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밤의 마닐라

추억이 짧을수록 여운은 오래 남는 법

by 트래볼러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각, 마닐라(Manila)에 도착했다. 축축하게 젖은 마닐라 공항의 모습이 보기만 해도 습하다. 착 달라붙는 긴 청바지와 두터운 긴팔 티셔츠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필리핀에 왔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수하물 출구에서 우리 원정대를 위한 환영 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필리핀 관광청에서 나온 한 여자분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준다. 환영의 의미가 담긴 목걸이를 한 명 한 명 목에 걸어주며 환영 인사를 건넸다. 해외에서 이런 환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필리핀을 찾는 누구에게나 하는 흔한 환영 인사라지만 예상치 못한 환대에 밤 비행으로 지친 몸에 다시 에너지가 생겼다.


비오는 밤의 마닐라 공항 그리고 필리핀 환영 목걸이


호텔에 도착해 방을 배정받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팔라완(Plalawan) 팀과 일로코스(Ilocos) 팀, 각 팀별 일정에 돌입했다. 우리 팔라완팀의 일정은 빡빡했다. 마닐라에서 팔라완으로 가야 하기에 새벽 비행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2시간 남짓. 우리는 '푹 쉬세요'가 아닌, '이따 봐요'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꿀같은 휴식에 들어갔다.


'과연, 자다 일어날 수 있을까???'

팔라완 도착 후에도 최종 목적지인 엘니도(El Nido)까지 버스로 5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던 터라 졸리지는 않았지만 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잠에서 깨는 순간인 나에게 이건 너무 어려운 미션이다. 미래에 닥쳐올 '피곤'이라는 걱정 따위는 일단 접어두고 그냥 현재의 바이오 리듬에 충실하기로 했다.


잠시 머물기만 해야했던 호텔방


여행을 할 때 항상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일종의 나만의 세리머니랄까? 숙소에 도착하면 숙소 주변을 산책하는 일이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더라도, 아무리 몸이 녹초가 됐더라도 이것만은 꼭 한다. 천천히 걸으며 낯설고 이국적인 동네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사 온 동네를 둘러보러 나온 기분이 느껴지곤 한다. 잠시나마 여행 온 것이 아닌 살러 온 것 같다는 착각. 이 착각이 나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힐링이 된다.

샤워를 하고 나만의 힐링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반바지에 반팔티. 좀 전까지만 해도 긴 옷으로 칭칭 감싸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상 구경을 나온 팔과 다리가 민망한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움츠러든다. 하지만 덥고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닿으니 금세 긴장이 풀어진다. 활짝! 우산을 펴고 비 내리는 마닐라의 밤거리로 들어간다. 여행 전 필리핀에 대한 위험한 소문들을 많이 들어왔던 터라 혼자인 밤거리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호텔 주변과 거리 곳곳에 경찰들이 서있다. 삼엄하다 싶을 정도의 경비는 아니지만 경찰의 존재가 내게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약간의 삭막함도 가져다주었다.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밤이다.


우리가 머문 Belmont Hotel Manila
촉촉하게 젖은 마닐라의 밤거리


호텔 근처에 골프장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Ninoy Aquino International Airport)이 있어 주변도 온통 호텔이나 리조트였다. 때문에 기대했던 소소한 마닐라의 동네 풍경은 보지 못했다.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도 많이 남았다. 아쉬운 마음에 호텔로 돌아가는 길, 편의점에 들렀다. 열심히 물건을 진열 중인 직원에게 필리핀에서 맥주 안주로 가장 즐겨먹는 과자 추천을 부탁했다. 씩 웃으며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니, 감자칩이다. 역시 남녀노소 국적불문 맥주와 감자칩은 최고의 콤비다. 숙소로 감자칩 봉지를 뜯자 감자의 고소한 향과 짠내가 코를 자극한다. 산미구엘(San Miguel) 한 모금 들이키고 감자칩 하나를 입에 넣는다. 혀 끝에서부터 입안 전체로 짭짤한 기운이 퍼진다. 이렇게 마닐라에서의 시간이 지나간다. 비록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여운은 오래 남을 것 같다. 혀끝에서 맴돌고 있는 감자칩의 짭짤한 기운처럼...


호텔 근처 편의점(LAWSON), 편의점 알바생 추천 감자칩(너무짜서 반도 못먹었다는;;;)


본 원정대 여행은 여행 매거진 트래비(Travie)와 함께 필리핀관광청의 초청을 받아 다녀왔습니다.

보다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팔라완 여행기는 트래비 4월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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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4월호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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