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니도(El Nido)로 가는 길-2

타이타이(Taytay)에서 쉬어가기

by 트래볼러
엘 니도로 가는 길, 화장실도 갈겸 휴식차 들렀던 레스토랑 엘프레도스(Elfredo's)


인천에서 필리핀 마닐라(Manila)까지 약 4시간 반.

마닐라에서의 휴식 같지 않은 휴식 2시간.

마닐라에서 팔라완(Palawan) 푸에르토 프린세사(City of Puerto Princesa)까지 1시간.

그리고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에서 엘 니도(El Nido)를 향해 출발한 지 2시간째.

도합 9시간 반이라는 강행군에 지친 청춘들을 실은 미니 버스는 팔라완의 대자연을 품은 거친 외길을 따라 여전히 힘차게 달리고 있다. 비가 올 건지 말 건지, 심통 부리던 날씨는 이제 제법 안정을 찾은 듯하다. 날씨는 안정을 찾았는데 이제는 잠이 올 건지 말 건지, 내 뇌가 심통을 부린다. 눈은 꿈뻑꿈뻑, 고개는 휘청휘청 거리는 사이 심통난 뇌를 달래주는 소리에 잠이 깬다. 우리는 어느새 활기찬 축제의 현장 속에 들어와 있다.

여기는, 팔라완 타이타이(Taytay)의 어느 작은 마을이다.


팔라완 타이타이(Taytay)에서 마주친 축제의 현장, 내 귀에 맴도는 팔라완(Palawan)~♬♪♩
오늘은 여기가 팔라완 아이들의 핫플레이스
아이들 핸드폰으로 한장, 내 핸드폰으로 한장. 우리는 서로 추억 한장씩을 나눠가졌다. 아이들의 천친난만함과 순수함은 덤
미국 캘리포니아에 헐리우드 싸인을 연상시키는 필리핀 팔라완의 타이타이 싸인

타이타이(Taytay)는 푸에르토 프린세사로부터 북동쪽에 위치한 과거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였던 시절 팔라완의 수도였던 곳이다.

타이타이라는 지명은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대나무로 만든 다리의 타갈로그어 지역 방언, 탈라이타이엔(Talaytayan)의 발음을 어려워하여 줄여서 타이타이라 불렀고 이것이 그대로 이 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타이타이에서의 한끼는 꼭 이곳에서...


'까사로사(CasaRosa)'

타이타이에 있는 레스토랑이자 숙소다. 이름부터가 스페인이다.(스페인어로 Casa: 집, 가옥 / Rosa: 장미꽃) 그렇다면 점심 메뉴는 스페인 요리?(^o^) 일 줄 알았지만 이름만 그럴 뿐, 필리핀 로컬 푸드에서부터 파스타와 피자까지 맛볼 수 있는 퓨전 레스토랑이다. 해산물, 고기, 야채 등 종류도 다양했다. 여기까지 와서 피자와 파스타를 먹을 순 없는 법. 우리는 필리핀 로컬 푸드를 위주로 주문했다. 물론, 산미구엘도.


음식을 기다리며 신혼집 집들이 온 사람처럼 까사로사 구경에 나선다. 일단 뷰는 100점. 언덕에 위치한 덕분에 타이타이의 앞바다가 눈에 훤히 들어온다. 그 앞에는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을 것만 같은 성채가 하나 있다. 대단하리만큼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작은 섬마을 같은 분위기의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음식 맛에 비유해보자면 자극적이지 않아도 계속 먹게 되는 그런 맛이다. 계속 바라보게 된다.

이 곳에서 역시 불룰(Bulul: 추수를 감사하는 의미의 조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침 식사를 했던 카 이나토(Ka Inato) 이후로 다시 만나니 반갑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반가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한글이다. 작은 책꽂이에 정확히 '필리핀'이라고 쓰인 여행 가이드 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곳인데 어떻게 하다가 이 녀석은 이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필리핀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것인지, 아니면 이 곳에 왔던 한국 사람이 나처럼 한글을 반가워할 한국사람을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인지...

그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왔다가는 이 곳에 한국어 책이 있다는 사실에 제법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자긍심에 도취해 있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메뉴별로 한입씩 맛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오늘 점심 우리의 선택은 매우 옳았다는 것이다.


선택장애 소환하는 까사로사 메뉴판
까사로사에서 바라본 타이타이 앞바다, 그리고 요새
한가로운 까사로사의 오후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반가웠던 불룰, 더 반가웠던 한국어 책
자~알 먹겠습니다!
Grilled 닭다리와 필리핀의 시그니처 스프, *시니강(요거 강추!)

시니강(타갈로그어: sinigang): 모 TV 프로그램에서 2NE1의 산다라 박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소개된 바 있는 시니강은 필리핀을 대표하는 국물 음식이다. 국물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격 이지 싶다. 고기, 생선, 해산물, 채소 등으로 국물을 내고, 타마린드, 레몬, 칼라만시 등의 즙으로 신맛을 더한다. 시큼한 맛이 강하지는 않아 우리나라 국을 먹듯 쌀밥과 함께 먹어도 잘 어울린다.

무난했던 치킨커리와 생선요리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던 Garlic Squid(요거 초초초강추!!!)
넌 누구니...? 여기 사니...? 개부럽다...




한가롭고 풍만했던 까사로사에서의 점심식사를 마쳤다. 다시 엘 니도를 향해 출발하려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꼭 지하철에 무언가를 두고 내린 듯한 찝찝함, 집을 나서는데 무언가를 놓고 온 듯한 찜찜함. 이 불편한 기분의 원인은 까사로사에서 바라봤던 외로운 요새 때문이다. 왠지 가보고 싶었다. 가봐야 할 것만 같았다. 소박한 도시 타이타이에서 가장 튀는 녀석이기도 했고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푸에르자 데 산타 이사벨(Fuerza de Santa Isabel) 입구의 문양과 명판


요새의 이름은 푸에르자 데 산타 이사벨(Fuerza de Santa Isabel). 스페인 식민지 시절 스페인 군대가 해적과 같은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세운 요새다. 필리핀 사람들은 이 요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혹자는 아팠던 식민지 역사가 떠올라 보기 싫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다른 누군가는 타이타이를 지켜준 요새에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흑역사로 인해 탄생된 녀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필리핀 사람들을 또 다른 악마로부터 지켜냈다. 악마가 만든 방패라고나 할까? 제삼자인 나에게는 참 아이러니한 요새다.


요새 위 작은 예배당
아담한 내부는 비록 많이 낡았지만 안에 있으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예배당 특유의 느낌은 여전했다
오랜 세월의 흔적
지금도 바다를 향해 있는 화포는 여전히 타이타이를 지키고 있다


요새를 나와 다시 엘 니도로 가는 차에 타려는데 동네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신기해한다. 아이들의 웃음에서 행복이 넘쳐난다. 역사적인 아픔이 있는 슬픈 장소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뛰놀기 좋은, 친구들과의 추억이 깃든 행복한 장소일 뿐인 것 같았다. 훗날 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 요새에 얽힌 슬픈 사연을 모두 알게 될 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저 웃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사는 바로 알되 추억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럴 거라 믿으며 다시 버스에 몸을 싣는다.


행복이 넘쳤던 아이들의 웃음이 부러웠다




엘 니도에 도착했다.

엘 니도에만 오면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고 두 다리 뻗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또 한 번의 여정이 남아 있었다.

최종 목적지는 엘 니도에 있는 라겐 아일랜드(Lagen Island). 엘 니도 리오 해변 선착장(El Nido Resorts Airport Pier)에서 다시 배를 타고 더 들어가야 했다. 5시간 동안 육지를 달렸다면 이제는 물컹물컹한 물 위를 달릴 차례다. 출렁이는 파도처럼 마음도 설렌다.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가 타고 갈 방카(Bangka), 리오 해변 선착장에서...


본 원정대 여행은 여행 매거진 트래비(Travie)와 함께 필리핀관광청의 초청을 받아 다녀왔습니다.

보다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팔라완 여행기는 트래비 4월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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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4월호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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