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단언집 10화

시선

눈이 향하는 방향

by 유예리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까마득히 깊은 느낌의 우물에서 솟아난 정신은, 마침내 저 높은 하늘의 별들에게까지 도달하는구나! 우물에 비친 채 반짝이는, 어떤 의미로는 이미 우물 속에 있는 것이기도 한 별들에게! 이러한 정신의 점유란 그 얼마나 위대한가!

_『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보는 것만큼 아는 건 아니다. 말장난 같은 말이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같은 것을 보아도 무엇을 알고,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기억하는 이미지가 달라진다. 결국,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은 주관적인 가중치가 부여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필터에 쓰인 채 습득한다.


이게 꼭 나쁜가? 아니, 편향된 시선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피사체가 풍부해진다. 비로소 객관성을 띤다. 석고상을 둘러싸 크로키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나는 내가 앉은자리에서 보는 석고상의 모습을 그릴 것이다. 내 반대편 사람도, 옆 사람도 그럴 것이다. 누가 보는 석고상이 정답인가? 모두 정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을 모아 모든 면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면을 본다. 모두의 정답이 된다.


그러니 내가 보는 것만을 신임하는 것은 퍽 재미없는 일이다. 다른 세계, 지식, 견해를 모두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없기에, 본다고 해서 모든 면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린 보고자 해야 한다. 타인을 통해 그들의 시선을 통해. 많이 알고자 해야 한다. 많이 이야기하고자 해야 한다.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너도 네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그러니 당신이 보고 있는 방향을 나도 보고 싶다.

나도 내 시선을 기꺼이 보여 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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