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부양기(5)

부모님 부양하면서 겪었던 일과 생각을 두서없이 나열합니다.

by 유염

짧지만 벌써 5장이나 쓰다니 스스로가 놀랍다.


이번에는 나를 짓누르던 부담감과 불안과 우울에 대해 털어놔 보려고 한다.

20대 중반에 취업하면서 회사의 수습기간에서부터 부모님께 20만 원씩 드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앞으로 상승 없는 고정금액으로 못 박고 시작했는데 솔직히 너무 후회한다.

그냥 내 개인 저축을 더하고 이벤트가 있을 때만 (생신, 어버이날) 현금이나 선물을 드리는 것이 솔직히 더 이득이었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사회 초년생이 있다면 절대로 매달 드리는 것을 일찍 시작하지 말길


매달 20만 원씩 두 명이라 40만 원이고 1년이면 480만 원의 큰돈이다.

이게 고정비가 되어버렸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이점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냥 나에게는 이자도 없는 버리는 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부모님이 집에 쓰신다고 하여도 그냥 이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완전히 별개의 기분이다. 그리고 딱히 집에다 쓰시지도 않았음)


게다가 매달 드리게 되면 처음의 그 고마운 마음은 잊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너무너무 많았다.

이 또한 나도 사람인지라 감사함을 받고 싶은 거였겠지.


언니들은 그전까지 이렇게 준 적이 한 번도 없고 (선례를 따랐어야 했다.)

어쩌다가 10/20만 원을 줄 뿐이었는데 더 고맙게 반응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허망함이 밀려왔고 그런 반응과 서로의 태도가 쌓이면서 나중에는 극단적으로는 내가 없으면/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던 적도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지만 당시에 그랬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니 아버지가 자동차보험료를 나눠 내달라고 요청 하기 시작했다.

나는 면허는 있지만 운전을 못한다. 사용하지도 않는 자동차의 보험료를 매년 30만 원씩 납부하고 있으니 저절로 운전욕구가 솟구쳐서 매년 새해 목표가 운전하기였다. (달성한 적은 없다.)


그리고 나중에는 넷(아버지, 어머니, 작은언니, 나 / 큰언니는 결혼하여 출가)이 살던 집의 보증금이 3000만 원이었는데, 그것을 내가 갖고 그냥 집의 월세를 내가 내기로 하였다. (보증금이 아버지의 찐 마지막 전재산)

아버지 본인이 멀지 않은 해에 갈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고

(그러나 이때의 말과 다르게 지금 너무나 유병장수 중)

네 엄마나 건사해 주라고 했었다.

거기에 아버지에게 드리던 용돈 20만 원을 월세에 포함하기로 해서 이것은 그나마 협의를 잘 봤던 거 같다.

이것이 내가 월세를 담당하기 시작한 이유였다. 이걸로 그나마 매년 연말정산은 두둑하게 받았으나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월세로 나갈 돈이었다.


게다가 중/고등학생 때부터 집안일은 거의 내가 도맡아 했는데, 밖에서 놀다가도 아버지의 밥을 차리러 귀가를 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워킹맘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고 나는 집에서 의무와 책임만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기도 하다.)

집에서는 끝없는 밥-빨래-청소의 굴레 그나마 빨래는 작은언니가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내가 옷에도 관심이 별로 없어서 섬유 분류도 못하고 무조건 일반빨래로 하니 도저히 눈에 안 찼으리라

매달 집으로 나가는 고정비가 있다 보니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직장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시기에는

집에서도 못 쉬고 회사에서도 못 쉬는 상황이니

'나는 도대체 언제/어디서 쉬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끝없이 끝없이 우울감과 무력감만 채워 가던 시기가 있었다.

부모님이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끝이 없었고, 이것을 돌아가실 때까지 들어드리며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렸다.


'어떻게 해서든지 무조건 놀아야 해'라는 보상심리를 또 게임을 통해서 억지로 얻어내려고 새벽 2~3시까지 게임을 하고 수면부족인 나날이 이어지고 만성피로가 되니 하루가 통째로 피곤해서 힘들고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지는 나날이었다.


전부 내려놓고 싶은 시기에 때마침 발생한 코로나가 우울증의 트리거가 되어 이때는 그냥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을 뿐이었다. 눈감으면 내일이 없길 바라며 잠들고 눈뜨면 안 아프게 죽는 방법이 나 약을 검색하거나

안락사당할 수 있는 나라를 검색하는 것이 하루의 루틴이었다.

내가 없는 상황을 부모님이 제발 겪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게 우울증인지 몰랐고, '남들 다 이렇게 사는데 못 참는/못해내는 내가 병신'이란 생각으로 무력감에 잠식되어 갔었다.


생각보다 길어져서 여기서 정리하고 (6)에서 이어가겠다.


과거의 나를 위로하며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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