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 왔다면 한 번은 꼭 들러야 하는
미술에 대한 관심도, 조예도 전혀 없는 내가 구태여 이 곳은 찾은 건 오로지 빈이 예술의 도시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누구의 작품인지, 어떤 작품인지도 오디오 가이드 없이는 전혀 모르겠지만 빈에 온 이상 한 번쯤은 둘러보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감성은 둘째치고 이성조차도 아직 잠에서 덜 깬 이른 아침부터 난 부랴부랴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Wien)을 찾았다.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은 오스트리아의 빈에 있는 박물관이다. 대대의 오스트리아 황제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한 총합적인 미술관인데, 현재의 건물은 고트프리트 젬퍼의 설계에 의해 1891년에 개관하였다. 고대, 중세의 조각이나 공예품 등에도 명작이 적지 않지만 뭐니 뭐니 해도 중심은 회화로서, 질적 수준에서는 유럽 1·2위를 다투고 있다. 내용은 르네상스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각파에 걸치고 있는데, 더욱이 <바벨 탑(塔)> <농민의 춤> <눈 속의 사냥꾼> 등을 포함한 브뤼헐의 컬렉션은 세계 제일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출처: 구글 위키백과
티켓을 사고 바로 오디오 가이드도 빌렸다. 빈은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 만큼 한국어 가이드도 있다. 과연 가이드님의 설명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보고 있는 게 뭔지는 알아야 하니...
이렇게 모든 세팅을 완료하고 이제 교양 있는 미술 애호가 인척! 자신 있게 0.5층 전시실로 입장한다.
입장 티켓 - 15유로(성인), 11유로(학생, 학생증 지참)
오디오 가이드 - 5유로
※2018년 1월 4일 기준,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0.5층은 크게 예술공간, 이집트 동양 수집, 고대 유물 수집, 특별 전시로 구성되어있다. 주로 공예품이 많다. 금빛의 화려한 공예품들이 전시실 조명을 받으니 아침 햇살만큼이나 눈이 부시다. 뭔지 모르고 그냥 봤을 땐 장식용으로만 생각했는데 친절하신 오디오 가이드 선생님 말씀에 실용적인 기능이 있는 작품들이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티켓에도 나와있는 소금통, '첼리니 솔트 셀라(Cellini Salt Cellar)' 다. 이탈리아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작품으로 이탈리아어로 소금 그릇을 뜻하는 '살리에라(Salier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남자의 오른편 배에는 소금을 담고, 여자의 오른편 신전에는 후추를 담는다고 한다. 소금과 후추, 이 둘은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 양념으로 쓰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에 소금은 바다에서 나고, 후추는 육지에서 난다는 차이점도 있다. 남녀 관계와 비슷하다.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확연하게 다른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작품에서도 남자는 바다를, 여자는 육지를 의미한다. 첼리니가 이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육지와 바다의 결합이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양념통을 옆에 두고 한 공간에 섞여있으니 그의 의도대로 잘 표현이 된 것 같다.
음양의 조화
육지와 바다의 결합. 남자와 여자의 결합. '음양의 조화'가 떠오른다. 고작 소금통 하나에 너무 큰 의미부여를 한 건 아닌지, 너무 확대 해석을 한 건 아닌지 싶지만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별것 아닐 수 있는 양념통에 이토록 깊은 뜻을 담아 아름답게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 밖의 공예품들
블링 블링 했던 0.5층을 지나 이제 1층으로 향한다. 1층은 그림 갤러리. 네덜란드, 플랑드르(벨기에 북방지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회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그림을 모르는 나에게 이 곳은 그저 수많은 액자가 있는 곳일 뿐이다. 벽 사방이 액자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작품이 너무 많아 일일이 오디오 가이드를 들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빈 미술사 박물관의 회화 작품들은 질적 수준에서 유럽 1,2위를 다툴 만큼의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수많은 걸작들이 무지한 나를 만나 그저 스쳐가는 존재가 돼버리고 만다. 지그시 보면 뭐라도 보일까 싶어 한 그림 앞에 머물러 보지만 그냥 잘 그린 그림이다...라는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공예품은 뚫어져라 보면 디테일한 부분들이 보이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림이 이해하기에 더 어려운 것 같다.
회화 전시에 생각보다 흥미를 못 느낀 나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아쉬웠지만, 어찌 됐건 나에게는 그림 지옥이었던 1층 투어는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이제 미련 따위는 버려두고 마지막 층인 2층으로 가려는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본 적이 있는 그림이다. 그것도 제법 자세하게 본 그림이 분명하다.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내 머릿속에 오디오 가이드의 도움 없이 그림 속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 옛날 인간들은 모두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다. 인간들은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널리 이름을 날리고자 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고자 했다. 인간들의 이런 오만함에 분노한 신은 인간들의 언어를 분리하는 저주를 내려 의사소통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서로 불신과 오해가 싹텄다. 더 이상 한마음 한뜻이 아닌 인간들은 결국 바벨탑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작품 상세정보: 바벨탑(Tower of Babel) by 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de Oude), 1563
현재 우리는 각자의 나라에서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바벨탑에 얽힌 성경 구절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라면 원래 우리는 모두 한민족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벨탑을 계기로 인간들은 아주 오랜 세월을 뿔뿔이 흩어져 살아왔다. 그리고 그 사이 엄청난 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다시 점점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언어는 다르지만 소통이 가능해졌다. 성경에서처럼 서로 단합하여 다시 바벨탑을 만들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리 멍청하지 않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은 이 점에 있어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오만방자하지 말 것!
영어 속담이자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 제목인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All is well that ends well) '라는 말처럼 1층 회화 갤러리에서의 끝이 좋았다. 제대로 본건 단 한 작품뿐이지만 1층 회화 전체를 다 본 기분이다. 이제 동전 컬렉션이 전시된 마지막 2층으로 향한다. 동전 컬렉션에는 세계 각 나라의 동전과 화폐가 전시되어 있다. 크게 특별함을 느끼지는 못해 언젠간 저 동전과 화폐들을 하나씩 다 모으겠다는 다짐을 하며 2층 로비로 나왔다.
앞서 1층 회화 갤러리에서의 끝이 좋았기 때문일까? 로비의 천장 벽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본 천장 벽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천장 벽화는 바티칸 시국(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의 천장 벽화지만, 이 곳의 천장 벽화도 그에 못지않다. 천장 가운데 그림을 중심으로 각 외곽의 그림들이 서로 연관된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은 모르지만 마찬가지로 그림 속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빈에 왔다면 이 곳 빈 미술사 박물관을 꼭 한 번쯤은 찾아야 한다. 비록 미술에 잼병이 일지라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보면 뜻밖의 깨달음이나 배움을 얻게 되는 행운이 따를 수도 있다. 빈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나는 여기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