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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Nov 22. 2017

11월의 오스트리아, 가을의 쇤부른

여전히 아름다웠던 가을의 여름궁전

쇤 부른(Schön brunn) : 아름다운 샘물


'아름다운 샘물'이라는 뜻의 쇤부른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에 있는 합스부르크(Haus Habsburg-유럽 왕실 가문들 중 가장 영향력 있던 가문 중 하나) 가문의 여름궁전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맞은 햇살 좋은 11월의 어느 가을 아침, 난 쇤부른 궁전(Schloss Schönbrunn)으로 향했다.

여름 궁전인 만큼 여름에 가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지만 가을에는 가을 나름대로의 맛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섞인 기대와 함께 쇤부른 역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쇤부른 역에서 걷기를 10분, 드디어 쇤부른 궁전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정문을 지키는 두 마리의 황금 독수리가 나를 환영해준다. 정문을 통과해 쇤부른 궁전과 마주하자 가을 아침 공기처럼 상쾌한 전경이 내 몸속 깊은 곳까지 상쾌하게 정화시킨다.


쇤부른 궁전 정문의 황금독수리
시원하게 탁 트인 쇤부른 궁전


감동은 직접 보아야 느낄 수 있는 것


쇤부른 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에 비견되는 궁전을 가지고 싶다는 야심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을 직접 보지 못해 사진으로만 비교해 본 결과, 전체적인 구조와 건축 양식(바로크 양식)이 확실히 많이 닮아 있었다. 어디가 더 아름답냐는 질문에는, 지금은 쇤부른에 한 표를 던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사진보다는 실물에서 전해지는 감동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 다 아름답지만 지금 내 마음을 두드리는 건 단연 쇤부른 궁전이다.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쇤부른을 찾았다


쇤부른 궁전의 색은 옅은 노란색이나 상아색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좋아한 색깔로 마리아 테레지아 엘로우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건축 당시 잇따른 전쟁 후 국고가 휘청이는 상황에서 비용을 절감하고자 진흙에서 추출한 도료로 칠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선명한 샛 노란색이 아닌 은은한 노란색이어서 인지 여름궁전이지만 가을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쇤부른 정원으로 가는 길은 어느 것보다도 가을가을 했다


가을 정원에는 오래 보아야 예쁜
편안한 아름다움이 있다


쇤부른은 궁전뿐만 아니라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궁전 뒤로 펼쳐져 있을 꽃들의 향연을 상상하며 쇤부른 정원으로 향했다.

단풍과 낙엽으로 한껏 치장한 오스트리아의 가을을 만끽하며 쇤부른 정원에 도착한 순간, 상상 속 꽃들의 향연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때는 바야흐로 11월. 가을이 한창이었다. 오는 내내 가을 속에 빠졌있었음에도 꽃이 있을거란 생각에는 전혀 의심이 없었다.


알록달록 할 줄만 알았던 정원은 아주 푸르렀다. 돌아올 봄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끄떡없이 견딜 잔디만이 남아있고 꽃들은 어디 따듯한 곳으로 이민을 보냈나 보다.

꽃이 없는 정원이 뭐 볼 게 있겠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꽃이 없는 정원, 가을 정원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정원 양 옆으로 늘어선 울긋불긋 가로수들이 가을 분위기를 은은하게 퍼트린다. 선명한 꽃처럼 단번에 시선을 사로 잡지는 못하지만 질리지 않고 편안하게 오래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인 것 같다. '자꾸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라는 말처럼 가을 정원의 매력을 이보다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푸른 잔디위 비어 있는 꽃들의 자리가 마치 외계인이 그려놓은 미스테리 싸인 같다
은은하게 가을 향기를 퍼뜨리고 있는 가로수들
정원 한가운데서  바라본 쇤부른 궁전


정원 중앙으로 쭉 걸어가면 포세이돈 분수가 나온다. 그리고 그 위 언덕으로 신전처럼 생긴 건물이 하나 보인다. '작은 영광'이라는 의미를 지닌 글로리에테(Schloss Schönbrunn Gloriette). 마리아 테레지아의 합스부르크 왕가 찬미를 위하여 건축된 것으로 전망대와 중앙에 있는 카페에서 바라보는 쇤부른의 모습이 한 폭의 명화 같다는 소문이 자자해 그 소문의 진상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글로리에테로 가는 언덕 아래의 포세이돈 분수, 가을에는 바다의 신도 휴무인 모양이다


이름만 작은 영광


포세이돈 분수를 지나 지그재그 언덕을 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글로리에테 앞에 섰다. 갑자기 배신감이 밀려온다. 분명 작은 영광이라고 했거늘, 쇤부른 궁전만큼 크고 넓지는 않지만 작은 영광이라 불리기에는 아까우리만큼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감히 말하건대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쇤부른 궁전보다 한 수 위다.

아치형의 둥근기둥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법한 신전스러움을 뽐낸다. 중앙에 2개, 양쪽 옆에 2개, 그리고 건물 앞에 4개. 이렇게 총 8개의 대형 트로피가 있다. 우승의 상징인 트로피. 그랬다! 글로리에테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것이기도 했다. 뭐 이 정도면 작은 영광이 아닌 '큰 영광'이라 해도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엄과 승리의 영광이 느껴지는 글로리에테


글로리에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중앙 상단부의 독수리상과 황금색 왕관이라 할 수 있다. 독수리라는 날카롭고 강한 이미지에 황금이라는 부의 상징이 더해져 그 옛날 합스부르크 왕가가 얼마나 강하고 번성했었는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바로 아래 쓰인 황금색 문구에서는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IOSEPHO II. AUGUSTO
ET
MARIA THERESIA AUGUSTA
IMPERANTIB.
ERECT. 1775

(요셉 2세 아우구스토와 마리아 테레지아가 1775년에 세우다)


이제 글로리에테 카페 안으로 들어가 본다.

여전히 이른 아침임에도 몇몇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브런치를 즐기고 있다. 다행히 창가 쪽 자리가 아직 하나 남아있다. 마지막 남은 창가 자리를 날름 차지하고 맥주를 주문했다.

평소 맥주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타입인데 이상하게 정신이 몽롱하다. 맥주에 취했을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가을 햇살과 창 너머로 펼쳐진 쇤부른의 풍경에 취한 듯싶다. 쇤부른 궁전 뒤로 빈 시내까지 품은 모습은 그야말로 명품, 명작, 명화가 따로 없다. 소문은 진실이었다.


글로리에테에서 바라본 쇤부른의 모습,  빈 시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정오가 다가오면서 몸이 점점 나른해진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저 지금처럼 아름다운 것만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머물러 있고 싶다.


맥주 한 모금에 풍경 한 번.

난 지금, 가을의 쇤부른에 흠뻑 취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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