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머금지

서로를 밝히는 빛에 대하여

by 유우


귤을 하도 먹어서 인간 귤이 되어버린 어린이는 엄마에게 업혀 병원을 찾았다. 따뜻한 등짝에 볼을 대고 엄마 냄새를 맡는다. 손을 내려다보니 잘 익은 주홍빛이다. 검사 결과는 이상 무. 어린이는 엄마의 걱정과는 다른 생각을 했다.‘아니 어째서 요렇게 달고 새콤하고 예쁜 녀석이 나무에서 열려? 너무 신기하지 않아?' 엄마는 대체로 싫어하는 아이가 끝없이 좋아하는 귤을 평생 기억한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제목에 '귤'이라는 부제가 붙을 것이다. 귤의 맛과 멋을 칭송하던 어린이는 예리하게 행복을 느낀다. "뭐 또 예민하게 그러냐" 같은 말도 듣지만 "하이고 별 것 아닌 거에 그렇게 좋냐? "라는 말도 듣는다. 이런 이유로 가족 친구들은 나의 날카로움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모양을 인정받는다는 건 천운이다. 믿는 신도 없으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하다 소리칠만하다. 남편은 사위가 되고 한참을 어리둥절했다. 이 집안이 특이하다고 "너무 좋은데 어려워. 안 먹어 본 사랑이니까" 이후에 결혼한 언니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형부가 남편과 똑같은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종의 분석증후군이 있다. 자신과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서. 수많은 정보를 해석하려는 노력과 소화해 내는 에너지와 같이 웃느라 빠진 배꼽 그리고 쏟은 눈물을 생각하면 마음은 좋은데 어려운 것이 맞다. 게다가 진심일수록 무겁다.


인간이라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존재를 MBTI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우리는 5분만 관찰해도 어떤 유형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엄마가 따뜻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가진 ENFJ라는 점에서 얼마나 이타적인지, 가정을 조화롭게 이끌어 나가려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엄마의 이상주의는 참을성이나 미래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할 때가 있다. 큰 사건을 아주 작게 축소하는 능력도 있다. 일례로 엄마의 주치의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6개월 넘게 받아온 발목치료의 원인이 인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원인을 찾은 것 같아요. 뇌종양 때문에 마비가 온 것 같습니다...."

"엄마야. 머리에 왜 그른기 들었스까예~"

장장 12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깬 엄마의 첫 발언은 "밥뭇나"였다. 다정하고 비현실적인 대범함을 가진 큰 그릇. 언니의 MBTI를 검색하면 회초리(!) 든 여성의 이미지가 나오는데 ENTJ 인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추진력, 전략적, 단호함, 공감능력부족, 강압적인 태도 등 설명에 백 퍼센트 부합하는 사람이다. '해야 한다' 또는 '솔직히'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완벽주의와 불안감 때문에 술로 긴장감을 해소한다. 따라서 술 때문에 '강압적인 말실수'를 하게 된다. 겉으론 한국을 짊어진 맞딸처럼 살지만 속은 거짓말을 못하는 순수한 초등학생. 둘째 딸인 나는 INFJ는 '옹호자(Advocate)' 또는 '예언자'로 불리고 16가지 유형 중 가장 희귀한 유형(전 세계 인구의 약 1%)에 속한다. 흰 수염 할아버지 이미지를 앞세우는데 천국과 지옥을 한꺼번에 보는 애늙은이다. 마치 현존하는 식물 중에서 단 하나의 종(1목 1과 1 속 1종)만 존재하는 은행나무처럼 황금빛 가을을 선사하면서도 방귀폭탄급의 열매로 공격하는 인간. 관찰 데이터가 많아서 예언자가 되어버린 인간. 심지어 괴상한 지론이 있다. 맨 정신으로 살자. 술 담배도 아니하고 무섭다고 눈을 감지도 않는다. 무조건 7시간은 자야 되고 세상의 흐름은 싹 거스르겠다 고집이 불통인 여자다. 남동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멍청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INTP 논리적인 사색가다. 이 녀석은 "그럴 수도 있지" 편견 없는 포용력(실제론 딴생각 중)을 가졌으나 무논리 앞에서는 지옥불이 켜지는 인간이다.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오타쿠인데 이를테면 드래곤볼에 안드로이드 18호 헤어스타일이 해보고 싶다는 한 마디에

" 아 그때가 91년이었던가. 349화에 처음 등장했을 때 대박이었지. 무자비한 살상무기 치고는 매력적인 캐릭터야. 크리링이랑 결혼하면서 비중이 커져서 다행이지"

박찬호 계의 안드로이드 17호라고 볼 수 있다. 영업에는 영 소질이 없어 보이는데 보험설계사를 하고 있다. 분석력과 무논리 박살 센서로 자기 고객도 아닌데 몰라서 받지 못하는 돈을 귀신같이 받아준다. 우리는 날 때부터 엄마의 박애주의 속에서 일절 변형되지 않고 기질대로 자라 버렸다. 극과 극의 유형임에도 수시로 모여서 빈틈없이 양질의 드립과 디스를 날리다가 애처로움 없이 헤어진다. 그렇다고 아픔 없이 자랐나 하면 독립영화 정도의 불행이 짙게 드리웠지만 사연 없는 집이 있나.


캐릭터가 선명한 가족들이 따로 또 같이 잘 지내는 이유를 톺아본다. 첫째, 잘못을 5G급으로 빠르게 인정한다. 둘째, 숨기는 것이 없고 뻔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셋째,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잠시 기절시킨 생선처럼 턱 하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해부를 시작한다. 모두 능력을 발휘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찾는다. 흡사 외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던 미드 NCIS(범죄수사물) 수준이다. 꼭 한 명씩 등장하는 괴짜 해커는 남동생이 되겠다. 넷째, '순도 100프로의 진심'으로 상대를 대한다. 다섯째, 외모, 학력, 직업, 성과 같은 사회에서 필요한 영역은 가정에서는 개인적인 영역으로 치부한다. 여섯째 영화의 캐릭터처럼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라서 좋다고 여긴다. 서로를 귀엽게 여기니까 귀여움을 이길 것은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유머가 가풍이면 괜찮다. 웃기고 싶어 죽겠으니 미움은 밥 뜸 들이는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영화 <노팅힐>의 주인공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에게는 스파이크, 허니, 맥스, 벨라, 버니라는 절친이 있는데 영화 전반에 자주 등장하여 뻔한 로맨틱 속에 진짜 '코미디'를 담당한다. '아니, 포그 블루 셔츠를 바지 안에 꼭꼭 넣어 입는 윌리엄에게 저런 친구들이?' 의문을 갖게 한다. 멍청한 듯 철학적인 대사와 숨 쉬듯 만연한 디스가 참 맛있다. 영화 말미에 안나는 서점에 들러 샤갈의 <결혼>을 선물하며 진심을 전한다. 윌리엄은 평범이라는 무기로 거절한다. 같은 그림을 좋아해도 포스터를 걸 수밖에 없는 자신이기에. 안나가 떠난 후 즉시 친구들을 소집하는데 바로 이 장면이 나의 베스트 씬이다. 무려 샤갈의 진품을 바닥에 세워두고 친구들에게 한 명씩 동의를 (갈) 구한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서 yes or no 질의를 이어갈 때 스파이크가 등장해 상욕을 던진다. 찰나의 정적. 일제히 일어나 좁은 차에 여섯 몸뚱이를 욱여넣고 윌리엄을 퀵 배송(!)한다. (뒤는 아시다시피 모두가 아는 명장면 잡지사[말과 사냥개] 소속 윌리엄이 영국에는 언제까지 머무를 거냐 질문하고 안나는 "영원히"라고 대답하면서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가 흘러나온다) 수없이 많은 영화를 사랑하지만 엉뚱하게도 이 신을 떠올리면 손아귀를 벗어난 헬륨 풍선이 된 듯 날아오른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후계동 친구들이 떠오른다. 우리 가족은 윌리엄과 친구들처럼 살아가고 있다. 어딘가 모자라고 가진 것도 없으면서 서로의 안녕을 위해 기꺼이 행동하는 자. 어울리지 않는 베스트 프랜드로.


남편은 이 친구들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뉴페이스 '안나(줄리아 로버츠)' 역할이다. 소박하고 이상한 이 친구들 사이에 앉아 있다 보니 억압된 삶에서 풀려난 기분이 든다. 큰 입으로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시간, 진실된 시간을 보낸다. 껍데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안나처럼 유명배우도 아니고 과거의 누드사진으로 인해 기자에게 좇기는 처지도 아니지만 안나만큼 생에 장벽이 높은 사람이다. 엄한 집안에 장남 장손으로 자라는 건 ENTP에게 가혹했다. 관객들은 안나가 엔팁인 것을 알았다면 결코 이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엔팁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악의가 없어도 대체로 싸우자고 들기 때문에. 관심이 있을수록 재수 없게 굴고, 애정이 클수록 잔소리를 하고, 멍청하면 화를 낸다. 예각이 10도 즘 뾰족한 인간인 주제에 낭만을 사랑하고 가족을 끔찍하게 아낀다. 자기 자신에게도 불친절하기 때문에 자주 칭찬해줘야 한다. 게다가 가끔은 이상한 타이밍에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호소한다. 고압적인 태도를 가졌지만 진실된 인간이다. 가족들은 남편의 짱구모드를 추앙한다. 그는 받은 사랑을 갚으려 온 힘을 다한다. 좋은데 어려운 것을 열심히 해본다.


만약 혼자 살았다면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살았을 것이다. 예상 가능한 날들 속에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변주를 즐겼을 것이다. 소박한 아름다움을 담으면서 스스로의 날카로움이나 과오를 반성하듯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손이 닿는 만큼만 살았다면 지금처럼 용감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열 달을 품었던 아이가 엄지 손가락을 잡았을 때의 촉감, 조카의 얼굴에서 올케와 동생의 어린 시절을 보는 감동이랄지, 언니가 나의 아들을 가장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아이가 떼쓸 때마다 공기 꿀밤을 놓으면서 "내 동생 그만 괴롭혀!"라고 말했던 날의 고마움이랄지, 끝없이 가난해도 내가 가난한 줄 몰랐던 시절이랄지, 내가 찍은 사진이 책으로 나온 날 남편(엔팁)이 컹컹 울었던 순간 같은 건 절대 미지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가 진짜 사랑을 실천했던 세월을 보상해 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펀치드렁크러브>의 베리처럼 살고 있다. (앤더슨 감독이 만든 인물이 그렇듯) 자신이 만든 감옥 안에서 살아가는 남자가 사랑을 머금고 용기로 점철된 인간이 된 것처럼. 닥치라는 말만 반복하는 소통불가 악당을 찾아가 겨우 이런 말로 모종의 합의를 이끌어 낸다. 장면이 지나가면 방금 했던 '겨우 이런 말'이라는 생각을 3000번 정도 취소하게 만든다. 보는 사람도 사랑의 펀치를 맞아버린다.


(베리)

이제 끝났다고 말해!

나한텐 당신이 모르는 힘이 있어.

내가 가진 사랑.


(매트리스 맨)

그 얘기하러 여기까지 온 건가?

좋아. 끝났어.


사랑은 자기혐오를 덜어주는 힘이 있다. 자책만 하지 않아도 살만 한데, 대가 없는 사랑은 진짜 뒷배가 되고 어떤 일이든 우리가 모이면 방법이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이 자신감은 세상에서 가치 있는 옷을 입혀준다. 당당한 태도라는. 베리는 여전히 파란 정장을 입고 마일리지 때문에 지랄을 하지만 어째선지 빛이 나는 것 같다. 생겨먹은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받고 사랑하는 것만이 탈출이자 구원이 된다는 것을, 사랑을 받으면 다시 사랑하는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만인에게 보여준다. 언젠가 아들이 야광 테이프는 어떻게 빛이 나는 거냐고 묻자 남편은 "빛을 머금지" 하고 대답했다.


蓄(쌓을 축)과 光(빛 광)

빛을 흡수한 후 어두운 곳에서 그 빛을 다시 방출하는 성질, 즉 '야광'을 말합니다.


'뭐야. 사랑이네'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