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니도(El Nido)로 가는 길-1

팔라완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by 트래볼러

필리핀 서쪽 끝에 위치한 팔라완(Palawan)의 주도 푸에르토 프린세사(City of Puerto Princesa)에 도착했다. 비행기 밖으로 나오자 얼굴을 감싸는 습한 공기가 잠에 취한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원정대의 최종 목적지는 팔라완 섬의 엘 니도(El Nido).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약 5시간, 짧지 않을 여정의 발이 되어줄 버스에 오른다.


엘 니도(El Nido)는 팔라완 북부지역에 위치한 섬으로 스페인어로 보금자리, 둥지를 뜻한다. 다우림, 석회암, 백사장 산호층 등 다양한 생태계가 어우러져 경이로운 자연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닐라(Manila)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도착!
공항 앞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푸에르토 프린세사 국제공항(Puerto Princesa International Airport)
시내에 접어들자 차창 밖으로 팔라완의 이국적인 풍경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이동하는 여정에는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할 터. 우리는 아침식사를 위해 관광객들은 물론 현지 로컬들도 즐겨 찾는다는 '카 이나토(Ka Inato)’에 왔다. 기본적으로 바비큐 전문점이지만 아침에는 뷔페를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새하얀 삶은 계랸 옆에는 크레파스로 색칠해놓은 듯한 보라색 계란이 이색적이다. 일명 짠 계란, 솔티드 에그(Salted EGG)란다. 이 외에도 채소와 쌀국수를 함께 볶은 판씻(Pancit), 말린 생선 뚜요(Toyo)가 있다. 모두 필리핀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먹는 전통적인 메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지 사람들도 제법 보인다. 조금 이른 시간 방문한 우리의 식사가 끝나갈 무렵, 팔라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고 조용했던 식당 안은 어느새 활기찬 기운으로 가득해졌다.


카 이나토 입구
부지런히 아침식사를 하고 있은 팔라완 사람들
뷔폐로 즐길 수 있는 아침
조촐했던 나의 아침식사와 보라색 계란
어느 덧 많아진 사람들

카 이나토에서 즐길 수 있는 건 필리핀 로컬푸드만이 아니다. 입구에서부터 식당 안 구석구석까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조각상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승을 떠오른 게 만드는 비주얼이다. 서로 닮은 외모가 모두 한 가족 같기도 하다. '부롤(Bulol)' 이라는 이름의 조각상들은 그 길이와 생김새에 따라 의미가 다른데 이 곳에 있는 불룰들은 추수를 감사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조각상마다 손에 농기구나 항아리를 들고 있다. 혼자 들기에는 조금 버거워 보이는 항아리지만 그 안에 가득 차 있을 곡식들 때문인지 대부분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 그 모습이 지금 여기서 즐겁게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팔리완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불룰은 필리핀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피조물 인지도 모르겠다.


입구에서 우리를 환영해준 불룰 가족
우리는 불룰 난타 공연단?




아침부터 든든하게 배를 채운 덕분인지 서서히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버스에 맞춰 내 몸도 휘청거리고 눈꺼풀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하늘도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날씨가 몇 번이나 변덕을 부렸다. 갑작스레 비를 만난 팔라완 사람들은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이 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그들이 표정에서 여유가 묻어난다. 이 여유가 단연 사람들에게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넓은 초원에서 홀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에게서도 느껴졌다. 팔라완에서 소는 내가 알던 부지런함의 상징이 아닌 한가로움의 상징이었다.

다시 비가 그치고 도로 한편에 소를 타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곳의 아이들은 특별한 놀이거리가 없이도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다. 잠시 차가 멈추거나 천천히 갈 때, 창문으로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 신기한지 뚫어져라 쳐다본다. 눈만 마주쳐도 좋아하고, 인사를 해주면 더 좋아한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나도 웃게 만든다.


또다시,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빗발도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제법 거세다. 어두컴컴한 하늘에 비바람, 좁다란 산길이 제법 으스스한 분위기를 잡는다. 에어컨으로 시원했던 차 안의 공기가 이제는 오싹하다. 꼭 뭐라도 튀어나올 것 만 같은 음산함이 감도는 가운데 갑자기, 버스가 정차한다. 그리고는 건장한 체구의 필리핀 남자가 차에 타더니 차 안을 살핀다. 한번 슥~ 둘러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는 자리마다 뭔가를 툭툭! 던지고 다시 내린다. 버스는 그제야 다시 출발했다.

남자가 시크하게 던지고 간 것은 망고 펄프 바구미(Mango Pulp Weevil)에 대한 카탈로그였다. 망고 펄프 바구미들이 다른 과수원이나 농장에 퍼져 피해를 입힐 수 있어 엘니도에는 망고 반입이 금지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방금 멈췄던 곳은 망고 검문소였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확인을 하는 것을 보니 천혜(*하늘이 베푼 은혜)의 자연이라고 불리는 팔라완이 결코 하늘의 은혜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 은혜를 입었다 해도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어쩌면 망고 펄프 바구미가 득실거리는 자연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STOP!!! 망고 출입 금지!!!




따지고 보면 자연이라는 것 자체는 모두 하늘에서 준 것인데, 그렇다 치면 천혜의 자연이 아닌 자연은 없다. 하지만 어떤 곳은 최후의 비경으로 불리고 어떤 곳은 그렇지 않다. 그 차이는 아마도 사람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자연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아끼고 있느냐에서 오는 것 같다. 불룰을 통해 추수에 감사하고, 자연에 해가 되는 것은 애초에 차단시키는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 팔라완 사람들이 있기에 팔라완이 필리핀 최후의 비경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팔라완에 머문 지 이제 겨우 2시간 남짓.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서, 자연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팔라완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본 원정대 여행은 여행 매거진 트래비(Travie)와 함께 필리핀관광청의 초청을 받아 다녀왔습니다.

보다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팔라완 여행기는 트래비 4월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와 구독은 언제나 그뤠잇!!!

트래비 4월호 많이 기대해주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 오는 밤의 마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