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부양기(6)

부모님 부양하면서 겪었던 일과 생각을 두서없이 나열합니다.

by 유염

우울한 상태로 계속 지내다가 코로나가 끝나가던 시즌에 작은 언니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갔는데

알고 보니 다들 그렇게(힘든 것을 외면하면서) 안 살고,

그런 생각(사라지고 싶다)을 안 한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다들 이런 게 아니었다니!

그리고 불안장애에 기인한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고 점진적으로 삶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현대의학 최고)


가장 좋았던 점은 일단 그 어떤 일말의 부정적인 생각이 아무것도 들지 않으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와 '~가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는 것

그리고 하루하루 지금 놓인 것을 해내고 났을 때 뿌듯함이 다시 느껴진다는 것

밤에 불안해하면서 눈을 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다니!

나의 케이스에서는 수면루틴이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점점 회사에서 업무효율이 좋아졌고 집안일도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주변에 도와달라는 소리도 잘하게 되었다. 그리고 호의와 칭찬받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무조건 1:1 대응할 수 있는 것으로 직접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도움을 최대한 받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고,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받지도 못하고 주변에 벽을 쳤다.

하지만 상담을 받아보니 잘못된 신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개선해 보기로 하였다.

이것은 타인의 도움을 보답하지 않고 빚으로 느끼지도 않는, 그냥 감사하게 받는 연습이 필요했다.

연습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점점 하루에 느끼는 만족도가 채워지니 보상심리가 사라지면서 게임에 비교적 덜 매달리게 되었고 수면루틴이 완전히 돌아오게 되었다.

지금의 게임은 나의 건강한 취미로써 하루에 조금씩 하고 점점 순수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주변인이 있으면 무조건 전문가와 상담하라고 권유할 만큼 너무 좋아졌고,

다시 이것저것 하고 싶어 지는 일도 많아진 요즘이다.

스스로를 꽤나 잘, 열심히, 기특하게 살아왔다고 인정하는 것을 통해 낮아진 자존감을 채워가고 있다.


가족들도 점점 나의 달라진 행동에 집안 분위기도 전체적으로 좋아졌다. 신기했다.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은 역시 작은언니였고, '달라졌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즈음에 나도 나의 것을 좀 챙기기로 하였다.

다시 나의 초기 관심사였던 '나의 노후'로 돌아와서 나의 변하지 않는 자산이 하나 필요했고, 이때 집을 하나 구매하기로 결정하였다.


사실 처음 시작은 그냥 이사 갈 월세집을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비슷한 조건으로 4인 가족이 모두 거주할 수 있으면서 고양이를 허용하는 월세집은 많지 않았고, 고양이랑 이사 다니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라

'그냥 집을 사버리자'라고 질러버린 것도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 집은 큰언니만 혼자 낳아 기르던 때는 제법 여유 있는 집안이었으나, 내 기억에 있는 '우리 집'은 언제나 빠듯했고 부모님은 돈이 없어서 항상 싸우셨다. 그렇게 '돈 없는 우리 집'에서 살던 나는

월세로 이사를 다니다 보니 그냥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집'이 갖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여기서 예상외로 가장 큰 벽은 '결혼하지 않으면 독립할 수 없다.'는 아버지만의 규칙이었는데,

이래서 큰언니가 집구석에서 도망치듯 결혼했구나 싶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결혼도 안 했는데 독립/자취를 하면 부모님 본인들이 버려질 것 같다는 불안감에 기인한 것 같다. (하지만 진짜로 연락이 없는 건 큰언니였고)

그동안 해온게 있으니 상당히 억울했었다. (솔직히 돈을 매달 꼬박꼬박 갖다 바치면 무얼하나 싶었다.)


여기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

독립은커녕 20대에는 흔한 외박도 어려워서 학교에서 단체로 어딘가 가는 것 외에는 허용이 되질 않았고

대학교에서도 10인 이상 가는 전체 OT, MT만 허용해 주었다.

물론 내가 그런 행사를 별로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이때는 별로 타격이 없었는데,

혼자여행 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던 때에는 아주 힘들었다.


막 입사 후 첫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회사에서 휴가를 받았는데 갑작스럽게 생긴 휴가라 친구들과는 일정 잡기가 어려워서 혼자 내일로 기차 정기권을 끊어서 국내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내일로 7일권을 끊고 여기서 기차는 5일만 타도 이득이겠다는 일념으로 여행계획을 짰는데

아뿔싸 외박이 안된단다.

그래서 5일 동안 KTX로 전국 지도를 출퇴근하였다.

1일 차 : 첫차로 영월 당일치기여행 > 막차로 귀가 후 집에서 취침

2일 차 : 첫차로 제천 당일치기여행 > 막차로 귀가 후 집에서 취침

3일 차 : 첫차로 정동진 당일치기여행 > 막차로 귀가 후 집에서 취침

.....

이 짓을 5일 동안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역시 20대여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게 또 의외로 기억에 오래 남은 개고생이라 혼자만의 좋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각설하고 이런 집안이라

집을 분리하는 것 자체로 엄청나게 자주 다투었는데

부모님의 메인 핑곗거리는 '지금 집 사면 안 오른다'였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오를 집'을 사는 게 아니고 내가 늙어서 고독사할 때까지 '살 집'을 원하는 거였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져도 상관없다 하니 그렇게 말하면 더 말릴 수가 없다 하고 일단락되었다.

아주 웃기게도 지금은 두 분 다 집 잘 샀다고 한다.


다음 주제로는 집 구매기를 이어서 기술하겠다.


나의 흘러간 불안장애를 기리며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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