하는 법은 감정이 아닌 명확한 태도라는 것을, 연민은 동정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을 덜어주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10년간 서로의 거울이 되어 억겁의 이해를 반복하면서 비로소 몸은 힘들지만 내면의 자유로움을 얻었다.


육교에 서서 나를 달래듯이 섬세하게, 머리카락 한 올 눈썹 한 올 놓치지 않고 아이가 가진 하루의 긴장을 안아 들었다. 오늘 하루의 긴장감은 엄마 다 주고 편히 자라고 속삭였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아빠는 돌 쌓기를 어쩜 그렇게 잘하는 거야?"

"잘 굴러가지 않는 돌, 모서리가 있는 돌만 사용하는 거래"

"모서리 위에 또 모서리로 어떻게 중심을 잡냐고"

"우리 사는 것처럼 그런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