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정원] 우리를 오염시키는 세 가지

배신, 욕심, 거짓

by 트래볼러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


영화 포스터에도 있는 이 말은 '유리 정원'의 대전제다.


영화는 사람이 나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순수한 한 여자(재연, 문근영)의 다소 이상주의적이면서 엽기적인 연구와 그런 그녀를 이용해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리려는 무명 소설가(지훈, 김태훈), 그녀의 멘토이자 연인이었던 정교수(서태화)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염된 세상과 그 오염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악하고 간사한 면면을 들추어낸다.


순수했던 시절의 생명공학 연구원, 재연




영화 속 주인공들은 크게 세 가지 것들에 의해 오염이 된다. 한 때는 다들 순수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 가지의 유혹에 너무도 쉽게 넘어가고 만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약하다고 욕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 그래야만 하는 환경이 되어버린 병든 이 세상 탓도 있기 때문에.


배신 - 믿음이 깨진 세상
서서히 멀어지고, 결국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식물의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 혈액 연구에 매진하고 있던 재연은 자신의 연구 아이템을 후배 연구원 수희(박지수)에게 빼앗긴다. 믿었던 후배에게 첫 번째 배신을 당한다. 그리고 곧 두 번째 배신이 재연을 찾아온다. 연구소의 지도 교수이자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정교수가 재연을 버리고 수희에게로 간 것이다. 이 두 번의 배신으로 재연은 가슴속 깊이 상처를 받고 노출된 상처는 곧 복수라는 바이러스에 오염이 돼버리고 만다.

순수한 마음으로 생명공학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열정을 쏟았던 재연의 연구는 이제 자신을 버린 한 남자에 대한 슬픈 복수로 전락하고, 그를 이용해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한 맺힌 집착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재연을 복수심으로 가득 찬 집착녀로 변하게 만든 수희와 정교수를 과연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물론, 둘의 행동은 손가락질받을 만한 비도덕적인 짓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 이 같은 비도덕이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닌지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 속 배신은 사랑과 일에서의 배신이다. 사랑과 일은 우리의 삶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있고 누구나 일을 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지금 언제든 배신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문득, 이 세상을 산다는 게 두려워진다.


욕심 - 탐욕스러운 세상
한 때는 순수한 사랑을 했었던 연인


과거 재연의 순수한 모습에 끌렸던 정교수는 프로젝트 성공에 대한 욕심에 오염이 된다. 프로젝트의 성공이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연구실의 생명줄이자 본인의 성공의 동아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정교수는 이 과정에서 재연을 배신하고 또 다른 제자 수희와의 사랑을 시작한다.

순수했던 재연과의 사랑과는 달리 수희와의 사랑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획기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연구 아이템으로 단숨에 성공해보려는 수희, 프로젝트 성공을 꿈꾸는 정교수. 성공에 대한 욕심에 오염된 두 남녀가 서로의 욕심만을 채워주고, 서로의 육체만을 탐하는 사랑이었기에.


이 역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돈, 권력, 명예가 (아직도) 판치고 다니는 세상. 물질만능주의라는 깊은 수렁에 빠진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어쩌면 정교수와 수희의 성공에 대한 욕심 자체가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아니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을 꿈꾸니까. 다만 그 방법이 잘못됐다. 욕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욕망이 되었고, 욕망은 그들의 사리분별력 마저 마비시켰다.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다. 바로 우리가 현재 그런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욕심이 욕망으로 변질되지 않게끔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체득할 필요가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중고등교육과정에 새로운 과목 하나 추가하면 어떨까 싶다. 과목명은 '무소유'.


거짓 - 날조된 세상
그가 쓴 것은 자신이 창작한 이야기가 아닌, 재연의 인생이었다


슬럼프가 한창이었던 지훈은 우연히 과거 재연이 살았던 집으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너덜너덜한 벽지 뒤로 재연이 그려놓은 새로운 세계관과 마주친다. 이에 영감을 얻은 지훈은 온라인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워지자 곧 대작을 만들고 스타작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에 거짓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고 만다.

결국 지훈은 작품에 눈이 멀어 재연의 삶을 송두리째 카피한다. 거짓 소설을 쓰게 된 것에 대해 뒤늦게 후회하고 순수한 이성을 다시 찾으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친구이자 출판사 사장, 현(임정운)의 압력에 못 이겨 끝내는 거짓 소설을 완성시킨다.


이제는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헷갈릴 정도로 거짓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 거짓은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때문에 심지어는 뉴스와 신문조차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돼버리고 말았다.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생각과 내 믿음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거짓에 빠진 지훈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단순히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한참 잘 나가던 소설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려 했던 것은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에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게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지 않을까?




어쩌면 유리정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맑고 투명한 유리정원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나무들이 우리 인간들이고 유리정원은 우리들이 사는 세상인 것이다. 즉, 우리는 태어날 때 그 어떤 것 보다도 순수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정원에 살기에 한 번 깨지고 나면 쉽게 오염되어 버리는 것이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엽록체를 이용한 재연의 연구가 틀리지 않았음이 입증된다. 답은 정말 나무에 있었다. 나무의 순수함, 이것이 죽었던 생명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오염된 모든 우리들에게도 나무의 순수함을 주입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겠다. 물론 우리를 오염시키는 것들이 배신, 욕심, 거짓, 단 이 세 가지뿐이겠냐마는 영화 초반의 재연이 그랬듯 순수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이 세상이 정말 맑고 투명한, 그리고 잘 깨지지 않는 유리정원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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