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부양하면서 겪었던 일과 생각을 두서없이 나열합니다.
이사갈 집 구하기 프로젝트 중간 휴식기에는 직접 보러 다니진 않았지만
네이버 부동산에서 검색하는 것을 취미로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거의 수도권의 모든 빌라의 조건을 모두 구경하고 다녔었던 것 같다.
그러다 당시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마음에 드는 조건의 집이 전세로 나온 것을 발견했다.
우리 가족이 원하는 거의 모든 조건이 들어맞아
바로 100만 원을 보내 가계약 후
실제 전세 계약을 위해 날을 잡았다.
집 컨디션만 조금 포기하면 되었다.
대망의 전세계약날 오전 10시부터 약속을 잡았고,
현재의 집주인과 부동산에서 만났는데 퍽 깐깐해보이는 인상과 행색부터 바로 느껴졌다.
나는 X 됐다
자신이 멀리서 왔고, 법원에서 근무하며 동생은 부동산 중개인이라 소개하며 가벼운 기싸움을 한 집주인은
(이것도 끝나서야 기싸움이었다고 깨달은 거지 당시에는 그냥 자기소개인 줄 알았다.
법원에서 근무하면 뭐 어쩌라는 건지
동생이 부동상중개인이면 거기서 거래하지 여기엔 왜 올린 건지...)
곧장 두툼한 노트북을 꺼내더니
보편적인 부동산 계약이 아닌 계약서의 문항을 한줄한줄 새로 확인해 가며 써내려 갔다.
이 행보는 부동산 사장님도 참으로 당황 스러워하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또 그 정도로(?) 유난스럽게 액션을 취할만한 집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화장실이 두 개이긴 했지만 한쪽은 사용하질 않아서 손잡이도 없고, 초록색의 이끼가 낀 상태였고,
살고 계신 분도 깨끗한 편은 아니었는지
벽지나 장판도 썩 깔끔하진 않았다.
그냥 '새로 입주청소해서 써야겠다'는 정도였다.
이때부터 나의 모든 목표는 '무사히 가계약금 돌려받기'였다.
집의 상태를 조목조목 말씀드리니 또 본인의 온 형제들에게 전화를 돌려가며 집이 이러하단다 전달했다.
그래도 손잡이가 없는 것은 수리해주겠다고 하였다.
(형제가 공동으로 집을 한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양이 키운다 하니 난색을 표하면서 (분명히 중개인이 전화로 얘기했다고 했는데도)
원상복구 운운하면서 특약을 넣고 (이건 그래도 양반이었다.)
나도 전세대출 안될 시 계약금을 돌려받는다는 특약도 넣겠다 하니 또 난색을 표하고..
장장 3시간을 넘게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자니 지켜보던 집주인의 아내분도 이내 자리를 뜨시고
어머니는 일하러 가셔야 해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태워 준다며 같이 가셨다.
집주인이 떠드는 소리만 들리는 부동산에는
난감한 표정의 부동산 사장님, 지친 언니와 나만 남았었다.
서류가 점점 길어지며 나도 지쳐서 가계약금 돌려받으려고 상대방이 먼저 그만 두자를 꺼내게 해야할텐데 하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두뇌 풀가동을 하던 차에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며
전세권 설정 해달라고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거다 싶어서 근저당도 잡혀있으니 그러면 등기에 전세권 설정 넣어달라고 하니
바로 '그건 안 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바로 그럼 가계약금 주시고 그냥 없던 일로 하겠느냐고 물어보았고
그분도 바로 동의해 주었다. (너무나 감사)
4시간여 만에 나는 부동산 의자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무사히 가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서로 보기 좋게 인사하며 마무리하였고, (많이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그분이 가시고 나니 부동산 사장님께서 나에게 사과를 하셨다.
이런 경험은 사장님도 처음이었다고.. 이후 욕을 참 재미나게 하셨다.
계약을 해버렸으면 이 오래된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걸로 얼마나 갑질을 해댈지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부모님도 모두 그런 집을 들어갔을 때가 더 문제라고
오늘은 조상님이 도와준 거라고 하면서 다행이라는 얘기를 해주셨다.
언니는 가계약금 안 돌려주고 100만 원 벌려고 그랬던 거 아닐까 라는 합리적 의심도 하였다.
너무 그럴싸했다. 그 수법에 몇 명이나 당했다면..?
역시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진리를 또 깨닫게 되었다.
이 일은 계기로 또 너무 지쳐서 집 알아보기는 다시 쉬게 되었다.
함께 고생했던 제일부동산 사장님을 응원하며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