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아 내려오거나 후세에 전하다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본능을 직시하고 통제하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유시민,『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모든 종에게 유전자는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성장하라. 짝을 지어라. 자식을 낳아 길러라. 그리고 죽어라. 너의 사멸은 나의 영생이다. 너의 삶에는 다른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 우리는 오직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종들 중 하나의 생존기계에 불가하다. 침팬지도, 나무도 하물며 초파리도 우리와 같은 운명을 지녔다. 그렇게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를 절반씩 지니고 있다. 닮은 수밖에, 비슷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_ 이 문단도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차용하여 작성하였다.
나에 대한 의식이 강해질수록, 유전이 단순히 외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난 엄마, 아빠를 닮았다.
내 취향이라고 고르고 고른 체크무늬 옷은, 소싯적 엄마가 촌스럽다고 놀리던 아빠의 취향을 닮았다.
색을 잘 사용하는 미감은, 보통 미대생 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할머니를 닮았다.
손으로 만지고 만들기 좋아하는 건, 생일마다 옷을 지어 사진을 찍어주던 엄마를 꼭 빼다 닮았다.
난 엄마, 아빠를 물려받았다.
남의 말은 심지어 옳더라도 죽어도 안 듣고, 깨달을 때까지 한껏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성미를 물려받았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것도 오지랖이 넓은 것도 물려받았다.
그래서 내 사람에게 잔소리가 많은 것도 싫지만 물려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부모님의 모습도, 싫어하는 부모님의 모습도 모두 내 안에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나다. 닮은 것을, 물려받은 것을 하나도 그대로 쓰려는 마음이 없다. 내 뜻대로 내 의지로 사용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만의 모습은 유전의 은유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가족을 내 부모님을 살아있는 동안 기억하는 나만의 방식이자 내 권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