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예술 천재
그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2008년 여름 즈음이었다.
어느 누구보다 튀는 외모, 튀는 성격. 모든 면에 있어서 눈에 안 띄려야 안 띌 수 없었던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집어삼킬 듯 압도했다.
새하얗게 핏기 없는 얼굴, 넓은 이마와 바람맞은 듯 헝클어진 머리, 무엇보다 찢어진 입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바로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 조커다.
그랬다. 그는 나에게 그냥 조커였다. 주인공인 배트맨보다도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나의 관심은 조커라는 데서 그치고 말았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아니 정확히 말해 그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건 6개월이 지난 2009년 겨울이었다. 한 연예 뉴스에서 그의 소식이 전해져 왔다. 조커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조커의 민낯은 어떨지 얼굴이나 한 번 볼까라는 마음에 채널을 고정했다. 하지만, 조커는 나오지 않았다. 조커는 이제 오로지 스크린 안에서만, 화면에서만 존재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물론 그 소식을 전하는 리포터까지도 애초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6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뒤늦게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에 부랴부랴 조커에 대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걸 알게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애초에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도 이미 조커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는 조커의 유작으로 고인이 된 지 6개월 후 개봉이 되었고, 또 6개월 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과 두 번의 충격을 안겨다준 영화 속 조커, 그가 히스 레저(Heath Andrew Ledger)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신들린 조커 연기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게 된 히스 레저.
이게 내가 아는 히스 레저의 전부였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비교적 뒤늦게 빛을 보고 주목받게 된 연기파 배우였다.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빙산의 일각도 안 되는 얼음 한 덩이에 불과했다는 걸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 앰 히스 레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가족들이 말하는 그는, 동료들이 말하는 그는 단순히 연기파 영화배우가 아니었다. 영화를 통해 난 그들이 말하는, 그들이 기억하는 히스 레저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순도 100%의 실화였기에 나 역시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그냥 단순한 연기파 배우가 아니었다는 것에 극 공감하게 되었다.
여배우 지망생이었던 누나 덕분에 어릴 적부터 연기에 흥미를 갖게 된 히스 레저는 17살이 되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연기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다.
"가족, 친구들, 퍼스(그가 태어나고 사는 곳)도 다 좋지만 바깥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어요."
그렇게 히스 레저는 아직은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다.
친구와 함께 시드니에 자리를 잡은 히스 레저는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보며 연기자의 길로 진입하기 위해 박차를 가한다. 그 결과 크고 작은 호주 TV와 영화에 출연을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미국 드라마에도 출연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그의 전환점이 시작된다. 드라마에서 만난 리사 제인과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고 그녀 덕분에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의 오디션을 보게 된다. 여기서 당당히 주인공인 패트릭 역을 따낸 히스 레저는 영화의 성공과 함께 마침내 할리우드로 입성한다.
이후 히스 레저는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다. 그는 연기 경력이 쌓여갈수록 새로운 역을 원했다. 이 시대의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하는 그런 역보다는 지금까지는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었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 했다. 이는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히스 레저는 진정 도전을 즐길 줄 아는 남자였던 것이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을 맡게 되었을 때도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집에 틀어 박힌 채 캐릭터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조커의 걸음걸이서부터 웃음, 표정 하나까지 디테일한 부분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잭 니콜슨의 조커를 뛰어넘는 히스 레저만의 조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히스 레저는 평소 사진에도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카메라와 함께 했고 그런 그가 촬영한 사진, 영상들이 영화 중간중간을 풍성하게 채운다.
특히 뮤지션이자 친구인 벤 하퍼의 'Morning Yearning'과 N. 포스터 존스의 'Cuase An Effect'의 뮤직비디오와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에서 연출자로서의 히스 레저를 엿볼 수 있다. 배우 일 때만큼이나 꼼꼼하고 프로페셔널하다. 연출자로서의 열정이 느껴졌다. 그렇게 탄생한 두 친구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역시 흔한 뮤직 비디오와는 다른 독특한 개성이 있다.
연기하랴, 연출하랴.
히스 레저는 온종일 연기와 연출로 가득 찬 삶을 보냈다. 이와 관련해서 무언가 새롭고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른 새벽부터 전화는 물론이고 집 앞으로 찾아가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한다. 이처럼 히스 레저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것이 아마도 그가 연기, 사진, 그림, 음악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 흥미와 재능을 가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예술가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히스 레저는 자신의 집에 친구와 지인들을 초대해 함께 놀고 혹은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 친구들의 분야는 뮤지션, 같은 영화배우, 영화감독 등 다양했다. 그의 집은 거의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한데 모이는 만남의 장소이자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잠시 쉬어가는 게스트 하우스도 같은 곳이었다. 심지어 그가 촬영으로 집을 비운 날에도 친구들은 서슴없이 그의 집에서 지냈다고 할 정도이니...
나는 [아이 앰 히스 레저]를 보기 전까지, 영화배우 히스 레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 앰 히스 레저]를 본 후인 지금, 아티스트 히스 레저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영화배우보다 아티스트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연기를 사랑하는 천상 영화배우가 아닌, 예술 그 자체를 사랑하는 천상 예술가.
예술에 대한 생각과 열정으로 가득 찬 나머지 이를 발산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짧은 시간에 쏟아 버렸다. 어쩌면 이게 그를 힘들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에너지를 조절해서 썼더라면, 아카데미 조연상이 아닌 주연상을 받는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연출자로서 감독상을 받는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그에게 왜 그렇게 에너지를 많이 썼냐며 원망할 수 없다. 그가 짧은 시간 동안 우리들에게 보여준 모든 것들은 그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들이기에...
어쩌면 이승에서의 할리우드라는 무대조차 그의 열정을 발산하기에는 너무 좁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열정과 능력을 보다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더 넓은 세계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좁은 무대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우리들에게 희로애락과 감동을 가져다준 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작품들을 되새겨보며 그를 기억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하늘이 내려다 준 천재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하나씩 꺼내 보아야겠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