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캔스피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니 말해야한다

세상을 향한 외침

by 트래볼러

영화는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와 20년간 온 동네 시장통을 누비며 민원수 만 무려 8000건에 달하는 구청의 블랙리스트, 구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도깨비 할매' 로 통하는 오지랖계의 황후마마 '나옥분(나문희)' 할머니와의 좌충우돌 스토리로 전개된다.


융통성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 (사진출처: 다음 영화)


절차를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민원을 제기하는 옥분은 구청 공무원들의 기피대상 1호!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전근 온 민재는 이런 사실을 알턱이 없다. 덕분에 민재는 옥분의 민원을 거의 전담 마크하다시피 하게 된다.

막무가내 할머니와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 이 둘의 상극 조합이 만들어내는 우리네들의 일상 속에 실제로 있을 법한 크고 작은 소란들이 공감과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우리나라 공무 실태를 끼어 넣어 웃음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도깨비 할매! 그녀의 등장만으로도 구청은 초긴장 상태! (사진출처: 다음 영화)


단순히 이런 갈등에서 비롯되는 스토리만 이어진다면 아이캔 스피크는 적당히 웃고 즐길 수 있는 휴먼 코미디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옥분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려고 하면서부터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이제 구청과 민원을 제기하는 옥분의 갈등에서 민재에게 영어를 배우려는 옥분과 옥분을 가르칠 수 없다는 민재 사이의 갈등으로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인식하고 있는 노인에 대한 편견 혹은 무시하는 태도를 살짝 꼬집기도 한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회화 학원을 다녔지만 강사에게 무시당하기 일쑤고, 결국 학원 측으로부터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된다. 민재도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지 않으려 일부러 백과사전(encyclopedia)과 같은 어려운 영어 단어들로 시험을 보게 한다.)


어려운 영어단어로 옥분의 공부 의지를 꺾으려는 민재 (사진출처: 다음 영화)


옥분의 끈질긴 러브콜과 노력으로 옥분이 가지고 있는 영어에 대한 진심과 열정을 알게 된 민재는 결국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한다. 이때부터 둘은 더 이상 대립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슴속 각자의 사연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해가고 있는 민재와 옥분 (사진출처: 다음 영화)


민재는 옥분이 어릴 적 헤어져 미국으로 간 남동생 정남과의 연락을 하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옥분이 가지고 있던 정남의 연락처를 보게 된다. 이 남매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민재는 정남에게 연락하지만 정남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옥분을 만나기를 완강히 거부하며 다시는 연락하지 말 것을, 그냥 없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취급해 달라며 전화를 끈는다. 이에 민재는 옥분이 가엾고 안타까운 한편, 이런 사실도 모르고 동생을 만나는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영어 과외를 그만두고 옥분을 멀리하게 된다. 다시 둘 사이에 갈등의 불씨가 점화된다.


옥분과 민재의 갈등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영화는 둘의 갈등이 아닌 옥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옥분의 과거에 대한 결정적인 열쇠를 가진 정심과 금주가 등장한다. 옥분, 정심, 금주. 이 세 사람이 이끌어가는 스토리를 통해서 지금까지 베일에 쌓여 있던 옥분의 과거에 관한 진실이 드러나고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뉴스와 신문을 통해 옥분의 과거를 알게된 시장 사람들 (사진출처: 다음 영화)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옥분에 관한 진실, 그 진실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HR121: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다.

< HR121 -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
미국 하원이 2007년,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등을 요구하며 통과시킨 결의안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옥분과 정심은 어릴 적 위안부 시절 함께 겪은 친구였다. 영화는 그때 그 시절 두 소녀의 고통과 그 안에서 어떻게 우정이 싹트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리고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옥분은 친구 정심이 하려고 했던 위안부 관련 증언을 하기로 결심한다. 옥분, 정심, 금주 이 세 사람의 관계를 비롯해서 남동생 정남이 왜 옥분과의 연락을 거부했는지, 그리고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진짜 이유 등, 영화를 보는 내내 생겼던 크고 작은 물음표들이 한 번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로서 영화는 휴먼 코미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휴먼 감동 스토리로 전환된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뼈아픈 과거를 재조명하면서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험한 과거가 드러난 후 한동안 옥분은 20년간 함께 지켜온 시장은 물론 온 동네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여기서 편견이라는 악마가 만연하게 퍼져있는 대한민국을 볼 수 있다. 위안부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제의 이웃에서 이제는 말은커녕 눈조차 마주치기 싫은 이웃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누군가의 이웃이기도 한 우리네들의 모습, 나 자신의 모습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나옥분 할머니는 20년간 8000건의 민원을 신고한다. 이를 위안부 문제로 엮인 우리나라와 일본의 외교에 이입해 본다면, 8000건의 민원을 제기하는 옥분은 8000번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나라를, 민원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는 공무원들은 단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을 대변한다 할 수 있겠다.

결국 영화는 우리나라의 공무 실태를 웃음이라는 소재로 풍자함으로써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HR121이 통과된 이래 국제적으로 일본의 잘못이 인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난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서 위안부라는 단어만 나오면 벙어리가 되는 일본에게 한마디 툭! 던지고 싶어 졌다.


유 캔 스피크 투. 아니, 유 햅투 스피크!

(You can speak, too. No, you have to s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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