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청춘들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하여
영화 '수성못'에는 크게 세 부류의 청춘들이 나온다.
지긋지긋한 대구를 떠나 In 서울의 대학생활을 위해 악바리처럼 편입 공부와 학비 마련에 애쓰는 희정(이세영).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죽는 것이라고 믿는, 그래서 이제는 습관처럼 죽으려 하는 영목(김현준).
몇 년째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탈락하고 뚝 떨어진 자존감에 의욕 없이 방안에서 책만 보며 지내는 희정의 남동생 희준(남태부).
영화는 배경인 대구 수성못에서 일어나는 한 자살 사건을 신호탄으로 이 세 청춘들의 갈등을 풀어 나간다.
어떻게든 죽어보려는 자
VS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는 자
VS
살지도 죽지도 않으려는, 그냥 아무 의욕이 없는 자
희정's Story
세 청춘의 가운데에는 희정이 있다.
희정은 영목에게 꿈을 갖고 목표를 향해 살아가기를, 비슷한 맥락으로 동생 희준에게는 치열하게, 의욕적으로 살 것을 강조한다. 죽으려는 사람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주고, 의욕이 없는 사람에게 의욕을 불어넣고, 이렇게만 보면 희정은 주변 사람들을 긍정적인 길로 인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희정이 처한 현실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희정은 경제적인 지원이 없는 집안 사정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그 와중에 자신이 일하는 수성못에서 일어난 자살 사건을 계기로 영목과 얽히면서 영목이 부탁을 가장해 시키는 일을 도맡아 하게 된다. 당연히 공부의 능률은 떨어질 수밖에... 영어 단어 하나 외우기 쉽지가 않다.
희정은 설상가상으로 영목을 돕는 일 때문에 수성못 아르바이트에서 소위 말해 잘리게 된다. 이때부터 희정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극도로 예민해진 희정은 그럴수록 동생 희준을 더욱 강하게 다그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기어이 엄마와의 한판 승부까지 벌이고 만다.
어쨌든 희정은 우여곡절 끝에 편입 시험을 무사히 치른다. 그리고 얼마 후, 고대하던 결과 확인의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마우스 왼쪽 버튼을 클릭한 결과! 취준생들이 최소 100번은 넘게 듣는다는 칭찬 아닌 칭찬, 뛰어난 인재임에도 함께 할 수 없다는 불합격 사실을 통보받는다.
영목's Story
세 청춘들 중 가장 바깥쪽, 삶과 죽음의 위태로운 경계에 영목이 있다.
영목은 죽음의 끝에 서서 항시 죽음을 준비하고 계획한다. 이 세상에서 죽음만이 유일하게 자력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치라고 믿는 영목에게 꿈을 향해 살아가는 희정은 신세계였다. 수성못 자살 사건으로 얽힌 인연으로 자신의 일을 돕게 하면서 희정과 시간을 함께 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도 조금씩 변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몇 차례 자살 시도 전과가 있는 영목에게 자살은 이제 습관이었다. 희정의 긍정적인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자살 카페 회원들과 함께 끝내는 자살을 감행하고 만다.
이들의 자살은 성공적으로 진행은 되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는 못한다. 결국 자살 시도에서 그치고 만다.
자살 시도 후, 영목은 자살 예방 센터에서 치료를 받는다. 심리치료사와 인터뷰를 하는 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언제라도 다시 자살할 마음이 있는 사람처럼. 그에게 자살은 이제 삶의 이유이자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희준's Story
희준은 이 세 청춘들 중 가장 애매한 위치에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바깥에, 어떻게 보면 가장 안쪽에 혹은 가운데에. 한마디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할 수 있겠다. 아무런 의욕도 생각도 없기에 가장 안전해 보이지만 반대로 한번 어긋나면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가장 위험하기도 하다.
영화 중반부까지 희준은 안전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다. 희정에게 자존심이 상하고도 모자랄 만큼 무시를 당하면서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그런 희준을 움직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군입대 신체검사다. 사실, 몇 년째 신체검사에서 탈락해 남들 다가는 군대도 못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고, 이런 사실이 그를 더욱더 위축되게 만들었다. 누나인 희정은 동생의 이런 아픔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아픔을 감싸주어야 할 엄마는 오히려 더 한심한 아들 취급을 해버리고 만다. 이에 희준의 자존감은 밑바닥까지 떨어졌고 튀어서는 안 될 방향으로 튀어버리고 만다. 영목이 운영하는 자살 카페에 가입한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때마침 자살을 계획하고 있던 영목의 일행과 함께 자살을 하기로 한다.
앞서 영목의 이야기에서 나왔듯 희준의 자살은 실패한다.(자살에서도 탈락이다.)
자살 시도 후 희준은 이전과 같은 일상을 보낸다. 여전히 의욕 없는 눈빛에 생각 없는 표정으로...
이런 희준을 보고 한 여자 스트릿 도인이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며 희준을 꼬시고, 희준은 기꺼이 그녀의 먹잇감이 되어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다.
영화 속 세 청춘들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가치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대구를 떠나고 싶어 했던 희정은 대구를 떠나지 못했고, 죽고 싶었던 영목은 죽지 못했고, 희준은 군대도 못 가고 죽지도 못했다.
문득, 이 세 청춘들의 모습이 수성못 안의 오리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쉼 없이 페달을 밟아도 결국엔 수성못 안으로만 맴도는 오리배처럼, 세 청춘들도 옳고 그름을 떠나 각자의 가치관과 방식대로 힘든 현실을 타파하고 변화해보려 하지만 끝내는 제자리이기 때문이다.
힘든 현실과 우리 청춘들의 자화상
영화 속 수성못이 힘든 현실을 의미하는 장소라면, 그 안의 오리배들은 힘든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청춘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수성못은 이 세상의 축소판으로서 살기 힘든 이 세상과 그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네들의 자화상이 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청춘으로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심히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것이 영화 '수성못'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실패 후 방황하는 우리 청춘들에게 흔한 위로와 격려보다는 스스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잘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