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악마 남편과 SRT의 천사 아저씨
뭣이 중헌디
새벽 5시 39분 SRT를 예매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토요일 가장 늦은 오전은 이 시간만 가능할 뿐. 이른 시간 애 둘을 챙겨서 승차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논외로 했다.
출발 전날, 남편은 애인을 만나러 갔다. 집 근처 사는 남자친구지만 나는 '애인'이라고 칭했다. 뭐 그렇게 같이 하고 싶은 게 많은지. 일요일이면 새벽에 만나 스크린을 쳤고, 평소에도 그 친구는 남편을 집에 불러 놀았다. 정확히는 술을 마셨다. 나가서 운동하고 온다던 남편이 따릉이 타고 그 집 가서 술 마시고 왔던 것을 알아챈 에피소드는 뭐 놀랍지도 않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할 사람이, 10시에 스크린 끝나고 온다고 했던 인간이, 밤 12시가 넘어 귀가했다. 그 친구가 나를 주라고 했다는 콩물 한 병을 들고 왔다. 한 컵 따라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들이댔다. 너나 먹으라 했고, 둘째 아이 열나서 친정 안 간다고 했다.
밤 11시에 둘째 아이 몸이 뜨거웠다. 밥은 조금 먹고 힘들다고 내내 칭얼댔다. 씻기자마자 머리도 안 말린 채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아무 증상 없던 아이는 왜 열이 나는지 영문을 몰랐다. 일단 해열제 먹이자 열이 내렸다. 늦은 밤이었지만 친정 단톡방에 상황을 알렸다.
남편은 언제 올지 모르고, 아이는 언제 다시 열이 오를지 모르고. 다 취소하고 싶었다. 취소를 빨리 확정해서 수수료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시간대에는 취소해도 표를 다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기차를 놓치면 이후 시간대는 매진이었다. 그러나 나 혼자 확 취소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애인'이 나 마시라고 샀다는 콩물을 오밤중에 들이대는 정신 나간 남편에게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장모님께 내려간다 했는데 어떻게 취소하냐며 반대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말을 마치자마자 승차권 환불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잠이 깬 남편이 12시 20분 기차가 있다고 했다. 입석+좌석 조합이었다. 애 둘과 입석이라니. 평소 그였다면 선택하지 않을 조합이었다. 발목 통증을 사유로 자동차로는 안 가겠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기차 외에 답이 없었다.
'하아. 여보세요. 따님이 열이 난다고요.'
한밤중은 해열제로 넘겼지만 새벽에 다시 열이 올랐다. 해열제 먹이니 또 괜찮아졌다.
아침 8시, 결국 기차표를 결제했다. 첫째 아이는 동생이 열이 나서 할머니댁 못 간다고 하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해열제가 잘 듣는 둘째의 상태는 엄마의 직감에 괜찮아질 것으로 느껴졌다. 오전에 병원 가서 원인파악하고 못 가면 취소하기로 했다. 남편의 내려가겠다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둘째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졌을 경우가 최악의 수였다. 남편은 내가 귀찮아서 그와 애 핑계로 먼 친정을 안 내려간 불효막심 딸로 생각할 게 뻔했다.
'아니, 내가 못 간다고 친정에 다 말했는데, 왜 네가 가겠다고 난리니. 진짜.'
지겹고 지겹고 또 지겨웠다. 전날 늦게 들어와 늦잠 자고 있는 남편, 굳이 또 친정을 가야겠다는 남편. 둘째 아이 때문에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 나는 아무 의욕이 없었다.
병원도 다녀왔고, 아침도 먹었고, 짐도 쌌고, 계속해서 일정은 진행되었다. 둘이 계속 티격태격했다. 내 속이 안 풀렸다. 부글부글 끓었다. 마지막 집을 나서는 길까지, 아니 차로 길이 막히는 것 같다며 돌아갔다가 되돌어가는 그 꼬락서니까지. 끝까지 내 속을 긁어 뒤집었다.
SRT 5 호칸은 아이동반석이었다. 타는 사람 4명, 작은아이는 어차피 혼자 앉지 않고 내 껌딱지라 기차표는 3장, 2명은 입석으로 1시간을 서서 가야 했다. 첫 번째로 배정된 한자리에 첫째 아이 앉히고 칸과 칸 사이에 있는 짐칸 앞 빈 좌석을 하나를 찾았다. 만 4세 작은 아이에게 앉아있으라고 신신당부하고 언니에게 다녀오겠다 했다. 바로 앞이었는데 자리를 맡지 않고 쫓아왔다. 첫째 아이는 영문을 모른 채 낯선 아저씨 옆에 앉아 있어서 마음이 조급했다. 둘째 아이와 몇 번의 실랑이를 벌인 끝에 큰소리를 냈다. 그때 남편이 왜 전화를 안 받느냐며 갑자기 짜증을 내며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첫째 아이 옆의 아저씨가 본인은 서서 가겠다고 자리를 양보했으니 가서 앉으라고 했다. 더 이상 둘째랑 실랑이할 필요가 없었다. 남편에게 그 자리를 맡으라고 하고 빠르게 가서 둘째 아이를 앉혔다. 그리고 그 머리가 짧고 머리숱이 없는 40대로 보였던 아저씨를 찾아 나섰다. 남편을 서있게 하고 그분께 자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세요. 자리양보해 주신 분이시죠? 감사합니다. 저기 칸 사이에 자리가 있으니 거기에 앉으세요. 저를 따라오세요."
한사코 거절하시는 분에게 거절은 거절했다. 자리를 맡느라 앉아있던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남편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드렸다. 여담이지만 자리 양보는 본인이 받았고 음료수라도 사드려야 한 다는 것도 본인이 말했으면서 왜 전달은 한사코 나를 시켰을까 좀 이해가 안 갔다. 남편의 음료수 전달요청도 끝까지 거절했다.
기차에서 모두 제자리를 찾았을 때 비로소 벅찬 따뜻함이 느껴졌다. 나라면 그렇기 할 수 있었을까. 본인도 1시간가량 서서 가야 하는 선택이었다. 첫째 아이는 키가 큰 초등학생이라 엄마가 옆에 없어도 괜찮았다. 아이 아빠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가 입석임을 알고 본인이 서서 갈 테니 아이 옆에 앉으라고 했다. 나와 둘째 아이가 서서 가는 것을 보고 양보받는 것과 결이 달랐다. 아이패드만 있으면 옆에 누가 있든 상관없을 만큼 큰 아이였다. 그 아이와 아빠가 같이 있으라는 배려는 차원이 달랐다. 감사한 마음이 넘쳐 아침의 불평 많았던 감정의 흐름들이 흩어져 버렸다.
아, 그렇다고 남편에게 할 말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입석 구간이 지나고 좌석을 옮겨 앉을 때 당연하게 한자리 차지하는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내 엉덩이가 갈라져서 두 의자가 갈라진 사이에 앉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여유로운 칸에 아무 자리 나 앉았다. 남편 옆도 비었지만 앉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했다. 남편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 케리어와 아이들을 몰고 엘리베이터로 갔다. 그걸 못 본 남편은 계단으로 올라갔다. 꽉 찬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앞 엄마의 손목에서 서울아산병원 종이팔찌를 발견했다. 안고 있는 아이의 콧속에 산소호흡줄이 있었다. 그 안에서 아이 아빠가 그새 아이가 살이 빠진 것 같다며 아이엄마에게 건넨 말을 들었다. 병원 다녀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려서 내 앞에 걸어가는 그 가정을 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힙시트에 아이를 안고 가는 엄마의 가녀린 어깨에 전용 가방에 넣은 산소호흡기계가 깜박이고 있었다. 아이 아빠의 양손에는 꽉 차고 넘치는 가방과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입원해서 다녀올 만큼 아팠던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 기도가 절로 나왔다. 엄마 품에 축 쳐져있는 아이가 깨끗이 낫고 빨리 회복하기를.
동시에 나의 짜증스러운 마음들이 부끄러웠다. 뭣이 중헌디. 도대체 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이끄는 대로 사는가. 삶의 방향성과 목적의 큰 틀에서 일렁이는 감정들을 잘 다스려 볼 수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